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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마리아 Jul 12. 2024

어니스트 헤밍웨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읽으려고 마음먹게 된 것은 중국의 소설가 위화의 산문집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때문이다. 위화는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제목이 아주 인상적이었다고 하면서,  이 제목은 헤밍웨이가 17세기 영국 성공회의 성직자이며 시인이었던 존 던(John Donne,1572~1631)의 『비상시를 위한 기도문』 중 ‘묵상 17’에서 차용하였다고 하였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2권으로 된 장편소설인데, 헤밍웨이는 이 소설의 맨 앞에 다음과 같이 존던의 시를 실었다. 


어떤 사람도 그 혼자서는 온전한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일부이니.
흙 한 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유럽 땅은 그만큼 줄어들기 마련이다.
한 곶(岬)이 씻겨 나가도 마찬가지고,
그대의 친구나 그대의 영토가 씻겨 나가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의 죽음도 그만큼 나를 줄어들게 한다.
나는 인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마라.
그것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니.
                            -존 던
출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2,         민음사, 2012.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ls)는 미국 현대 문학의 개척자로 평가되며 1952년에 발표한 <노인과 바다>로  퓰리처상과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1940년에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소설로 유명해지기 전인 1943년에 게리 쿠퍼,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으로 영화화되어 성공하였으며 영화의 흥행으로 원작인 소설이 더욱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영화 포스터

헤밍웨이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스페인 내전이 끝난 직후인 1939년부터 쓰기 시작하여 18개월에 걸쳐 완성한 다음 1940년 10월에 출간하였다. 집필기간은 헤밍웨이의  다른 소설 집필기간보다 월등하게 길었는데 이는 그만큼 헤밍웨이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집필에 온 힘을 쏟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공간적 배경은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와 남쪽 세고비아 사이에 위치한 과다라마 산맥이다. 시간적 배경은 스페인  내전이 발발한 1937년 5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에서 그 다음 주 화요일 정오까지 나흘 동안,  약 70여 시간 사이에 일어난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내용은 이렇다.

미국  중서부에 있는 몬타나 대학교에서 스페인어를 가르치던 강사 로버트 조던은 스페인에서 내전이 일어나자 휴가를 내고 스페인 공화파를 돕기 위하여 내전에 참여한다. 로버트는 공화파 사령부로부터 세고비아 공격의 사전단계로 다리를 폭파하라는 명령을 받고 과다라마 산중에 숨어 있는 공화파 유격대원들을 찾아가 이들과 접선한다.


 유격대에는 마리아라는 까까머리의 어린 아가씨가 있다. 그녀는 공화당원이자 마을의 시장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가 민병대에 의해 총살당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리고  마리아가 시장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된 민병대원들에 의해 이발소로 끌려가 두 갈래로 땋아 늘여진 머리채를 면도칼로 잘리게 된다. 그리고는 그 잘려진 머리채로 얼굴을 후려 맞고 입을 틀어 막힌 채 이발기계로 머리 전체를 바싹 깎아 까까머리가 된다. 그런 모습으로 마리아는 시장이었던 아버지의 사무실로 끌려가 소파에 눕혀 강간을 당한다. 이런 봉변 끝에 기차습격사건  유격대장의 아내인 필라르에게 구출되어 유격대에 합류하게 었다.

 

로버트와  마리아는 유격대의 은신처에서 만나자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필라르의 호를 받는다. 로버트와 유격대원들은 다리 폭파 시점을 기다리면서 뒤를 밟는 파시스트들과 몇 차례 교전을 하며 유격대원들을 점점 잃게 된다. 사흘 뒤, 남은 유격대원들과 다리 폭파의 임무를 완수하고 퇴각하던 로버트는 총에 맞아 떨어지게 되자 마리아를 필라르에게 부탁하면서 떠날 것을 종용한다. 울부짖으며 지 않으려는 마리아를 달래어 보내고 로버트는 다가오는 파시스트들의 군화 소리를 들으면서 죽음을 기다린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읽으면서 느낀 점 몇 가지를 서술한다.


첫째, 사람들이 익히 이야기 한 대로 헤밍웨이는 대단한 이야기꾼이라는 것이다. 이 소설의 공간적 배경과 시간적 배경은 극히 한정적이고 제한되어 있다. 과다라마 산맥과 나흘이라는 배경으로 두 권 분량의 긴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다는 것은 오로지 작가의 역량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헤밍웨이의 섬세하고 치밀한 묘사와 관찰이 이야기를 끌고 가는 동력이자  헤밍웨이만의 작가적 능력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둘째, 헤밍웨이의 치밀한 기교와 수사력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는 갈색 솔잎이 깔린 숲 바닥에 두 팔을 포개고 그 위에 턱을 고인 채  납작 엎드려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두 권에 걸쳐 치밀하게  전개된다. 그리고, 이런 마지막 문장으로 끝난다. "그는 심장이 숲에 깔려 있는 솔잎에 부딪쳐 고동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해가 막 산꼭대기에 떠오르고 있었다. 따뜻한 바람이 불어와 눈을 녹였다. 늦봄의 아름다운 아침이었다.  45쪽.

유격대원 중의 하나인 쉰두 살의 노인이  세 군데나 총상을 입고 산꼭대기에서 독 안에 든 쥐처럼 갇혀서 죽어가게 되는데 이 엘소르도 노인이 죽음을 기다리면서 하는 상념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그는 이런 일에 대해 혼자 농담을 지껄였지만 하늘과 먼 산을 바라보며 술을 들이켰다. 그러나 그는 죽음을 바라지 않았다.  어차피 죽어야 한다면, 하고 그는 생각했다. 죽는 것이 확실하다면 죽을 수 있어. 하지만 이렇게 죽기는  끔찍이도 싫어. 죽는다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고, 그는  마음속에서 죽을 때의  모습을 그려 보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살아 있다는 것은 산비탈에서 바람에 나부끼는 곡식 들판이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산비탈에서 하늘에 떠도는 매였다. 살아  있다는 것은 도리깨질을 하고 왕겨를 불어 내는 먼지 자욱한 타작마당에 놓여 있는 질그릇 물동이였다. 살아 있다는 것은 두 다리 사이에 끼고 타는 말이요, 한쪽 다리로 누르고 있는 카빈 총이요, 언덕이요, 골짜기요,  나무를 따라 흐르는 개울이요, 골짜기 저쪽  산비탈이요, 그 건너편 언덕들이었다. 121-122쪽.

셋째, 헤밍웨이의 문체이다. 헤밍웨이의 문체는 하드보일드 스타일(Hard-Boiled Style)이라고 부르는 유명한 문체이다. 그래서 헤밍웨이의  문체라고도 한다. 이 문체는 복잡한 수식이 없이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로 사실만을 서술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헤밍웨이가 기자 생활 중에 체득문체로 스스로도 "신문사의 기사 작성 매뉴얼은 최고의 글쓰기 규칙이라 할 만하다."라고 할 정도로 신문기사와 같은 정확성과 간결성을 유지하는 문장을 쓰려고 했다.


또  헤밍웨이는  제삼자의 관찰자적 시각으로 사실만을 드러내려고 노력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들을 밖에서 관찰하고 내면에서 관찰하는 방식으로 표현하여 객관적으로 무심하게  등장인물들의 외면과 내면을 들여다보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


넷째, 헤밍웨이의 인생관은 허무적이고 냉소적이라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지만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삶에 대한 태도를 보여준다. 이는 불안정하고 굴곡이 심했으며 결국 자살로 마감했던 헤밍웨이의 삶에서 의외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할 일들을  얼마나 많이 모르고 있는가? 나는 오늘 죽지 않고 더 오래 살고 싶구나. 이 나흘 동안 삶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이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배운 것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것을 배운 것 같아, 하고 그는 생각했다. 난 노인이 되어 진실로 삶에 대해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 인간이란 언제까지나 계속 비워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사람마다 정해진 양밖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일까? 아무 것도 모르면서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 좀 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242쪽.

유명작가라는 선입견 때문일까. 헤밍웨이라는 이름이 주는 느낌 때문일까.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내가 느꼈던 전반적인 느낌은 따뜻하고 서정적이라는 것이다. 전쟁 중의 긴박한 상황들을 서술하지만 순박한 시골 사람들의 엉성한 전쟁 참여, 목숨을 건 전쟁 임에사람 냄새가 물씬 풍겨나고 뭔가 허술하고 빈틈이 많은 싸움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또 하나, 헤밍웨이의 글에서 향기가 나는 느낌을 받았다. 풀 냄새, 넓은 초원에서 나는 싱그러운 풀 냄새, 슬쩍 스치고 지나가는 듯한 향기를 맡는 것 같은 느낌을 자주 받았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가장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나는 내가 믿고 있던 것을 위해 지난 일 년 동안 싸워 왔지. 만약 우리가 여기서 승리를 거두면  우린 어디서나 승리를 거두게 될 거야. 이 세계는 아름다운 곳이고, 그것을 위해 싸울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지. 그래서 이 세계를 떠나기가 싫은  거야. 이렇게 훌륭한 삶을 보낼 수 있었으니 넌 행운아였어, 하고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3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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