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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마리아 Jun 28. 2024

위화,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내 독서의 습관이 바뀐 것은 중국의 소설가 위화(1960-  )의 영향이 크다. 어느 정도 글을 쓰거나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위화라는 작가에 대해 알고 있고 그의 작품도 많이 읽었을 것이다.


위화는 중국을 대표하는 현대소설가로 1980년대에 등단하여 <인생>(1993), <허삼관 매혈기>(1996) 등의 작품으로  위화 신드롬을 일으킬 만큼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는 작가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터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으며, 위화 또한 우리나라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나는 1990년대 <허삼관 매혈기>가 독서계를 강타했음에도 못했다. 상당한 시간이 흐른 최근에 중국의 젊은 철학자의 책을 읽게 되었다. 그 책에서 위화를 거론하는 것을 읽으면서 그동안 잊고 있던  위화를 떠올리고 도서관에서 위화와 관련된 자료를 검색하였다. 그리고, <허삼관 매혈기>등  전성기에서 상당한 시간이 흐른 지금, 그가 어떠한 작업을 하고 있으며 어떤 변화를 하였을까가 궁금하여  비교적 후기에 발표된 위화의 소설 <제7일>(2013)과 산문집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2018)을 골라 읽었다. 그리고 나는 독서의 새로운 세계에 입문하였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취미란에는 항상 독서라고 썼으며 주위 사람들도 나를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까지 본격적인 독서를 한 것이 아니라 가벼운 책, 쉽게 읽을 수 있는 , 자기 계발서 위주로 읽으면서 독서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였다. 그래서 책에서 받은 영향이나 감동도 내가 읽은 책만큼의 감동과 영향에 그쳤던 것 같다. 간혹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이나 잊혀지지 않는 책 한 권을 소개하는 경우를 보면서도 과연 책 한 권, 한 줄의 문장이 사람을 바꾸고 인생을 바꿀 수 있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만큼 나의 독서의 수준은 얄팍하였고 가벼웠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위화의 소설과 산문집을 읽으면서 나는 그동안 해왔던 나의 독서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비유하자면, 대양과 같은 독서의 세계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해변가에서 발끝만 적시는 수준에서 머물러 있었던 나의 독서 습관을 비로소 자각한 것이다. 고전이나 명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책들은 하나같이 방대하고 심오해서 감히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이 써놓은 독후감이나 요약본으로 읽은 흉내만 내면서 읽은 척, 아는 척해 왔다. 그렇게 나는 본격적인 독서의 세계에는 들어가지 않고 주변을 맴돌면서 가벼운 책 읽기의 포말로 서가 취미라는 자기만족을 충족시켰다. 이는 노력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얻으려는 나의 진지하지 못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러한 나의 독서의 자세를 새롭게 해 준 것이 위화의 산문집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이다. 이 산문집은  위화가 서울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독자들과 만나 강연하고 대화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을 읽으면서 나에게 충격적 깨달음을  주었던 부분들을 정리해 본다.


1. 작가란 무엇인가?   

 작가란 무엇일까요? 집시들의 말을 빌리자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또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돈을 받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57쪽.

2.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은 삼라만상을 다 포함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얘기한 것들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아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 꼭 얘기하고 싶은 것은 문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겁니다. 다름 아니라 사람입니다. 1980년대에 유행했던 빅토르 위고의 시가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것은 바다이고, 바다보다 넓은 것이 우주이며 우주보다 넓은 것이 인간의 영혼이다.” 140쪽.

3. 독서란 무엇인가?

독서는 아름다운 약속입니다. 만나기로 약속한 두 사람이 마음의 울타리를 연다는 것은 서로를 사랑하게 됨을 의미하지요. 따라서 여러분이 어떤 문학작품을 읽고서 마음에 들었다면 그 작품도 여러분을 마음에 들어 할 겁니다. 그 작품이 여러분을 향해 마음을 열었고, 여러분도 그 작품을 향해 마음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221쪽.
문학 작품을 읽을 때뿐 아니라 연구나 평론을 할 때도 마찬가집니다. 연구나 평론을 위해서도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작품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입니다. 제가 중고등학교 다닐 때 읽은 것은 전부 ‘중심사상’, ‘단락의 대의’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는 작품을 훼손할 수밖에 없지요. 독서는 무엇보다도 뭔가를 느끼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느낌이 좋은 것인지 안 좋은 것인지. 즐거운지 안 즐거운지는 다음 문제지요. 작품을 읽고 나면 느낌이 있게 미련이고, 즐거움을 가져다주든 분노를 가져다주든 이런 느낌은 전부 중요합니다. 그 뒤에 우리는 왜 즐거운지, 왜 분노를 느끼게 되는지, 왜 마음에 안 드는지를 연구해야 합니다. 연구는 반드시 2차적인 것이어야 하고 반드시 독서 이후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162쪽.   

4. 이 책에서 나의 독서관을 바꾼 가장 감명 깊었던 부분을 소개한다.

여러 해 전에 저는 어느 셰프와 긴 시간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가 제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나요?”
제가 대답했지요.
“좋은 작가가 되고 싶으면 먼저 훌륭한 독자가 되세요.”
그가 또 물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은 독자가 될 수 있나요?”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째, 평범한 작품 말고 위대한 작품을 많이 읽으세요. 오랫동안 위대한 작품을 많이 읽은 사람은 취향과 교양의 수준이 높아져서 글을 쓸 때 자연히 스스로 아주 높은 기준을 요구하게 되지만, 오랫동안 평범한 작품만 읽은 사람은 취향과 교양 수준도 평범해져 자기도 모르게 평범한 글을 쓰게 되지요. 남들의 결점은 나와 무관하지만 남들의 장점은 나 자신을 발전시키는데 큰 도움이 되니까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셰프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군요. 맛있는 음식을 먹어 본 사람이 좋은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있거든요, 저는 종종 제 수하에 있는 요리사들을 다른 음식점에 보내 식사를 하게 해서 각자의 실력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합니다. 항상 다른 음식점의 음식이 맛없다고 말하는 요리사는 발전이 없고, 항상 다른 음식점의 음식이 훌륭하다고 말하는 셰프는 크게 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282-283쪽.

평범한 작품 말고 위대한 작품을 읽으라는 위화의 일갈은 그동안의  위선적이고 안일했던 나의 독서 습관을 한 순간에 노출시켰고, 나는 진정한 독서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위화가 작가가 되기 위해 찾아 읽고 영향을 받았다고 거론한 작가들과 작품들을 읽어 가기로 방향을 설정하면서 새로운 독서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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