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순 할머니가 100세를 채우고 돌아가셨다. 10년 전만 해도 100세 장수는 드문 일이었다. 살아생전 할머니는 주변 사람들에게 건강하게 오래 사신다고 축하를 받았고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깨끗하고 깔끔한 할머니의 모습은 돌보는 사람의 정성이 드러나 보였고 그 정성으로 인해 할머니가 장수하시는 거라고 모두들 돌보는 사람을 칭찬하였다.
할머니를 그렇게 깨끗하게 돌보는 사람은 딸이었다. 아들들도 있지만 외동딸이 나서서 할머니를 책임지고 보살폈다. 딸의 어머니에 대한 효심은 보통의 경우와는 달랐다.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존경과 존중에서 나오는 것이 다른 사람의 눈에도 보였다. 딸은 성격이 곧고 옳고 그름을 따지는 분명한 성격이었지만 어머니에게만큼은 모든 것에서 어머니를 앞세우고 어머니의 뜻을 따랐다. 복순 할머니가 100세까지 살 수 있었던 것도 지극정성으로 쓸고 닦았던 딸 덕분이었다고 주변에서 입을 모아 칭찬하였다. 딸과 할머니의 관계는 보통의 모녀간의 관계를 넘어서는 각별함이 서로에게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딸은 그동안 효도하느라 고생했다는 주변 사람들의 인사에 손사래를 쳤다. 후회가 없을 정도로 모셨지만 칭찬받고 치하받을 만큼 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어머니에게 어떻게 그런 효심을 보일 수 있었느냐는 말에 어머니의 삶을 존중하고 위로해 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어머니로서 뿐만 아니라 같은 여성으로서의 인생을 후회하지 않게 해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사연 있는 말이었다. 딸과 어머니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아끼고 아꼈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고 입 밖으로 내고 싶지도 않은 어머니와 딸의 삶이 있었다.
할머니는 도시와 가까운 시골에서 땅 수천 평을 경작하는 부농의 안주인이었다. 남편도 인텔리였다. 부잣집 아들로 배움이 많았던 남편은 학교 선생님이었고 물려받은 재산으로 생활은 넉넉하였다. 똑똑하여 20대 후반 이른 나이에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되었다. 남편의 승승장구에 따라 할머니의 삶도 함께 승승장구하여야 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 아들 딸 낳고 먹을 것 입을 것 풍족하고 사회적 출세까지 다 갖췄는데 잘 나가야 했던 가정이 깨지고 말았다.
할아버지의 외도가 시작된 것이었다. 같은 학교 처녀 선생님과 시작된 할아버지의 외도는 한순간의 바람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때부터 집을 나가 70대에 돌아가실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할머니는 깊은 배신감과 불신감과 함께 어린 자식들과 오도마니 남겨졌다. 할머니의 신산하고 찬바람 부는 삶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시골에서 살 수 없어 자식들을 데리고 도시로 나왔다. 남겨진 재산으로 자식들의 교육에 전념하려고 했다. 그런데 젊은 부인이 아이들만 데리고 산다는 소문이 나자 사람들이 붙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재산은 없어지고 두 자녀를 잃는 변을 당하기도 하였다. 딸이 열 살 무렵이 되자 변두리로 밀려나면서 가난에까지 시달리게 되었다. 할머니의 좌절과 낙망은 바닥까지 내려갔다.
겨우 겨우 생계를 꾸려 가는 형편이었지만 그래도 변두리에서는 있는 편이었다. 사람에게 속고 돈에 속았으면서도 할머니는 인정 많은 성품을 버리지 않았다. 그때는 서로 어려워서 좀도둑이 많았다. 동네 아는 사람들이 귀중품을 훔쳐가는 일이 종종 있었다. 할머니는 경찰에 붙잡힌 도둑이 앞뒷집에 살거나 자취하는 어려운 학생이나 청년들인 경우에는 경찰서에 가서 어린 사람들의 앞날을 망쳐서는 안 된다고 없는 일로 하겠다고 사정하기도 했고, 도둑맞은 일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서른이 넘어 늦은 결혼을 한 딸은 평생을 소박 당한 어머니의 인생이 안쓰럽고 불쌍하여 힘을 다하여 어머니의 허전한 인생을 보상해 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버지가 어떻게 집을 나가셨는지,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어떠한지 어머니는 도통 말이 없으셨고 금기어였다. 어머니의 의견을 항상 존중하였다. 어머니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드리려고 했고, 보고 싶어 하고, 가고 싶어 하고, 먹고 싶어 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드리려고 했다. 어머니가 남들에게 초라하게 보이지 않도록 입성도 정갈하고 깨끗하게 준비해 드렸다. 이런 딸의 노력으로 할머니는 깨끗하고 귀티 나는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그런 딸의 효심 덕분인지 남편과 함께 열심히 아끼면서 산 덕분인지 살림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아들 딸 둘 다 할머니와 부모님을 깍듯하게 아끼는 자녀들로 성장하였다.
할머니는 소소하게 아프기는 하셨지만 타고난 건강으로 구십 세를 거뜬히 넘기셨다. 그렇지만 구십 대 중반을 넘어서자 치매가 찾아왔다. 늦게 온 치매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다리도 약해지고 폐렴도 걸려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다행히 치매는 조용하고 예쁜 치매라고 하였다. 어머니를 병원에 모신 딸은 날마다 병원을 찾아 어머니를 씻겨 드리고 밥을 먹여 드리고 시간을 같이 하면서 극진히 간호하였다.
그날도 오후에 병원에 온 딸은 어머니를 깨끗하게 닦아드리고 옷을 갈아입혀서 개운하게 주무시게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 식사 시간에 식사를 하신 어머니를 침대를 세워 앉은 채로 소화시키게 해 드렸다. 잠깐 뒤에 요양보호사가 와서 살펴보니 할머니가 앉은 채로 돌아가신 것이 아닌가. 병원 근처에 사는 딸에게 전화하였다. 바로 병원으로 달려온 딸은 앉은 채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발견했다. 편안하고 조용한 모습이셨다.
딸은 슬펐지만 여한은 없었다. 어머니에게 당신의 삶이 버림받은 삶이 아니라 보람 있는 삶이었다고 느끼게 해 드리려고 노력했던 것을 어머니가 알고 가셨을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할머니를 염한 분이 말씀하셨다. 지금까지 300명이 넘는 가신 분들의 몸을 닦아드리고 염을 해드렸지만 할머니처럼 깨끗하고 고우신 분은 처음이라고, 할머니의 생전의 삶이 복 받은 삶이었을 것이 틀림없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으며 딸은 자신의 가슴을 쓸어내리며 어머니에게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