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86세.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 전날 점심에 친구분을 만나 식사하고 이야기하며 놀다가 헤어져 귀가하셨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전화를 하니 받지 않아서 기다리다가 저녁때까지 통화가 되지 않자 근처에 사는 딸에게 전화하여 찾아가 보게 하였다.
할머니는 현관에 쓰러져 계셨다고 했다. 이미 돌아가신 후였다. 아마 전날 헤어져 집으로 들어오시면서 현관에서 쓰러지신 것 같았다고 했다. 경황없이 장례가 치러졌다. 코로나 와중이라 외국에 살고 있는 자녀들은 들어오지 못하였고 널리 알리지도 못하고 가족들과 단출하게 치러진 장례였다.
일심 할머니. 넉넉하고 명랑하고 씩씩하여 항상 주변을 즐겁게 하였던 분. 젊은 시절부터 할머니는 활동적이셨다. 몸을 사리는 일이 없었고 항상 걷어붙이고 앞장섰고 먼저 나서서 주변을 정리하였다. 성품이 명랑하여 늘 웃는 얼굴이셨다.
2남 3녀 되는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남편도 회사에서 퇴직하여 이제 부부 둘만 남았으니 맘 편하게 다리 뻗고 살자고 다짐하였다. 그러나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겨우 살아난 남편은 불편한 육신을 한탄하며 매일 눈물을 보이면서 부인에게 투정을 부렸다. 할머니는 그런 남편을 뒷바라지하면서 어쩌든지 마음 상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그렇지만 마음을 놓아버린 남편은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1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혼자 남은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살던 집이 허전하고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집을 처분하고 친구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로 이사하였다.
젊은 시절부터 단짝인 친구였다. 남편들이 같은 회사에서 근무했던 관계로 만났던 사이였다. 많은 회사 부인들이 있었지만 두 분은 유독 마음이 맞아서 같이 다녔다. 성품이나 생김새는 전혀 달랐다. 친구 할머니는 곱고 조용하고 여성스러웠다. 일심 할머니는 든든하고 용기 있고 씩씩하였다. 두 분 할머니는 항상 같이 다녔다. 두 분 중에 한 분이 안 보이면 주변을 두리번거릴 정도로 하나였다. 바늘과 실이었고 젓가락 한 쌍이었다. 주변에서는 두 분 할머니를 부부라고 불렀다. 일심 할머니는 남자 같았고, 친구 할머니는 여자 같았기 때문에 남편과 부인이라고 놀리면서 불렀다.
남편이 돌아가시자 일심 할머니는 친구가 사는 아파트 단지로 이사하셨다. 홀로 된 두 분이 서로 의지하고 사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멀리 있는 자녀들도 안심하고 좋아하였다. 두 분은 날마다 아침이면 전화로 안부를 물었고 점심때면 만나서 각자의 집이나 근처 식당을 찾아다니면서 점심을 먹고 걸으면서 운동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며 시간을 보내다가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곤 하였다. 행복하고 편안하고 바람직한 노후였다. 주변의 사람들도 두 분의 우정과 삶을 부러워했다. 새로운 노년의 모델을 보는 것 같았다. 바쁜 자녀들에게 매달리지 않고 친구와 같이 노후를 보내는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친구분과 만나 식사를 하고 놀다가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신 것으로 일심 할머니의 행적은 끝났다. 다음 날 여느 때와 같이 아침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이 이상하여 일심 할머니의 딸에게 찾아가 보라고 하여 찾아본 것이 쓰러져 돌아가신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자녀들은 슬프고 안타까웠지만 주변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파서 병원에 오래 계신 것보다는 행복하셨을 거라고. 코로나 와중에 병원에 갇혀서 가족들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시는 분들이 부지기수인데 할머니는 친구와 마지막까지 잘 지내시다 가셨으니 괜찮으셨을 거라고. 자녀들이 임종을 지켰으면 좋았겠지만 그럴 수 있는 죽음이 얼마나 되겠냐고 자녀들을 위로하였다.
일심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제일 충격을 받은 분은 친구 할머니였다. 일심 할머니와 가장 가까웠던 분이요, 가장 마지막에 만난 분이었기 때문이었다. 두 분의 사이는 더할 나위 없이 가까웠지만 바쁜 자녀들은 각자의 생활에 쫓겨 왕래가 없었다. 일심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친구 할머니의 상심은 지극했다. 친구와의 재미있던 생활을 접고 혼자 남은 할머니는 집에만 계셨다.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1년 뒤, 친구 할머니도 갑작스럽게 세상을 뜨셨다. 마치 친구를 뒤따라 가는 것처럼 홀연히 떠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