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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by 선희 마리아

부끄러워할 줄 안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첫 돌도 안 지난 아기가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부끄러워


고개만 내미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



부끄러워할 줄 안다는 것은

어여쁜 일이다

파릇한 이십 대 처녀가

맘에 있는 사람 앞에서

말 못 하고 붉어지는

발그레한 얼굴.



부끄러워할 줄 안다는 것은

멋있는 일이다

처음 아버지가 된 청년이

첫 아이를 대면하고

눈시울을 붉히며

떨리는 손으로

안아 올리는 조심스러운 포옹.



부끄러워할 줄 안다는 것은

감동스러운 일이다

팔십 할머니가

글을 모른다고 말하면서

분홍빛으로 물들이던 주름진 예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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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은 후천적인 학습이 아니라 타고난 본성일까.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아이들을 본다.

처음이어서 부끄러운 걸까.


마음을 들킬까 봐 부끄러워하는 청춘을 본다.

자기만 아는 생각도 부끄러운 걸까.


첫 아이를 대면하며 감격하는 아빠를 본다.

감격과 부끄러움은 같은 근원일까.


예쁜 할머니를 보았다.

내가 글자를 몰라서....라고 수줍게 말하면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 부끄럽게 웃던 얼굴.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걸까.


부끄러움을 모르는 시대에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새삼스럽고 감격스럽다.


부끄러움이 사라지는 시대에도

부끄러움을 잃지 않고 싶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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