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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Day Oct 20. 2023

오래된 풍경

[매일안녕]

지금 살고 있는 동네는 무척 오래된 동네이다. 그냥 오래된 정도가 아니라, 몇 십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집과 옛스러운 간판을 달고 있는 상점들도 길을 걷다보면 어렵지 않게 발견한다. 물론, 오래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깔끔하고 빌라나 신축 빌딩들도 많다. 아주 오래된 것과 몇년 안된 새 건물들이 섞여 있다 보니 골목이나 블럭별로 풍경이 참 다르다. 

자주 다니는 골목 중 하나는 20년은 되어보이는 샬롬 미용실과 새마을 세탁소가 골목 끝에 있고, 그 위로는 주택이 즐비한 골목이다. 미용실 바로 옆에 그만큼이나 오래된 단독 주택이 있는데 그 집 앞에는 화분없이 자라는 맨드라미가 있다. 맨드라미 두 송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고, 나무라고 하기에는 왠지 어색하다. 이렇게 키 큰 맨드라미가 있나 싶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화분이 아닌 시멘트 바닥 틈새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있었다. 곧고 단단한 줄기때문인지 땅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뿌리가 시작되고 줄기가 끝나는 부분의 시멘트 바닥은 들려 있을 정도였다. 단단한 땅과 돌을 이기고 파고든 맨드라미의 억센 생명력에 박수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박완서의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 작가는 오늘 내가 본 풍경을 가리켜 '흙과 씨가 힘을 합해 돌을 이겨먹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외할머니처럼 푸근한 인상의 박완서 작가도 처음에는 신기하고 예쁘게 보던 그 현상을 나중에는 미장이를 불러 이음새에 시멘트를 바르게 될 것이라고 스스로 예측했다. 그런데, 우리 동네 오래된 단독주택의 주인장은 누구시길래 90센치보다 훨씬 커보이는 키다리 맨드라미를 그대로 세워두고 베어버리거나 흉하게 벌어져버린 들뜬 시멘트 바닥을 다시 메우지 않았을까? 매년 여름이면 붉은 색 꽃을 자랑하며 경호원처럼 뚝심있게 현관문앞을 지키고 서 있을 맨드라미씨가 꽤 근사하게 보였다. 


그냥 지나치는 길 위의 풍경, 오늘은 한번 유심히 살펴보세요. 즐거운 발견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김동률 - 오래된 노래 

오래전에 함께 듣던 노래가
발걸음을 다시 멈춰서게 해
이 거리에서 너를 느낄 수 있어
널 이곳에서 꼭 다시 만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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