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으로 다시 돌이키는 그리스도인
죄를 짓고도 실수라 말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사람들의 눈을 가렸던 비겁한 개독교여서 미안합니다.
낮고 낮은 자리로 오셔서 헐벗고 주리고 홀로 된 이웃의 친구가 되어주셨던 예수님의 사랑, 알면서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대변인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이기심과 욕망을 복음으로 둔갑시켜 세상을 속여먹는 교회 지도자들이 정오의 빛 가운데 그 면면이 들어나도 어리석은 성도의 등 뒤로 숨겨주며 제대로 용서받을 기회를 주지 못했습니다.
사랑으로 세상을 섬기며 연약한 이웃을 돌보고 위로하는 소명보다는 더 높은 자리에 앉기 위해 동료를 깍아내리고 거짓말을 일삼아 매관매직했던 부패했던 우리였습니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자족하는 은혜는 잊고, 좀 더 많이 갖을 수 있다면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내 주머니에 채우려 분주했습니다.
빛 되시고 진리이신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 저마다 작은 예수,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겠다고 다짐하지만 말뿐이었습니다.
교회에서만, 성도들사이에서만 사랑하고 위로하고 도왔습니다. 언제쯤일까 하며 기다리는 우리의 이웃에게는 눈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는 같은 성도, 같은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출석교회를 구분하며 큰 교회, 유명한 교회만 쫓아 다니고 정작 예수 그리스도를 쫓지 못했습니다.
교회의 몸집을 부풀리는 데 힘을 쏟고 더 큰 예배당, 더 많은 교인을 '우리 교회'로 불러모으는 데만 관심이 있었고, 복음을 제대로 전하고 그대로 사는 목회자, 복음을 삶으로 실천하는 성도는 되지 못했습니다.
각 사람이 교회가 되어 지역 공동체와 일터와 가족안에서 건강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차별과 억압으로 끊임없이 분열되고 시위와 집회, 사기와 범죄, 전쟁과 테러로 가득할 때에도 교회 건물을 방패삼아 피난처삼아 숨어지냈습니다.
꽃보다 고운 아이들이 스러져갈때에도 책임지는 것이 두려워 떨다가 별과 같이 반짝이는 생명들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기독교는 어느덧,
기득권의 상징, 부패의 온상, 거짓말의 진원, 타락한 성직자들의 집합소가 되어버렸습니다.
교회는 정치인들의 표밭이자 싸움터로 전락했습니다. 부족함을 미덕으로, 가진것을 만족으로 여기며 좀 더 손해보고 좀 더 이해하며 좀 더 무릎꿇고 좀 더 사랑하는 참 그리스도인은 어디에 있느냐고 주님께서 책망하실까 두렵고 떨리는 마음입니다.
정말 미안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더 많이 사랑하고 이해하겠습니다.
인내하며 낮아지며 예수님의 선하심을 나타내겠습니다.
매일 나를 겸비하며 나의 삶으로 주님을 전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겠습니다.
나는 기독교를 대표하는 어떤 임직을 맡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글 역시 어떤 대표로써의 책임감의 발로인 것도 아닙니다.
다만, 언제부터인지 '질이 떨어지고, 헛된, 쓸데없는'의 뜻을 가진 접사나 행실이 형편없는 사람을 비속하게 이르는 명사인 '개-'를 기독교앞에 붙여 개독교로 부르게 되었을까를 생각하며 되짚어보니 하나하나 바로잡고 돌이키고 싶은 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만큼 대단히 부끄러운 일에도 어느 누구하나 책임감있게 사과하는 이를 본 기억이 없었습니다. (저만 모르는지도;;;)
십계명으로도 금했던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일 중 열의 아홉은 어쩌면 기독교인들이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각종 뉴스와 온라인 매체를 도배할 만큼 대단한 스캔들과 사건, 사고의 주인공이 되는 판국에도, 저런 개독교인하고는 다르다고 하며 안타깝게 여길 뿐 어느 누구도 사과하지 않길래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나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같은 교인, 성도들간에는 공동체의식이 매우 뚜렷하고 강하게 나타납니다. 니 일, 내 일 하는 것 없이 함께 나누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뻐합니다. 하지만 세간의 따가운 이목을 받으며 손가락질 받는 일이 있을때면 나와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서, 우리 교회 일이 아니라서 속으로 안도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회개하자고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분들도 있지만, 역시나 나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떨어지는 일이라는 판단에서 오는 안도감이 동반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처음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어렸을 적부터 교회를 다녔고 성경을 배웠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그러면 못써!", "믿는 사람이 본을 보여야지.", "믿는 사람이 손해 좀 보는거지, 뭐"
엄마는 '믿는 사람이'라는 구절을 관용어처럼 쓰셨습니다. 먹기 싫은 흰우유를 먹었다고 거짓말로 둘러댈 때도, 친구들 사이에서 내가 손해보는 듯한 상황이 생겼을 때도 항상 같았습니다.
나의 투덜거림, 불평을 막아내는 유일한 방어막(?), 그것은 엄마의' 믿는 사람 타령'이었습니다. '엄마는 맨날 믿는 사람타령이야?'라고 불평할만도 했지만, 그런 적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엄마는 '그렇게' 믿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래 참고, 더 손해보더라도 예수 믿는 사람은 그래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예수의 사랑을 그저 아는 사람으로가 아니라 경험하고 믿는 사람으로써 마땅히 그렇게 사는 것이 복된 삶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믿는 사람으로 부끄럽지 않은 삶, 예수를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겠습니다.
개독교인 아닌 예수 믿는 사람으로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