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y라 쓰고 '중용'이라 읽는다
나는 보편적인 사랑을 글로 쓰고 싶다.
가톨릭이란 보편적인 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천주교가 엄마 품처럼 편안하고 포용적이라 느꼈다. 물론 믿음의 길로 향하는 문턱은 내게는 턱없이 높지만.
훗날 내가 운영할 놀이공부방에서 내가 맡은 아이들에게 가르칠 덕목은 '믿음', '희망', '사랑'이라는 향주삼덕이기도 하고, 이와 관련된 독서를 하고 토론을 하고 논술을 하는 것, 역사적인 인물, 배경, 사건 등에서 찾아본 후 마지막 단계는 '자유'로이 글쓰기를 할 것이다.
소년이 온다는, 내게 한강 작가의 첫 책이었다. 작년 11월 나의 사랑하는 독서모임에서 한강 작가의 책을 주제로 책모임을 가졌다. 독서모임에서 한강작가의 작품을 다룬 후 스웨덴 한림원에서 한강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타는 영광을 마치 함께 누리는 양 기뻤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의 연약함을 드러낸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 함이 한림원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한강 작가의 작품 <소년이 온다>로 극복하고 있었는데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사태는 참 아이러니 했다. 계엄령이 한강 작가의 수상 시기와도 결부되어 더 그랬다.
계엄사태를 놓고 윤대통령이 '왜' 그랬어야만 했나, 계엄사태를 발단으로 대통령 끌어내리기를 마치 '축제'분위기로 즐기는 상반되는 입장은 정치색을 드러날 수밖에 없는 흑백의 극단 사이에서 회색 그리고 중용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혹자는 고통 앞에 중립 없다고 하더라. 그분께 역으로 묻고 싶다. 고통 앞에 중용 없는 것은 아니고?
여기서 ‘中’이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 ‘庸’이란 평상(平常)을 뜻한다. 인간의 본성은 천부적(天賦的)인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그 본성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본성을 좇아 행동하는 것이 인간의 도(道)이며, 도를 닦기 위해서는 궁리(窮理)가 필요하다. 이 궁리를 교(敎)라고 한다. 《중용》은 요컨대 이 궁리를 연구한 책이다. 즉 인간의 본성은 한마디로 말해서 성(誠)일진대, 사람은 어떻게 하여 이 성으로 돌아가는가를 규명한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중용 [中庸]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나는 대중에게 영향력을 주는 직업군은 중용, 중도가 필수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그 직업 선택의 목적이 아니라고 한다면... 성직자와 교사는 대중에게 남다른 영향력을 선사하는 직업군으로 중용과 중도는 필수이지 않을까.
우리 집에는 1월 초부터 지금까지 태극기가 조기 게양 되어 있다. 무안공항 사태 때 안타까운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삼일만 게양하자 했던 것이 태극기를 내리려고 하니 거실 새시문 손잡이가 고장 나 현재까지 게양하고 있다. 누군가 보면 태극기부대라고 생각할까 봐 이 글에서만 입장을 밝힌다. 나는 회색이 좋아.
so many shades of gray. 회색에는 음영이 너무나 많아요. 회색에도 정말 많은 그림자가 있어요.라는 이 주옥같은 가사가, 이 명 문장이 참 와닿는 요즘이다.
https://youtu.be/UTPruHeUc10?si=imrmrlOlhWo_tZRq
스텔라장, 빌런.
한 가지 고백하자면 이 글은 내가 독서모임 가서 이야기한다고 한 내용들 중 빠뜨린 바람에, 이 이야기를 할 걸, 했어야지 하면서 잠 못 이루고 쓴 글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