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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g satisfied Apr 06. 2022

추억여행 19' 프랑크푸르트 독일 사우나의 모든 것

비스바덴 카이저-프리드리히 사우나

내 삶의 3대 요소 중 하나는 사우나다. 특히 뼛속까지 시린 겨울이면 사우나 생각이 간절하다. 지난 프랑크푸르트 체류 당시 겨울은 초봄과 같이 따뜻했다. 그래도 겨울 내 움츠렸던 몸을 풀기 위해 프랑크푸르트 근교의 비스바덴에 있는 온천사우나에 다녀왔다.


'숲 속의 온천'이라는 뜻의 비스바덴(Wiesbaden=In den Wiesen Baden!)은 헤센 주의 대표적인 휴양도시다. 도스도예프스키, 괴테, 브람스, 네로 황제 등의 유명인사들도 치료를 위해 비스바덴에 와서 온천을 즐겼다고 한다. 도시를 걷다 보면 원천에서 온천수와 함께 김이 모락모락 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뉴질랜드의 원천들처럼 계란 방귀 냄새가 날까 코도 들이대 보고, 물 맛도 보았다. 사진 속 코흐 브루넨(Kochbrunnen) 물이 몸에 좋다고 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와서 물을 마시고 간다고 하길래 손가락으로 콕 찍어 맛을 봤다. 짜기도 하고 쇳물 맛이 나기도 했다. 온천수를 담고 있는 돌을 보면 돌 색이 붉은데, 물에 광물질이 섞여 있어서라고 한다.

Kochbrunnen
Kochbrunnen 냄새 맡아 보는 중. 온천수가 흐르는 돌의 색깔은 붉다.

코흐브루넨(Kochbrunnen)에서 시내 쪽으로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카이저 프리드리히 온천욕장(Kaiser-Friedrich-Therme)이 나온다. 우리나라로 치면 찜질방인데 건물이 참 멋있다. 과거 목욕은 상류층의 사치 문화 중 하나였는데, 카이저 프리드리히 온척욕장은 시민들을 위해 생긴 목욕탕이라고 한다. 약 440평에 달하는 대규모 목욕탕이다. 나이가 들다보니 이곳 저것 손 볼 곳이 많아 1999년에 대규모 리노베이션을 했는데, 건축 당시의 모습을 여전히 잘 간직하고 있다. 대부분의 독일 사우나가 그렇듯 여기도 남녀 혼욕 사우나다. 혼욕이 불편한 여성들을 위해 매주 화요일에 여성의 날을 운영하는데, 후기에 보면 여성의 날에도 남성 직원들이 근무해서 불편하다는 불평들이 꽤 많다. 나는 시간이 안 맞아 수요일에 방문했는데, 혼욕 사우나는 나에게도 상당히 도전적인 일이었다. 그래서 사우나 체험기를 남겨본다.

카이저-프리드리히-온천욕장 입구(왼)
욕장 입구에 들어가면 보이는 벽화. 사우나에 참 잘 어울리는 벽화다
사우나 건물에 들어가면 마주하게 되는 장식들

사우나 사용료는 시간 단위로 계산이 되는데, 내가 방문한 2019년 당시 입장료는 계절에 따라 달랐다. 여름 시즌(5월 1일-8월 31일)에는 시간당 5유로. 겨울 시즌(10월 1일-4월 30일)에는 6.5유로다. 아무래도 추운 겨울에 몸 녹이러 오는 사람이 많아서 더 비싸게 받는 것 같다. 혹시 몰라 최근 입장료를 찾아보니 그새 가격이 올랐다. 성인 기준 평일(월-목)에는 2시간 기준 15유로, 주말에는 17유로다. 이후에 15분마다 2.5유로의 추가 요금이 붙는다. 한국 찜질방을 생각하면 상당히 비싼 가격인데, 막상 들어가 보면 또 고개가 끄덕여지는 가격이다. 독일 사우나를 갈 때는 큰 타월이나 샤워가운을 하나 준비해 가는 게 좋다. 준비를 못했으면 카운터에서 빌리면 되는데 대여비가 4.5유로다.(사우나 바닥은 상당히 잘 관리되고 있는데, 맨발 나들이가 싫다면 슬리퍼도 하나 챙기는 게 좋다.)


카운터에 가면 개인 락커 키를 주는데, 우리나라 찜질방과 같이 락커 키로 사우나 내 모든 액티비티 및 식음을 즐기고 퇴장할 때  결제하면 된다. 사우나에 입장할 때부터 시간이 카운터 되니 입장 시간을 잘 체크해서 입장료를 아깝지 않게 사용하는 게 좋다. 추가 요금의 경우 1분을 더 사용하든 15분을 더 사용하든 요금은 15분 요금을 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을 말해야겠다. 독일은 탈의실부터 남녀 구분이 없다. 개인 탈의실이 있는데 들어가서 탈의를 하고 타월이나 가운을 두르고 나오면 된다. 뭐 낯설지 않다면 타월을 두르지 않고 다녀도 되는데, 대부분 사우나나 탕 밖에서는 수건으로 가리거나 가운을 입고 돌아다닌다. 독일 사우나에서는 수영복을 엄격하게 금하는데, 수영복이 뜨거운 물이나 열을 받을 때 유해한 화학물질이 나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샤워실은 남녀가 구분되어 있는데, 사우나 전후에 사용하면 된다. 무료로 즐기는 대부분의 액티비티는 0층(우리나라 기준으로 1층)에 모두 모여있다. 사우나에서 제공하는 안내책자의 지도에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의역을 달아봤다.

카이저-프리드리히 온천욕장 안내도

아래 사진들은 사우나 내부인데, 온천욕장 홈페이지에서 가져와봤다.(출처: https://www.mattiaqua.de/thermen/kaiser-friedrich-therme/sauna/) ​탕에 들어갈 때는 주변의 타월 걸이에 타월을 걸어놓고 들어가면 된다. 사우나실에 들어갈 때는 타월을 들고 들어가 자신이 앉거나 누울 자리에 깔고 사용한다. 본인의 땀이 사우나실에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두려워? 하는 부분이 남녀가 나체로 사우나를 즐긴다는 것인데., 나도 이용 전까지는 호기심 반 두려움 반이었다.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 어떻게 타월 없이 남녀가 어떻게 함께 사우나를 사용하지? 등등의 생각들. 하지만 막상 사우나를 시작하니 어색해할 시간이 없었다. 사우나 안의 모든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사우나를 즐기는 모습을 마주하면 나체에 대한 걱정도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여기서 제일 재밌었던 방은  Finnisch Sauna(핀란드식 사우나)이다. 이 사우나실에서는 매 정각마다 '아우프구스(Aufguss)'라는 일종의 아로마 세레모니가 진행된다. 매 정각마다 사우나마스터가 아로마오일이 섞인 물을 들고 사우나 실로 들어온다. 사우나실 안의 뜨거운 돌 위에 아로마 물을 뿌리고 타월로 방 안에 증기를 휘날린다. 증기를 휘날리는 방법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프로펠러처럼 공중에서 수건을 돌리는 방법과 위에서 아래로 수건을 펄럭이는 방법이 있다. 이렇게 돌에 물을 뿌리고 수건으로 증기를 휘날리는 행위가 총 3번 이루어진다. 사우나 마스터가 타월을 휘두르면 아로마 향과 함께 뜨거운 열이 훅 하고 몸을 감싸는데 한국적인 표현으로 참 시원하다. 10분짜리 짧은 행사지만 시간이 갈수록 비 오듯 땀이 흐른다. 세 번의 의식이 끝나면 사우나 안의 모든 사람들이 다같이 박수를 친다. 사우나의 뜨거움을 함께 잘 견디었다는 의미의 박수가 아닐까 생각된다. 아우프구스 도중에는 건강에 무리가 없는 이상 나가지 않는 것이 서로에 대한 예의라고 한다.

불한증막(Feuer-Sauna, 왼) 핀란드식사우나(Finnsauna, 중간)에서는 아우프구스가 열린다, 건식사우나(Huettensauna, 오)

미온욕실과 우리나라 한증막에 해당하는 Tepidarium과 Sundaterium 방에서도 오랜 시간을 보냈다. 사우나 내 모든 장식들이 아름답지만 이 두 방의 타일 데코레이션은 특히나 화려하고 아름다워 기억에 남는다. 1913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A. O. Pauly라는 건축가가 유겐트슈틸(Jugendstil) 스타일로 사우나 내부를 장식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상당히 노후되어 1999년 5억 원을 들여 타일 교체 공사를 했다고 한다. 미온욕실에 비치된 사우나 의자에 앉아 천장의 타일데코를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한국으로 치면 물폭포? 물마사지? 공간(Tropischer Eisregen, 왼), 냉탕(Kaltwasserbecken, 중간), 타일데코가 아름다원던 Tepidrium(오)
사우나 입구의 부조들

혼욕 사우나의 기원이 궁금해 찾아보았다. 혼욕 사우나의 역사는 고대 로마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로마 시대 목욕탕은 목욕탕 이상의 기능을 담당했다. 목욕뿐만 아니라 스포츠 관람 및 토론과 담화가 오가던 장소였는데, 로마 제정시대에 황제가 자신의 인기 유지를 위해서 다수의 목욕탕을 건설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상류층만 드나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시민이 이용하는 대중적인 장소로 변모했다. 처음에는 남성과 여성의 출입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관리되었는데, 혼욕이 시작된 이후에도 우려하는 부도덕한 사건, 사고가 증가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당시의 로마 시민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언제 어디서든 성적 쾌락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세시대에 오면서 대중탕은 여러 나라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변모한다. 독일에서는 목욕을 상당히 신성시하였다. 결혼 전 신랑 신부가 함께 목욕을 하는 문화가 있었는데, 이게 독일 혼욕의 기원이라고 보기도 한다. 1470년대 프랑스의 많은 대중탕들은 사창욕탕으로 불린다. 아비뇽의 한 대중탕에서는 욕조 하나도 없이 침대들만 들여놓고 목욕탕 장사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브장송에서는 욕탕에 창녀를 두어도 좋다는 허가가 나기까지 했다고.. 이러한 추세는 매독이 증가하면서 혼욕 금지령이 내려지고 나서 줄어들기 시작했다. 더불어 16세기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면서 대중목욕탕이 서서히 사라졌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혼욕 문화는 19C FKK운동(Freikörperkultur), 독일 나체주의 문화를 통해 다시 부활한다. '우리 몸에 진정한 자유를 달라'가 독일 나체주의의 모토인데, 그들은 금주, 체조, 채식, 사우나 등을 통한 자연적 건강을 추구한다. 이러한 신체 해방운동은 기성 문화에 대해 저항하는 68 혁명과 혼욕을 일상으로 하던 동독의 문화가 더해지면서 더욱 커졌다. 특히 독일 분단 당시 동독에서는 FKK운동을 장려했는데, 이는 기존의 권위과 차별을 없애기 위한 일종의 정책적인 이유도 있었다. 나체주의자들은 전라의 상태로 야외활동(스포츠, 산책 등의 놀이)을 통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경험을 하는 것을 중요시 한다. 이런 문화운동의 영향으로 독일뿐 아니라 유럽의 많은 나라에 혼욕 사우나나 누드비치가 다시 부활했다. 하지만 독일 통일 이후 자본의주의 문화가 들어오면서 독일에서 이러한 문화를 거부하는 이들도 생겼다고 한다. 요즘 독일의 사우나에서 탕이나 사우나 밖에서 타워를 사용하는 것도 이러한 변화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서로가 날 것의 모습으로 마주하고도 부끄럼 없이 사우나를 즐기는 모습에서 성경에 나오는 에덴동산이 생각났다. 에덴동산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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