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스타쉔 Nov 23. 2020

<죄와 벌> 죄의 근원지 (1)

전반적인 스토리는 주인공 라스꼴리니꼬프(이하 라쟈)가 겪고 있는 내적 외적 갈등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하고 있다.

선술집 옆에는 먼지가 가득한 샛길이 있었는데, 그 먼지는 항상 시커먼 빛을 띠고 있었다. 구불구불한 이 길을 따라서 걷다 보면, 한 3백 걸음 정도 되는 곳에 오른쪽으로 공동묘지가 있었다. 묘지 가운데는 둥근 녹색 지붕으로 장식된 석조 성당이 있었는데,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그는 한 번도 뵙지 못한 그의 할머니에 대한 추도 미사를 드리기 위해 부모님과 함께 1년에 한두 번 이곳을 방문하곤 했다. 이때 이들은 항상 쌀 위에 건포도로 십자가 모양을 낸 단맛의 음식을 하얀 접시에 담아 냅킨에 싸서 가져갔다. 그는 이 성당과 거기에 모셔 놓은, 거의 틀에 씌워져 있지 않은 낡은 성상들, 그리고 머리를 떠는 나이 든 신부님을 사랑했다.
러시안 전통 디저트 - 라이스 푸딩

도스토예프스키는 젊은 시절 그가 방황하고 방탕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집필했다.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면 결코 이런 생생한 묘사는 할 수 없지 않을까.


작게는 마을 단위의 인간 커뮤니티 속에서 평가하고 평가받으며 겪는 내면적인 갈등을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개인의 삶과 감정을 시간, 공간, 상황에 따라 미묘하게 변화하는 것을 글로 풀어냈다.


대학생이지만 돈이 없어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는  라스꼴리니꼬프가 가는 전당포 주인 할머니에게 저당을 잡히면서 가진 자에 대한 분노로 <그 일>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맙소사!〉 그는 부르짖었다. 〈정말, 정말로 나는 진정 도끼를 들고, 노파의 머리를 내리찍으려 하는 것일까, 그 정수리를 부수려고 하는 것일까……. 끈적끈적하고 따뜻한 피 위를 미끄러지면서, 자물쇠를 깨고 도둑질까지 하려는 것일까?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피투성이의 몸을 숨기려고 하는 것일까……? 도끼를 가지고서……? 오, 맙소사, 정말로 그렇게 하려는 것일까?〉


그 일은 묘하게도 어릴 적 술 취한 사람들이 나약한 암말을 채찍과 쇠지렛대로 내리찍으면서 암말이 죽어가던 눈빛을 잊지 못하는 것과 감정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채찍질을 가했던 이와 전당포 할머니, 채찍을 맞던 암말과 라쟈를 동일시하는 주인공은 성당을 다니며 하나님을 믿지만 동시에 억눌려 있던 것에 반항하고 싶은 심리를 나약한 존재에게 힘을 과시하며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 했다.


라스꼴리니꼬프는 그때 이미 그곳을 지나쳤기 때문에,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그는 한 마디의 말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그들을 지나쳤다. 그가 처음에 느꼈던 놀라움은 점차 공포로 뒤바뀌었고, 그의 등골에는 차가운 전율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뜻밖에도 내일 저녁 7시에 노파의 동생, 노파의 유일한 동거자인 리자베따가 집에 없을 것이며, 따라서 노파는 정확히 저녁 7시에 〈집에 혼자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가 <그 일>을 결심하게 된 동기는 상당히 기이하다. 그가 처음 알료나 이바노브바를 만났을 때의 상황을 보면 이는 지극히 그의 개인적인 감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그럭저럭 살 만했으므로, 그는 오랫동안 그녀를 찾아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달 반쯤 전에 그는 그 주소를 기억해 냈다. 그는 전당 잡힐 만한 물건을 두 개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오래된 아버지의 은시계였고, 다른 하나는 여동생이 헤어지면서 기념으로 선물한, 붉은 보석이 세 개 박힌 작은 금반지였다. 그는 금반지를 가져가기로 결정했다. 노파의 집을 찾아냈을 때, 그는 그녀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본 순간부터 참을 수 없는 혐오감을 느꼈다.


우연의 일치로 자신이 계획하던 <그 일>을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들었을 때 자신의 일을 정당화하려는 궤변은 상황 속에서 점차 현실이 되어간다.


그는 결국 <그 일>, 무고한 사람을 두 명이나 죽이고 만다. 처음은 계획된 것이고, 두 번째는 앞의 일을 덮기 위한 우발적인 행동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개인적인 이익을 기초로 하고 있으니까요. 자기 한 사람만을 사랑한다면, 자기 일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고, 또 웃옷도 온전한 채로 남게 되지요. 경제적인 진리는 사회에서 자리를 잘 잡은 개인 사업가가 많으면 많을수록, 즉 입을 만한 웃옷이 많으면 많을수록 공공의 사업도 자리를 잘 잡아가게 된다고 말합니다


우발적이고 충동적이기는 하지만 결과는 너무 끔찍했다. 힘없는 노파와 그녀의 동생은 아무런 이유 없이 도끼에 두 동강 나는 것으로 생을 비참하게 마감했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범죄 감식반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던 시절 무고한 사람이 죄인 취급당하며 형을 살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만약 이 고리대금업자 노파가 전당 잡힌 사람들 중의 한 사람에 의해 살해되었다면, 그건 보다 상류 계층 사회의 사람이 저지른 짓일 겁니다. 왜냐하면 농부들은 금붙이를 전당품으로 잡히지는 않거든요.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문명화된 이런 계층이 저지르는 도덕적인 일탈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라스꼴리니꼬프, 혹은 라쟈(애칭)의 주변 인물들은 일련의 살인사건과 라자의 정신상태를 놓고 자기만의 시야에서 해석한다. 의사 자묘또프 또한 그중에 하나지만 최종 라쟈의 논문 <범죄에 관하여>를 읽고 찾아온 뾰르피리 라자로프는 라쟈의 시각에서 흥미 이상의 것을 발견한다.


 「당신의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는 길은 이제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렸다는 겁니다.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게 된 지금 꼭 한 가지 주지 시키고 싶은 것은 최초의 원인, 그러니까 당신의 발병에 영향을 미친 근본적인 원인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다음 병을 완치시키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상태가 더 나빠질 수도 있어요. -중략- 당신은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제가 보기에는 일과 확고한 목적의식이 당신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 같군요.」
- 의사 자묘또프의 치료 중


라쟈는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의 <환경>을 지적하며 <비범한> 사람을 <새로운 사람들>로 지정하며, 그들이 <파괴자>처럼 보이는 행동, 즉 살인과 같은 행동이 충동이 아니라 제거해야 할 마땅한 대상이라고 하는 논문은 그간 말한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우나 충격적인 관점이다.  


<죄와 벌> 상

새로움을 자처하는 비범한 주인공, 라스꼴리니노프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 속에 현실의 그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 부를 쥐고 있는 연약한 노 과부를 향해 살인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실행에 옮긴다.

아무도 단서를 찾지 못하는 상황을 보며 살인자라는 괴로움보다 <비범한> 자신에게 더 우월감과 성취감을 느낀다.

그러던 중, 그가 살인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나타나 그에게 귓속말로 <살인자>라고 말하는데...


- <죄와 벌> 하 편에서 나머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서 초보자를 위한 책 읽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