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는 주로 '온도', '결'이라는 단어로 다름 또는 같음을 많이 표현하고 있다.
"그 친구의 온도는 나랑 비슷해"라는 말의 뜻은 '그 친구와 나는 성향이 잘 맞는다'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최근 예전에 면접을 보았던 곳 중 한 군데서 나에게 잘할 것 같으니 와보라고 했다. 계속 거절하는데도 계속 권유를 하길래 "영업의 결이 저와 달라서요."라고 말하니 그제야 물러서며 전화를 종료했다.
불쑥 튀어나온 말이지만 "결이 다르다"는 말은 단 한마디로 설명될 수 있었다.
사실상 불혹에 들어서야 내가 무엇에 정말 재능이 있고,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어떤 것인지 구체화가 되어 정리되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회는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또는 확실하지 않은 길을 맞지 않는 옷을 입어 불편하고 꽉 끼는 데다 굳이 그냥 참고 가라고 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다.
나도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이제야 '나'라는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청소년기부터 인생을 정하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모순된 말인 거 같다.
사업 계획을 놓고 고민하는 친구가 물었다.
"잘 팔리는 물건을 고려해야 할까? 아니면 조금 힘들더라도 모두에게 이로운 일을 해야 할까?"
*위 내용은 정확한 질문을 하면 너무 구체적이어서 약간 각색했다.
"잘 팔리는 물건은 지금은 한두 개 팔 수 있겠지만, 네가 고민하는 그 일이 너와 비슷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좀 돌아가더라도 네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막상 답을 해주고 보니, 우리는 스스로 가슴 뛰는 일을 잘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사업의 결 또한 내 가슴을 뛰게 하고 사람들에게 이로운 것을 만들려고 한다. 모든 사람이 말리는 일, 그 일은 사실 블루오션일 수 있고 꾸준히 하다 보면 그것이 필요한 사람들이 나와 결을 같이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