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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햇님 Sep 04. 2019

우리 집 남자의 무기는 눈물

지면 약 오르고 이기면 찝찝한 부부싸움에 대하여

참으로 기묘한 날씨였다. 차창 밖 하늘로 시선을 던지면 불과 1km 남짓 떨어진 부근은 뭉게구름이 몽실 떠있는데, 내가 탄 버스 위로는 먹구름이 몰려와 우르르 쾅쾅 소리를 내며 굵은 장대비를 한바탕 쏟아냈다. 곧 내려야 할 정류장인데, 우산을 쓰고서도 쫄딱 젖은 사람들을 보니 우산도 없는 내가 버스에서 내려 비바람을 맞으면 어떤 꼴이 될지 상상이 갔다. ‘으아, 내리기 싫어.’ 졸업한 전문학교에 들러 졸업증명서와 일본어 전문사 자격 서류를 찾아 돌아오는 길이었다.




교무과에 들러 서류를 받고 돌아서려는데, Y 선생님이 나와 인사를 나누고 싶어 한다며, 잠시만 앉아서 기다려달라고 했다. 10분 정도 지나자 선생님이 오셨다. 귀국 얘기 들었다며,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다. 남편은 아직 면접을 보는 와중이지만,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반쯤 거짓말을 섞어 한국에 좋은 일자리가 났다고 둘러댔다. 그 뒤로는 역시나 예상했던 질문이 나왔다.


“대학원은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아… 저는 아무래도 자퇴를 해야 할 것…”


대답도 마치지 못했는데, 다 마른 줄 알았던 눈물이 그 잠깐을 참지 못하고 흘러나왔다. 닦고 또 닦아도 멈추지 않아서 내심 당황스러웠다. 그녀는 내 입시 서류와 연구계획서를 검토해주고, 나와 함께 면접 연습을 해주던 내 진학 담당 선생님이었다. 그때 나는 임신 상태였고, 대학원 시험장에 들어갈 때는 아기가 태어나기 3주 전이었다. 스승의 마음으로는 제자인 나를 응원했고, 같은 기혼 여성으로서 나의 입학을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네가 우는 걸 보니 좀 기쁘다. 안심했어.

지금의 그 눈물을 잊어버리지만 않으면 돼.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길은 다시 찾으면 되는 거니까.”


선생님과 나눈 대화를 생각하며 빗속을 달리는 버스 안에 조금 더 앉아 있었다. 그렇게 교토 시내를 한 바퀴 더 돌고서야 나는 집에 돌아왔고, 서둘러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를 데려와 평소처럼 저녁을 먹이고 씻기고 책을 읽어주다가 재웠다. 아이는 한국에 간 아빠를 몇 번이나 불러대며 찾다가 겨우 잠이 들었고, 나는 거실로 나와 다시 한번 오늘 흘린 눈물의 의미를 떠올린다.




나는 직장 동료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가 입장하는 것만 봐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눈물이 많은 여자다. 하지만 이상하게 남편 앞에서는 눈물과는 어울리지 않는, 꼬챙이 같은 말로 상대의 말문을 막아버리는 냉정한 사람 중 한 명이다. 반면, 남편은 남자치고는 드물게 눈물이 많은 사람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조금만 감동스러운 장면이 연출되어도 눈가가 촉촉해지고, 언젠가는 양희은의 ‘엄마가 딸에게’를 듣더니 “너무 슬퍼”라며 입을 삐죽이다가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그래도 가장 곤혹스러울 때는 나와 싸우다가 모로 던진 내 말에 상처를 받아 눈물을 흘릴 때다.

귀국 얘기가 나왔을 때도 그랬다. 나는 언제나처럼 자분자분한 말투로 회사 생활을 견디지 못하는 남편의 나약함을 비난했고, 내 대학원 생활이나 경력을 하등으로 여긴다며 분노했다. 그리고 밖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집으로 가지고 퇴근하는 남편의 태도를 ‘유난함’으로 둔갑시켰다. 남편은 울었고, 옆방에서 술을 마시다 잠이 들었다. 부부싸움이라는 건 참 이상하다. 지면 약이 오르지만, 이기면 찝찝하다.


“언니가 남편을 너무 사랑하는 게 문제야.”

한쪽이 세면 넘어진다. 관계가 유지되고 있다면 알게 모르게 서로 애쓰고 있는 것.


어제 집에 놀러 온 아는 동생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녀 역시 대학원을 마저 졸업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게 내게 너무 큰 손해라는 거였다. 임신 후기, 몰려오는 졸음을 참으며, 점점 무거워지는 몸으로 어렵게 준비해 들어간 학교인 만큼, 막바지까지 달려서 졸업장을 얻어 돌아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내게도 물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 생각했을 때야 그렇지, 가족 전체를 두고 고민하면 일순위에 올려두기 곤란한 가정이다. 나는 열심히 공부를 하고, 남편은 그저 묵묵히 돈을 벌고, 아기는 이유도 모른 채 엄마, 아빠를 향한 그리움을 감내해야 한다. 이런 구조에서 가장 뒷전이 되기 좋은 부분은 결국 살림이나 육아가 될 테니 우리 중 누구에게든 결핍은 찾아갈 것이다.

지난 연애에서는 나도 누가 덜 사랑하고, 더 사랑하는 쪽인지를 계산하는 사람이었다. 퍼주기만 하다가 제대로 보상도 못 받고 늙어가는 것만 같았던 내 엄마를 떠올리면 응당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내 기준대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몇 개의 허들을 세우고, 상대가 그걸 뛰어넘는지 아닌지를 끊임없이 재곤 했다. 마음이 시들어 먼저 등을 보인 사내도 있었고, 내 쪽에서 자격 미달이라며 밀어낸 상대도 있었다.

그런데 결혼을 해보니 그런 걸 생각할 여유가 없다. 항상 나만 양보하는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문득 나의 흠을 말없이 보듬으며 가고 있는 상대를 보면, 그 순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생색내던 내 태도가 부끄러워진다. 그때 생각한 게 이런 거였다. 상대에게 ‘남편이라면 이래야지’라고 말하기 이전에 사람 대 사람으로 이해할 범주인지 아닌지를 따져보자.




남편이 울다가 잠이 든 날, 나는 밤새 뒤척였다. “귀국 안 할 거야. 나 대학원 졸업할 거야.” 이렇게 으름장을 놓으면 남편은 매일이 썩은 표정이긴 할 테지만, 최소한 그 회사를 그만두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귀국’이란 화두의 이 싸움은 주기적으로, 졸업하는 그날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언성 높이는 부모를 보며 아기는 불안한 상태로 자랄지도 모를 일이다. 거기까지 굳이 왜 생각하느냐 묻는다면 어쩔 수 없다. 그건 또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걱정을 만들어내는 내 성격 탓이니.

연애 시절, 남편은 짜증을 잘 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상대가 황당하게 굴어도 웃어넘기려 했고, 악 앞에 악으로 대응하지 않으려 애썼다. 가령, 누군가 난폭 운전으로 우리 옆을 아슬아슬 비켜가도 “저 사람, 지금 화장실이 급한 거야” 하며 웃었고, 내가 서운함 때문에 몇 시간째 가시 돋은 말을 해도 동공이 커진 눈만 껌뻑 껌뻑 감았다 뜰뿐, 나에게 되받아치는 시늉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이 사람과 살면서 싸움의 기술이 늘었다. 상대의 약점을 툭툭 건들고, 허점이 보일 때 잽을 날린다. 남편이 질 수밖에 없는 우리의 싸움에서 그가 눈물을 택하면(본인의 선택이 아니라 반사작용일지도 모른다) 결과는 뒤집힌다. 신장 180에 달하는 건장한 남자가 나 보기 창피해 얼굴을 가리고 울면 나는 그제야 독기를 뺀다. 병 준 이가 약까지 주는 모양새로 같잖은 위로를 한다.


“나는 오빠가 이거 하나는 명심해줬으면 좋겠어. 남녀는 불평등해. 특히 결혼하면 더 그렇지.

그래도 ‘원래 불평등하니까 너도 그냥 참고 살아’라는 말은 하지 마.

적어도 나를 가여워는 해줘야지. 인간 대 인간으로.

오빠가 나의 꿈과 경력을 응원하고 지지해줘야 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야.”


퇴사 후 천천히 쌓은 몇 권의 결과물들. 원고를 쓰거나 번역을 했다.


같이 결정한 문제를 곱씹고 딴소리를 하면 남편은 또 뒷목을 잡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귀국 문제에 대해 나도 더는 뒤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선생님 앞에서 흘러나온 내 눈물의 의미는 여전히 아리송하다. 교토 생활을 끝마치는 게 아쉬운 건지, 아니면 정말 학교를 그만둬야 하는 게 속상한 건지. 사실은 아기를 돌보면서 ‘대학원생’이라는 구실 좋은 타이틀과 소속이 생겼다는 것에 내심 안도감을 느꼈던 것도 같다. 끊어진 내 경력과 다음 경력 사이에 ‘전업맘’이 아니라 ‘학생’이 끼어있으면 어쩐지 징검다리 같아 보였으니까.

하지만 오늘 Y 선생님의 말처럼 결혼을 하면 모두를 위한 타이밍을 잡아야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저쪽이 안정이 되어야 나도 마음 편히 뭔가를 시도할 수 있고, 서로 박자를 맞추지 못하면 각자 피부 밑으로 고름을 쌓게 된다. 말하자면 이인삼각 경기(이제는 삼인사각)처럼. 게다가 우리 둘 사이에는 아무런 악의 없이 웃으며 밥그릇을 휙휙 던져대는 막무가내 아기도 있다. 이 아기의 거취가 정해져야만 두 사람 모두 사회에 발을 디디는 게 가능해진다.

남편에게 오늘 월세 계약을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누구 하나 떨어뜨리고 갈 수 없는 삼인사각 경기 출발선에서 다시 한번 호흡을 가다듬는다. 어디에 있든지 우리는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에 맞춰 움직여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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