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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이 Oct 07. 2024

8. 프라이버시니 묻지 마

아니 물어봐 줘

흔히들

학교 다닐 때는 대학은 어디 갈 거니?

대학 졸업하면 직은 했니?

결혼은 언제 할 거니?

결혼하면 아이 언제 가질 거니?

또 첫 아이를 가지면 둘째 언제 낳니? 등등


질문이 이어진다고 한다.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을 꼬집는 말이기도 한데,

요즘은 개인주의 성향과 더불어 이런 질문들이 프라이버시를 침범하는

배려 없고 예의 없는 말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그런지 개인사에 대해 잘 묻지 않는 것 같다.


나도 사실, 결혼하고 나서 "아이는?"이라 질문을 거의 받지 않았다.


양가는 물론, 교회, 회사 동료, 친한 친구들 등 넓지는 않지만 내 주변 인간관계를 모두 포함해서 말이다.

나이 많은 양가 부모님도 그럴진대, 젊은 주변인들이라면 더 그렇지.

이렇듯 프라이버시를 묻지 않고

남의 개인사, 특히 남의 아픔에 대해 '가십거리 찾듯' 나쁜 마음으로 묻지 않으니 좋기도 했지만

어떨 땐 물어줬으면 하는 양가감정이 들기도 했다.


왜인가 생각해 봤더니, '나 지금 너무 힘들다'는 마음을 나타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왜 그렇게 하나같이 배려도 많고, 예의도 잘 차리는지,

아니면 정말 나에게 관심이 없는 걸까?

내가 이렇게 인간관계가 좁고 또 관계를 잘 형성하지 못했던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상하리만치 물어오는 사람이 없었다.


시험관 이력만 5년이니 그 사이 얼마나 많은 에피소드들도 있고,

또 딱히 육체적으로는 힘들지 않다고 했지만, 이런저런 어려움이 왜 없었겠는가?


다 털어놓고 한 번은 속 시원히 풀어내어 모든 부정적 감정들과 '좋은 이별'을 할 필요가 있는데

그러지 못하니 계속 마음 안에 묵혀두고 답답했다. (그래서 이 브런치 스토리를 쓰기로 결심한 것도 있다)


시험관 하는 사람들이 모인 단톡방에도 들어가서 어려움을 나누고 공감을 받고 싶었지만,

나 같은 케이스는 잘 없었고, 또 그 안에서는 모두가 힘든데 나까지 우는 소리 하며

힘든 감정을 더 보태기가 싫었다.


또 진심 어린 관심과 조언, 감정 공유가 있기도 했겠지만, 

타인의 힘듦 호소에는

'힘 내', '응원할게'라는 식상만 말로 끝나는 걸 봐왔다.

혹은, '너는 그랬니? 야, 나는 더 했어'라며

말 많고 목소리 큰 사람들의

'내 상황이 제일 힘들어'로 시작되어

결국 그들의 얘기로 이어지게 마련이더라. 그러니 그냥 입을 꼭 다물게 되었다.


혹은 상대가 내게 극히 개인적인 일, 그것도 아픈 일을 물어봤다는 무례하다는 이유로

오히려 상대에게 내 묵은 감정까지 오버해서 토해낼 것만 같기도 했다.


그래서 이런 온라인의 힘을 빌어 시험관 여정과 그 당시의 일과 감정을 글로 써 내려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정말 내 주변 이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던 걸까?

아니면 너무 배려해서였을까?

아니면 누군가의 아픔을 구구절절 들어줄 여유가 다들 없는 걸까?


나 답답하다고! 내 얘기 좀 하고 싶다고!

나 너무 힘들었고, 정말 이런저런 어려운 상황들이 많았는데,

그럼에도 나 잘 견디고 이렇게 나름 잘 살고 있다고!!!!


이제는 얘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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