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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이 Oct 21. 2024

10. 공감과 위로도 배움이 필요해

입양이라는 말 함부로 하지 말라

"우리 친척 누구누구는 갓난아이 입양하고

 다 공개했는데도 밝게 잘 컸지 뭐야~"


"무자식이 상팔자야,

왜 그리 어렵게 아이 가지려 해?"


"마음 편한 게 최고이니 너무 조급하지 마~ 아이 없어도 잘 살아!"


그냥 무심코 흘려듣던 말이었다. 다 위로해 주는 말들이라 생각하며 오히려 고마워했다.

그런데 좀 이상했다.


'나와 남편 닮은 핏줄 하나만이라도

있었으면 해서

이런 고생 저런 고생 꾹 참고 있는 사람한테 어떻게 너무나도 쉽게 입양 얘기를 할 수 있지?'


'너무 고생하지 말고 다른 방법도 있다'는 얘기를 하기 위함이었을 테니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말자'라며

말 너머에 있는 그들의 마음을 이해해보려고도 했다.


그런데


'왜 위로받는 사람이 위로해 주는 사람의 사정까지 생각해야 하는 거지?'

'그들은 그저 나의 마음 아픈 상황을 구실로 가십처럼 얘기하고 수다 떨며 즐겼을 뿐인데?'

라며 꼬인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다.


임신이 어려워 자기 배에 주사 바늘을 수십 번 찔러 가며 몸 고생, 마음고생하고,

왕복 세 시간이 걸리는 병원을

일주일에 2~3회 오가면서,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병원비로 쓰면서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아이를 간절히 기다리는 이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있을까?


생각 없이 말을 한 그들을 미워하는 한편으로,


'왜 그때 불편한 내 마음을 솔직히 표현하지 않았을까?'

라며 자책하기도 했다.


40이 넘은 늦은 나이에 결혼해 임신이 어려웠기에 결혼 직후 바로 시험관 전문병원을 찾았다.

나이가 많아 객관적으로도 임신이 힘든 상황이지만,

검사 결과 나는 또래 평균보다 상황이 더 좋지 않았다.

시험관을 통해 임신이 되는 과정을 한 사이클로 본다면 첫 단계부터 난관이었다.

첫 단계부터 진행이 되지 않으니 답답했고, 또 '정말 임신이 될까?' 하는 불안의 연속이었다.

답답함과 불안함에 더해 이렇게 간절한데 '왜 나는 안 되지?' 하는 자기 연민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 때문이었을까?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게 흘려 들었던 주변의 말들이 갑자기 생각나면서

미움과 증오의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답답하고 불안한 내 상황을 다른 곳으로 집중해야 할 대체제가 필요했기에

그 말들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공감과 위로도 배움이 필요한 것 같다.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라는 책에는 공감을 이렇게 표현한다.


공감은 다정한 시선으로 사람 마음을 구석구석, 찬찬히, 환하게 볼 수 있을 때 닿을 수 있는 어떤 상태다.

공감은 사람의 내면을 한 조각, 한 조각 보다가 점차로 그 마음의 전체 모습이 보이면서

도달하는 깊은 이해의 단계이다.


결국 공감은 시간을 들여 천천히 상대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몇 마디 말로 주고받을 수 있는 값싼 위로가 아니란 거다.


위로와 공감도 배움이 필요하다.

최소 본인의 잣대로 타인의 아픔에 대해 섣불리 왈가왈부하거나 가십거리로 삼지 않아야 한다.

타인의 상황과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어떤 마음으로, 그리고 어떤 말로 전할 때 진심으로 위로가 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 어떨까?

이런 진심 어린 마음이 없다면,

위로와 공감이라는 미명 하에 상대의 아픔과 약점을 쉽게 얘기하거나 가십거리 삼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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