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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이 Oct 23. 2024

12. 딩크부부에게 들린 시조카의 속도위반 소식

아이러니한 세상

아기를 갖지 못한 건 신의 한 수라는 생각이 들지만,

주변인 및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임신, sns 팔로워들의 밍 아웃,

그리고 심각한 저출산에 대한 다양한 정책 관련 뉴스들을 볼 때면

잊고 있었던 아픔이 되살아난다.


얼마 전에는 시조카의 속도위반 임신 소식이 들렸다.

남편은 40 넘어 결혼한 반면,

남편 형님과 누님은 일찍 결혼한 상황이라

시조카들이 20~30대이다.

4명의 조카 중 대학 2학년 막내가 임신을 했다.

남자친구를 사귄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임신이라 집안에서 난리가 난 모양이더라.

당연히 축복할 일이지만..

그 부모도 놀라고 또 임신 문제와 관련해 평탄하게 얘기가 오간 것이 아닌지

집을 나가 남자친구 집에서 지낸다고 한다.

이렇게 원 가정에서도 껄끄럽게 생각하는 문제라

남편에게도 자세한 걸 묻지 않았다.


그러다가 출산이 가까워졌다고 남편에게 이름을 지어달라는 요청이 있었나 보다.

남편이 과거에 그 조카의 이름을 지어줬다고 했을 정도이니...

당연히 외삼촌(조카에게)이 생각났겠지.


뭐 아기에 대한 미련은 없고 과거의 상처는 다 잊었다고 생각했기에

그러려니 했는데

아이 이름을 지어야 한다고 도서관에 가자더니

관련 책을 읽더라. 여기까진 괜찮았다.


그런데

'내 아이의 이름...' 어쩌고 저쩌고 하는 제목의 책이 집 안에 떡하니 있는 걸 보니

급 발작버튼이 눌려졌다.


옆에서 나를 가장 잘 보고 힘들었던 상황을 잘 아는 남편이

본인 자식도 아닌

조카 자식의 이름을 짓는데

'내 아이의 이름...' 어쩌고 저쩌고?


다짜고짜 따졌다.


어쩜 그럴 수 있는지?

최소한 나한테 의견은 물었어야 하는 건 아닌지?


그런데 남편 왈


부모도 옆에 없이 20대 초반 애가 혼자 애를 낳는데 얼마나 두렵겠냐?

오히려 '조카 이름 지어줘도 되냐?'라고 한테 묻는 게 이상하지 않느냔다.

과거의  아픔을 꺼내는 격이라나 뭐라나...


헐... 이게 무슨 대답이라고...

그럼 혼자 애 낳는 조카 걱정은 하면서

시험관 하느라 5년 동안 온갖 고생 다했는데,

임신과 출산의 경험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는

와이프에 대한 연민이나 걱정은 털끝만큼도 없는지..


어쩜 이리 공감능력도 없고

또 지금 화의 포인트가 뭔지도 모르는 남자인지...


조카의 아기 이름 정도 지어줄 수 있다 차치하더라도

그런데 그의 대답이 오히려 분노를 더 일으켰다.


그의 입장에선 화를 내는 내가 이해가 안 된 걸까?

사실,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히 축하해 줄 일인데,

이름 짓는 책이 떡하니 집에 있는 것에다

남편의 예상치 못 한 반응에 더 화가 난 것이다.


화에 더해 걱정도 있다.


조카가 지금은 원 가족과 연을 끊었다 하지만,

애기가 크면서 자연스럽게 다시 가정의 일원이 되어

집안의 웃음이 되며

가족들 모임에서 중심이 될 터인데...


앞으로 나는 어떤 모습으로 대해야 할까?

방긋방긋 해맑게 웃는 아기를 보며

그 웃음에 동화된 듯 나도 함께 웃어줘야 할지,

아니면 불편한 기색 내비치며 내 아픔 좀 알아달라고

무언의 시위를 해야 할지....


해맑은 아이와

그 아이를 보고 기뻐하는 가족들을 보며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덧)

이 글을 쓰고 몇 달이 지나자 또 다른  시조카 두 명의 임신 소식이 줄줄이 들려왔다.

난 이제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하나?

표정 관리가 안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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