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2020
친구를 따라 원데이 드로잉 체험을 하는 도중, 웃음이 피식하고 샜다. 왜냐고 물어보는 친구에게 ‘십 수년 만에 제 발로 여길 온 이 상황이 재밌어서’라고 둘러댔는데, 사실 나는 나 때문에 적잖이 당황했다.
먼저, 나는 선생님이 그려놓은 스케치에 자유롭지 못했다. 완벽하게 스케치가 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가이드라인처럼 그려져 있을 뿐인데, 그 선을 넘겨 색을 칠할까 긍긍해하며, 때로는 붓 손질이 제대로 안 되어 있노라 도구를 탓하며 안쪽으로 칠하느라 오만 신경을 집중했다. 아크릴 물감이라 덧댈 수도 있다는 성질만 알면 선을 넘고 때로는 덮으며 만들면 됨에도 불구하고 이 선 밖은 낭떠러지처럼 아슬아슬.
이번에는 수정이 무서웠다. 지금 칠해져 있는 이 색을 똑같이 만들어내지 못하면 어쩌지, 지금 이 수평수직을 지켜내지 못하면 어쩌지. 저런 붓 터칭이 안 나오면 어떻게 하지. 아 왜 처음부터 넉넉하게 만들어 놓지 않았을까. 처음부터 마감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까. 후회.
중요한 건 선생님이 이야기를 할 때까지 나는 캔버스를 놓인 그 위치 그대로 칠하고 있었던 것인데, 수직으로 내려오는 선을 좀 더 정교하게 하기 위해서는 캔버스를 가로로 놓고 수평을 만들어 될 것이었는데 말이다. 왜 나는 캔버스를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는가!
다들 도전하는 삶을 사는데 나 혼자 너무 틀 안에 갇히려 들었나. MBTI도 그런 성향이던데. 얼마나 내가 선 안에서만 머무려 하고, 깨고 싶어 하지 않는지를 확인한 씁쓸하게 충격적인, 뜻밖의 시간. 이도 저도 옳은 삶이지만 그래도 나는 좀 더 내 안에서 도전하는 방법을 찾아가고싶다. 지켜야 할 것은 지켜야 하지만, 변할 수 있도록. 진짜 변화를 줘야하는 시점에 망설이지 않도록 이 느낌적인 느낌은 꼭 가지고 가고 싶다. 맨날 지루하다고 심심하다고 하지 말고, 소소한 변주를 찾아내고 움직이는 그런 내적도전.
아마도 미술은 그걸 가능케 하지 않을까. 오늘 아주 좋은 취미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