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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요우 Oct 02. 2021

그 여름, 익선동

덜어내기

  오래만에 종로 3가역에 하차했다. 종로는 서울에서 제일 처음 생긴 자치구이기에 서울내에서 가장 많은 동을 보유했다. 서울에서 차지하는 위치, 표면적의 크기, 상징적이고 역사적인 의미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심장한 곳이다.

역사와 전통의 더깨 위에 나만의 혼재된 양산을 띤 기억도 머물러 있는 추억 자판기같은  곳이기도 하다. 큰 줄기의 역사가 흘러서 현까지 명맥이 이어져왔듯, 나만 알고 있 사적인 기억이 추억이 되어 그곳 박제되어 있었다.

나의 근길이었고, 고된 노동의 현장이었으, 숱한 만남과 약속의 장이기도 했다.  천막이 쳐진 노점에서 미래를 점쳐보거나 과거를  복기하기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예술과 건축, 역사를 향유할 수 있는 곳이었고, 무엇에 갈급함이 없이도 하릴이 걷기에 더할 나위 없는 곳이기도 했다.             

  유서깊은 거리에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돌멩이들은 젊은 시절 그 어느날, 길을 걷다 마주쳤을 암석이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흙 한 톨의 지분만큼 내 추억이 자리한 곳이 그곳일 테니까.


  한때 회사가 있던 공평동 사옥은 면점으로 탈바되었다. 아침마다 지각을 려하며 동동거리면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긴 줄에 합류해 있었던 나는 사옥 앞 표식을 한번도 주의깊게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바쁘 건조한 마음으로 스쳐 지났던 그곳이 엄한 역사의 현장이었던 민영환 자결터라는 사실을 인지한 것은 회사나오고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다.

이직으로 적응하기 위한 발버둥, 육아 휴직 후 업무 복귀로 인한 부담감, 다시 시작된 야근의 고단함으로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이다. 민족  대표들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는 회사 옆 태화 빌딩터도 같은 이유로 눈길을 두지 못했다.

   그러니 회사에서 조금만 방향을 틀어 골목을 굽이굽이 걷다보면 익선동이 나온다는 것은 당연지사 알 턱이 없었다. 방송, 기사로 접던 핫한 곳이 지척에 있었는데도 회사 주변만을 맴도는 지박령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한참의 시간이 흐 어느 늦여름, 다시 그곳으로 향했다. 익선동은 초행이었지 낯설지 않았다.

머지 않은 곳에 위치한 전 회사, 낙원상가, 인사동이 목적지의 좌표를 알려주었다.

  익선동으로 향하는 길에 만난 이발소 앞에서 붉고 파란빛의 강렬한 원색 조합으로 번쩍이는 네온 사인을 발견했다. 그곳으로 무료 지하철을 타고 4000원짜리 이발을 하러 어르신들이 들락거린다. 노년층만을 위한 특화된 이발소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리한 교통과 접근성, 부담없는 가격으로 당당하게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어 주었기에 한때는 그곳의 주류였을 그들이 다시금 자리할 공간이 생긴것이겠지. 사와 전통을 계승하며 젊은이들만의 성지만은 아니라는 형평성을 일깨워준다. 발소 주인은 필시 관록있는 자로 호혜로운 베품을 할 줄 아는 사람일거라고 넘겨 짚어본다.


  상대방과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좁다란 골목길을 돌며 구시가지가 주는 내밀하고도 폭신한 위안 느낀다.

  트렁크를 끌고 가는 일본 여성 관광객들, 670대 마실나온 할아버지, 20대 환하게 빛나는 여성들을 스친다. 행인들의 구성이 이처럼 다양한 곳이 또 있을까? 공존과 융합의 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옥을 개조해 만든 카페, 레스토랑, 옷가게들을 지난다. 서까래와 마당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한옥과 서양문물의 도입으로 혼합된 양상을 띤 개화기 시대의 매장, 이국적인 태국 휴양지 컨셉의 레스토랑까지 시대와 국경을 넘나드는 거리를 탐색한다. 조선 시대의 한옥 안에 유럽에서 넘어온듯한 앤틱 가구와 트렌디한 디저트들의 조합 생경하기도 하다.

상권의 구색 역시 공존과 융합의 키워드를 함께 가져가는것만 같다.


"이건 무슨 종류의 음악이죠?"

  여자 친구를 따라 온 듯한 30대 남자가 점원에게 묻는다. 두꺼운 린넨 소재의 여름옷을 셀렉한 둔감함, 점포의 월세가 반영된 듯 퀄리티보다 고가의 가격표가 붙어 있는 상품들 보다는 차라리 인테리어와 조명, 음악 선곡에 탁월한 안목을 지녔다고 후한 점수를 매기던 찰나였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봐주길 바라는 것들보다 곁들여진 부가적인 것들에 인상적인 마음을 느끼기도 하는 법이다.

  아마 이곳은 평일에는 넥타이 부대들의 보행로가 될테고, 캐리어를 끌고 유입되는 다국적 인종들의 문화의 통로가 될 것이다.

익선동 길목 어귀의 풍경은 이국적이기도, 전통적이기도, 친숙하기도, 낯설기도 하다. 익숙한듯 오래된 적 위에 새로움이 덮이고 녹아들어 묘한 매력 넘친다.

행보는 또 언젠가 추억으로 남아 소소한 역사를 이룰 것임을 알기에 사진으로 담아내고 소중히 기억속에 저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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