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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요우 Oct 02. 2021

돈암동 구룡포 계절횟집, 그리고 아그리파

쏟아내기

  입맛이란 건 개인의 시도와 노력 여하에 따라 일정 부분, 익숙한 것으로 변환시키거나 재탄생시킬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미리 어떤 한계점을 그어놓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어느 정도까지는 조정 가능한 지점이 있을거라고 믿는다.

  선천적 호불호에 후천적 노력이 덧붙여지면 취향과 기호가 생겨난다. 이들이 내적갈등이라는 팽팽한 줄다리기를 거치며 비로소 미각의 정리가 이루어진다. 참고 먹을 것, 도저히 그러지 못하는 것, 찾아먹는 것, 거부하는 것이 생겨난다.

가급적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식재료로 만든 여러 종류의 조리법을 접해보면 성인이 되어 거부감을 행사할 영역이 그나마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혹여 그 골든 타임을 놓쳤다하더라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누구나 어린 시절부터 추어탕, 순대국, 물회, 동태탕 같은 걸쭉한 음식들을 꿀떡꿀떡 잘 받아먹지는 않았을테니까. 어른이 되어서 자연스럽게 참맛을 알아가는 음식들도 있는 법이다.

  만일 음식을 좀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음식에 깃든 만드는 사람 수고로움과 정성을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거부하는 음식의 가짓수가 좀 적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맛의 호불호라는 고유한 취향은 잔존하겠지만, 섣불리 앞에 놓인 접시를 밀어내진 않을 것이기에.


  나의 경우 음식에 대한 호불호는 확실할지언정 편식은 없는 편이고 대식가이기까지 하다. 물론 혐오하고 기피하는 음식도 분명 존재하지만, 간이 세거나 잘 맞지 않더라도 여간해서는 거의 입으로 가져가는 편이다.

고유의 식성이 있었겠지만 화선지에 서서히 먹물이 들듯이 원래의 성질을 후천적 노력이 천천히 바꿔나갔을 것이다. 그러면서 건강상, 예의상의 이유로 섭취가능한 영역이 늘어갔다. 시도하는 횟수에 대한 노력의 대가로 수용할 수 있는 영역이 더 확대된 것이다. 음식에 대한 허용치를 키워주는 선순환이었다.

수고롭게 애를 써서 변화를 이룰 수 있는 일들이 비단 입맛의 교정에만 국한된 일일까?


  순수한 열정을 품고, 적성에 맞는 진로로 노를 젓고, 공을 들이던 노력의 대항해 시절이 있었다. 큰 변수나 어떤 요행없이 열정과 노력 투입 대비 그에 당한 결과물을 받아볼 수 있었던 첫 지점이었다고 생각한다.

  대학 합격자 현수막이 현란하게 걸려있는 돈암동 입시 미술원에 발을 디딘 것은 고1 가을 무렵이었다.

본격적인 입시 미술을 준비하는 기초 체력을 기르기 위함이었던건지 1주일 내내 2절 스케치북 위로 팔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선을 긋고, 5단계 명암을 넣는 연습부터 시작했다. 마치 초1로 돌아가 종합장에 직선, 곡선, 지그재긋던 것과 비슷한 심경이었다. 바로 캐논 변주곡을 칠 수 있으리란 기대를 품고 찾아간 피아노 학원에서 바이엘 책을 받아들고 건반 익히기부터 시작하는 것처럼 진이 빠졌다. 뷔페에 가서 한꺼번에 먹고 싶은 것을 수북이 접시에 쌓아올리듯 하루빨리 상급자가 되고싶은 욕심에 성급한 마음만 일었다.

실력을 키우고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섣부른 선행보다는 견고한 연습이 필요했다. 기초에 기본을 더해 바닥을 단단히 다져나가야했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느리지만 꼼꼼하게 짚고 제대로 해나가야 했다.

그렇게 점, 선, 면이 도형이 되고 아그리파, 쥴리앙, 비너스, 카라카라, 아리아스, 호메로스 같은 형상이 되었다.

  석고상 위에 보자기를 덮고 대략적인 윤곽을 쫓으며 내재된 표정을 떠올려 그려나가기도 했다. 아예 심플해지면 실루엣은 더 명확해지고 본질에 접근하기 쉬워진다. 머리칼의 구불거림과 눈두덩의 깊이, 옷의 주름같은 미세한 부분에 현혹되지 않고 형태의 흔들림 없이 형체를 잡아나갈 수 있다.

  조명을 낮추고, 그 다음으로는 조명을 끄고 어둠 속에서 선을 긋고, 빛의 각도를 가늠하며 명암을 넣기도 했다.

  개인적인 기준에서 보자면 데생의 완벽한 숙지였다.

  그렇게 시간과 열정과 노력의 합작품이 탄생했다.


  성북천을 따라 볕이 잘 드는 곳에 자리한 구룡포 계절횟집 앞에 도착했다. 양지바른 명당이 바로 이런 곳을 지칭하겠거니 싶은 곳이었다.

고교 시절 품었던 희망과 가능성과 치열함이 봉인된 돈암동은 몇십년만이었다. 한때는 특별한 매일을 보내던 장소, 익숙했던 그곳이었다. 지치고  힘들어도 밝고 희망찬 미래가 그려질거라  믿고 꿈꾸고 설레였던 곳이었다. 차별화되고 특화된 그 누군가가 되기 위해 기웃거리던 곳이었다.

  그날의 목적인 전어회를 위시해 전어 구이, 전어 무침까지 집나간 며느리도 다시 돌아오게 한다는 궁극의 맛을 찾아 멀리서 온 수고로움에 대한 대가로 나를 위한 선물을 했다.

  생소한 식재료가 입속에서 탱글거리며 꼬드득 씹히는 쪽과 고소하고 기름진 풍미를 내며 바삭하게 살이 으깨지는 쪽을 번갈아 오갔다. 어느 쪽이 더 나은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저울질해 보면서.


  일반적인 범주로 본다면 평범한 전업 주부가 된 내가 한때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꿈꿨던 곳에서 이러고 있음에 많은 감정이 밀려왔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고 내 것으로 숙지하기 위해 노력하던 열정은 그때 이후로 되살아나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것보다 할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보다 해야하는 것을 우선시하는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낯선 음식을 접하며 또다시 열정을 불태우고 새로 시도해볼만한 것을 찾아 두리번대야할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전어회는 익숙해질 미각으로 재탄생할 준비를 마쳤다. 이제 다음은 내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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