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엔 책상도 스탠드도 없다. 공부를 하거나 수업준비를 할 때면 낮이나 밤이나 주방 식탁으로 간다. 식탁이 넓어서 공부하기 참 좋다. 한 가지 단점은 밤에 주방 불을 켜면 아이들 자는 방이 환해진다는 점이다.
잠 좀 자라, 제발
하고 싶은 게 많은 나. 애들 재우고 공부도 하고 싶고, 책도 읽고 싶다. 아이들이 잘 자면 주방에 불 켜고 식탁에 앉을 수 있을 텐데.
요즘 우리 집 청개구리들이 좀 컸다고 일찍 안 잔다. 저녁 10시에도 누워는 있지만 눈이 말똥말똥하다. 집 전체 소등상태를 유지해야 겨우 분위기가 잡혀 잠이 든다.
덕분에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 주방진출을 못한다. 애들이 꿈나라로 갈 때까지 기다리며 전자책을 읽거나 블로그 포스팅을 하거나 유튜브 인강을 듣는다. 그나마도 요즘 잠이 많아져서 보다가 잠들 때가 많다.
스탠드가 필요하다
제대로 책이라도 보려면 불빛이 필요하다. 주방 등을 켤 수 없어 스마트폰 손전등으로 책을 비춰 보기도 했다. 거치대가 없어 폰을 들고 있자니 팔이 아팠다. 기대서 세워두자니 온 방이 환해진다.
밤에 식탁에 앉아서 조용히 공부하려면 스탠드가 필요할 것 같았다. 비싼 거도 필요 없으니 다음에 다이소 가면 5천 원짜리 스탠드가 있나 찾아봐야지 하고 몇 주째 맘만 먹었다. 쇼핑 귀차니즘이 또 발동해 미루고 또 미뤘다.
그러다 며칠 전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 올랐다. 남편이 샀다가 방치 중인 고정식 핸드폰 거치대가 눈에 띄었다. 의자나 책상 같은 곳에 집게로 고정시키고 사용하는 거라 이동식은 불가능하다.
무엇에 고정을 시키면 이동이 가능할까 고민하던 중 둘째가 학교에서 챙겨 온 '개교 100주년 기념책'이 보였다. 선생님이 '이거 필요한 사람?'하고 물었단다. 책 좋아하는 엄마에게 주려고 '저요!'하고 손들어서 챙겨 왔단다. 하하하. 하드보드 커버의 두툼한 책이 묵직하다. 이 둘을 결합시켰다. 훌륭한 스탠드가 되었다. 대박.
샀으면 후회할 뻔했다
첫날이니 방에 누워서 첫 개시를 했다. 신이 나서 남편에게 보여주고 자랑했더니 옆에 누운 남편이 한심한 듯 쳐다본다. "눈부셔, 그냥 잠이나 자~!"
그러거나 말거나. 밤에 책을 볼 수 있다니 갑자기 기분이 좋다. 불빛 하나에 신났다. 남편은 잠들고 나는 낮에 못한 공부를 이어했다. 아니, 공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드니 노트에 볼펜 똥그림이 춤을 추고 있다. 아, 공부 시작하자마자 졸았네?
깜빡했다. 난 엎드린 자세가 쥐약이다. 허리가 너무 아프다. 그리고 밤에 공부하고 싶은 마음만큼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 밤엔 잠을 자야지. 스탠드 돈 주고 샀으면 후회할 뻔했다.
일찍 자고 푹 자고, 공부는 낮에 맑은 정신으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