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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km 가는데 50분이나 걸린다고?!

서울에선 50분 거리, 우리 동네는 15분 거리

아이들과 함께 서울에 있는 언니를 만나러 갔다. 평일이라 남편은 함께하지 못했다. 자빼고 지들끼리만(?) 서울나들이 간다고 섭섭해했다. 놀러 가는 건 아니지만, 그냥 '서울'에 간다는 것만으로 '여행' 느낌이 들어서 부러운가 보다.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로 출발! 며칠 전부터 설레어하던 아이들은, 버스를 타고 30분쯤 지나자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했다. 장거리 버스 이용이 익숙지 않다. 퇴근시간이라 차가 막혀 2시간 만에 서울에 도착했다. 그리고 버스터미널에서 다시 약속장소까지 가야 했다. 평소 같았으면 지하철을 탔을 텐데, 서울 출발하기 전부터 언니가 신신당부했다. "애들 데리고 고생하지 말고 꼭 택시 타고 와!!"



기분 읽기

버스터미널에서 네이버 길 찾기를 해보았다. 지하철을 타면 2번 환승해서 45분쯤 걸리고, 택시를 타면 50분쯤 걸린다고 나왔다. 지난번 서울 방문했을 때, 네 식구가 다 같이 지하철로 이동하면서 느꼈다. 서울에 살면 다리가 튼튼해질 것 같다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걸어야 하는 이동 거리가 생각보다 길었다. 지하철은 복잡하다. 탈 곳 찾고, 환승장 찾고, 출구 찾느라 헤매기도 했다. 힘들다고 징징대는 아들 둘을 데리고 고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택시 타자!!


택시를 타면 지하철 요금의 4배 넘게 나오겠지만, 가방도 무겁고 애들이랑 맘 편하게 가는 게 더 중요했다. 마침 택시승강장에 빈차가 서 있다. 앗싸! 택시 네비에 목적지를 입력하니 45분 걸린다고 나왔다. 서울 안에선 어딜 이동해도 40분쯤 걸리는 것 같다. 서울에 1시간이란, 무언가 하기 위해 이동하는 동안 쉽게 사라지는 시간 같다.


퇴근시간과 맞물려 도로에는 차들로 가득 찼다. 택시기사님 현란한(?) 운전실력은 우리를 최대한 빨리 목적지에 데려다주려 최선을 다하시는 게 느껴졌다. 부~웅 끼익! 부~웅 끼익! 덕분에 다시 멀미가 날 것 같았다.


예상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도착하지 않는 동생과 조카들이 걱정되어 언니가 자꾸 전화를 걸었다. "동생, 도착하려면 얼마나 남았어?" "어, 지금 네비로 10분 뒤 도착이래!" 그런데 자꾸 네비 도착 시간이 5분씩 늘어났다. 결국 55분쯤 걸려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다. 저녁식사를 위해 식당에서 만났는데, 속이 울렁거려서 고기를 제대로 먹지 못했다. "우와, 서울 한 번 오기 진짜 힘들다."



현실 직시

내가 부산에서 살고 있을 때, 서울 사람들이 부산에 환상을 갖고 놀러 오는 걸 잘 이해하지 못했다. '부산에 뭐 별거 없는데, 왜 오지?' 그런데, 나 또한 막연히 서울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었나 보다. 우리나라 최고의 도시와 번화가, 멋진 건물과 볼거리, 넘치는 먹거리와 즐길거리를 상상하며 서울에 간다. 나에게 '서울'은 우리나라지만 우리나라 같지 않은, 어색하지만 신비로운 여행지 느낌이 있다.


하지만, 막상 서울에 오면 신비로운 것들을 즐기기도 전에 진이 다 빠진다. 서울 사람들은 모두 체력이 좋은 걸까? 아니면, 체력이 좋은 사람만 서울에서 살아남는 걸까?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기가 쪽 빨린 나는, 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어졌다. 조용하고 한적한 우리 동네가 너무 그리웠다.


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55분간 이동한 거리는 13km. 생각해 보니 매일 내가 수영하러 가는 거리와 비슷했다. 우리 집에서 수영장까지 12km, 출근시간이든 퇴근시간이든 15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곳이다. 내가 참 평화로운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긍정회로 돌리기

결혼과 동시에 남편 따라 귀농귀촌한지 13년 차. 처음엔 시골생활이 너무나 낯설고 어색했다. 없는 것이 더 많다고 느껴졌던 곳이지만, 결국 나는 그 시골생활에 적응해 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한다. 우리 동네 진짜 살기 좋은 곳이라고!


서울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서울에서의 하루는 시골에서의 하루보다 짧게 느껴졌다. 쫓기는 듯 마음이 급해졌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찼다. 하루가 지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기 시작했다. 심호흡을 하고 다시 마음의 여유를 되찾았다. 그래, 나는 시골생활이 체질에 맞나 보다.





서울에 다녀온 날 밤, 남편에게 서울에서 택시 타고 힘들었던 이야기열심히 했다.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내 덕분에 이렇게 차 안 막히는데서 여유롭게 사는 줄 알아!" "어... 진짜 고. 맙.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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