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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를 버리고 바닥을 선택했다

공간이 넓어지고 마음이 넓어졌다

결혼준비를 하며 젤 처음 구입한 가구가 침대였다. 결혼 전에도 침대생활을 했고 허리가 아파서 '침대는 기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구입했던 침대를 결혼 7년 만에 처분했다. 킹사이즈에 심플 화이트 디자인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 침대였는데.


아이가 하나, 둘 태어나고 나는 침대를 포기했다. 내 허리도 포기했다. 덕분에 남편 혼자 독차지하던 그 침대. 남편 너라도 잘 쓰면 좋을 텐데 자~꾸 다 같이 자자는 남편 덕분에 자리만 차지하던 그 침대. 비좁아서 버리자고 했더니 자긴 허리 아파서 침대가 필요하다던 남편. 그럼 왜 자꾸 비좁은 바닥으로 내려오는 거냐고! 언행일치 안 되는 남편 덕분에 1년은 더 방치하다가 마침내 처분했다.



침대 버리는 법

버리기엔 너무 아깝고 내버려 두자니 너무 커서 고민했다. 사실 버릴 엄두도 안 났다. '침대 버리는 법'을 검색해 보니 매트리스와 침대 거치대 각각 폐기물 스티커 붙여서 대형폐기물 신고를 한 뒤 마을쓰레기장까지 옮겨 놓아야 했다. 분리해서 차로 옮기는 건 남편몫이다 보니 남편은 귀찮다고 자꾸 미루기만 했다.


고민하다가 나 홀로 침대를 청소하기 시작했다. 아이들 부딪힐까 봐 붙여둔 모서리보호대를 떼어내고 스티커 끈끈이를 스티커제거제로 문질러 닦았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서 중고로 내놓았다. 처음엔 나눔을 생각했는데 침대상태가 너무 괜찮아서 중고판매에 도전했다. 안 팔리면 나눔 해보고, 나눔도 안 되면 어쩔 수 없이 폐기물로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걸 누가 사?!

중고가 5만 원. 남편이 "이걸 누가 사? 그냥 드림해!" 했다. 그런데 웬걸. 서울에서 화물운송차를 보낼 테니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남편은 "이걸 산다고? 화물차까지 써서? 운송비가 더 나오겠다!" 하며 황당해했다. 잠시 후 진짜 화물기사가 와서 서울로 싣고 갔다. 그러게 이걸 누가 사네. 봤냐? 봤냐고?! 내가 이런 사람이야.


침대가 없어진 방은 무척 넓었다. 침대 바닥자리에는 먼지와 벌레가 보인다. 으으으 소름. 치우길 잘했다. 안 봤으면 계속 모르고 살았겠지. 남편도 훤한 방을 보더니 만족해했다. 폐기물 스티커 살 돈도 아끼고, 옮기는 수고도 덜고, 저녁 외식비까지 벌었다. 굉장히 상쾌하고 기분다.



바닥생활 시작

침대가 없어지자 아이들이 신났다. 침대를 방방이처럼 놀다가 뛰어내리면 위험해서 늘 불안했다. 침대가 사라지니 넓어진 방에서 달리기를 하고 앞 구르기를 한다. 주택이라 층간소음 걱정 no. 아이들과 같이 자고 싶어 하던 남편도 바닥에 함께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바닥생활에 불편함도 많다. 매일매일 아침 이불을 개고 밤에 이불을 다시 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하지만 이불을 탈탈터는 개운함과 이불을 싹 치웠을 때 넓어진 방은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여유로워진다. 처음엔 아이들 놀이매트만 깔고 자다가 내 허리가 아작 날뻔했다. 오히려 남편은 딱딱한 바닥에서 자는 게 목디스크가 덜 아프단 걸 깨달았다. 아이들도 집에서 맘껏 뛰어놀기 좋아졌고 더 안전해졌다.


어머님과 한 집에 살다 보니 자유로운 내 공간은 방 하나뿐이었다. 그 공간이 넓어졌다. 자유로워졌다. 침대하나 비웠을 뿐인데 공간이 주는 여유로움이 참 컸다. 청소할 맛도 나고, 공부할 맛도 났다. 애들하고 이불에서 뒹굴며 놀아줄 맛도 났다.



아무것도 없는 안방

주거분리를 하고 안방은 더 커졌다. 지금 우리 집 안방에는 화장대 겸 핸드폰 올리는 네모난 블록(?) 하나만 있다. 매트리스는 몇 가지 교체하며 사용하다가 지금은 세워서 보관하는 바닥매트리스를 사용하고 있다. 물건이 없고 매트리스는 세워두니 방이 더 휑하다. 그 휑한 느낌이 너무 좋다. 쳐다만 봐도 좋다.


반강제로 미니멀을 실천 중인 남편. 외식하거나 여행 갈 때, '아무거나 대충' 혹은 '네가 알아서 정해.'라는 남편의 태도 때문에 짜증 날 때도 있다. 그런 남편 덕분에 내 맘대로 미니멀하게 비우며 살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나의 비우기에 군말 없이 동참해 주는 남편이 참 고맙다.





부모님을 보며 나이가 들면 턱 하니 걸쳐 앉을 수 있는 침대가 좋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도 언젠가 다시 침대생활로 돌아갈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은 침대 없는 내 방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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