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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즐기자!

- 또 하나의 오늘 6

by 사랑비

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았다.

2년 전 검진 때는 없었던 몇 가지 문제들이 생겼다. 나도 이제 아플 때가 되었나 보다. 서글픈 맘이 들더니 부모님이 생각났다. 내 나이 때 엄마는 어땠더라. 엄마는 동네에서 슈퍼를 하는 사장님이었다. 새벽시장에서 물건을 떼오는 아빠가 집에 오시면 아침밥을 차려드리고 슈퍼로 출근하는 직장맘이었다.

아빠와 엄마 두 분 중 누가 더 돈을 잘 벌었다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 점집을 다녀오면 엄마가 늘 하던 말이 있었다.
“아빠는 엄마 복으로 사는 거란다.”

아빠는 이 말을 듣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린 내가 생각해도 억지스러웠지만, 아빠는 묵묵히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열심히 일을 했다. 아빠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자랐으니 게으름은 만고의 적이었다.

그래도 누가 나보고 아빠처럼 살라고 하면 해낼 자신이 없다. 8남매의 맏이라는 무거운 책임도 삼남매를 둔 가장도 못 하겠다고 할 것 같다.

엄마처럼 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6남매의 둘째 딸로 태어났지만, 항상 맏이 노릇을 했다. 당뇨병으로 고생하는 할아버지는 툭하면 우리 집에서 병치레를 하셨다. 부자집 아들로 곱게 자란 외할아버지는 피란 내려와서 할 수 있는 일이 농사였다고 한다. 고향으로 돌아갈 희망을 품고 가지고 온 돈으로 파주에 땅을 사서 제법 크게 농사를 지었다. 엄마 위로 언니가 있었지만, 외갓집의 모든 일을 엄마가 나서서 했다.

자식들도 다 여의고 두 분이 살게 되었지만, 식구 많은 집이라 발생하는 모든 일들에 대해 신경 쓰고 처리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의 몸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집안의 병력은 어쩔 수 없는지 아빠는 간암에, 엄마는 당뇨병에 걸렸다.

아빠는 간이식을 받아 10여 년을 더 살고 가셨다. 엄마는 인슐린 주사를 맞으며 혈당을 조절하는 불편함을 겪었지만, 다행히 큰 병을 앓진 않았다.

이제 내 차례다. 결과지를 들여다보며 어떤 병원을 가야 하나 찾아보았다. 두 군데는 꼭 가야했다. 아무 일 없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가 뭐 안 좋은 결과가 나오면 뭐 어쩌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갈팡질팡했다.

요즘 같은 시기에 대형병원은 마지막에 가야 한다고들 하니 동네 병원 가운데 전문 병원을 찾아서 예약을 했다. 무거워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진료를 하고 검사를 하고 결과를 보았다. 다행히 걱정했던 ‘암’은 아녔다. 하지만 두 군데 병원에서 시술은 해야 했다. 지난 한 달간 병원을 오가며 느꼈던 감정을 딱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건 늙어가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탓일까.

시술을 하고 병실에 누워있는데 아빠가 보고 싶었다. 중학교 입학 하기 전 맹장 수술로 입원한 적이 있는데, 방귀가 나오려고 배가 엄청 아팠다. 떼굴떼굴 구르는 딸을 보며 “내가 아픈 게 낫지.”라고 하면서 손을 잡아 주었다. 홀로 누운 병실에 아빠가 있었더라면 좋았겠다.

퇴원 시간에 맞춰 와준 건 여동생의 부탁을 받은 아들이었다. 미리 와 준 아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항상 잠이 부족한 아들이 엄마 퇴원 시간에 맞추지 못 할까 봐 걱정했을 딸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아들과 집으로 오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엄마가 없더라도 둘이 사이좋게 살 거지?”

“그러겠지? 지금도 잘 지내니까.”

덤덤하게 대답하는 아들을 의지해서 걸으며 곧 다가올 나의 시간이 끝나는 날을 상상했다.

난 어떤 감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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