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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즐기자!

- 또 하나의 오늘 7

by 사랑비

책상 서랍에서 우연히 찾은 봉투에서 발견한 ‘가족관계증명서’ 한 장.

2020년에 발행한 것으로 친정아버지의 이름 아래 돌아가신 할머니와 친정엄마, 우리 삼남매의 이름이 있었다. 잊고 지냈던 미안함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와 먹먹한 채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구 한 바퀴를 돌고 또 돌아 우주 밖 어딘가로 향했다. 현실이 아닌 어딘가로 향하는 내 생각은 끝도 없이 시간 여행을 시작했다.

상공부주택이라고 불리는 동네에 세 들어 사는 집의 툇마루에 서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하늘은 뿌옇게 흐려지고 있었고, 찬바람이 불어 방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대문도 없는 집으로 들어서는 작은 아버지가 나를 안아주었다.

그러고 보니 둘째 작은아버지와 같이 산 적도 있었다. 평생 고향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있는 줄 알았는데 아녔다. 그와 친했던 윤만이 아저씨의 모습도 떠올랐다. 작은 아버지는 물건을 배달하면서 자전거 짐칸에 나를 실어주었다. 야트막한 언덕을 오를 땐 내려서 자전거를 밀었다. 그럴 때마다 난 엉덩이를 들썩이며 자전거를 같이 밀어주었다. 부모님은 이때도 가게를 했다.

몇 차례의 이사를 거쳐 부모님이 마련한 집은 가진 돈보다 빌린 돈이 많은 마당이 있는 집이었다. 집을 사고 좋아하시던 부모님의 모습과 넓어진 방과 마루, 부엌을 보면서 우리 집이 부자가 됐다고 생각했다. 학교가 가까워진 것도 좋았다.

호사담화라고 한 말을 처음으로 경험한 건 이사하고 몇 해 지나지 않아서였다. 아빠가 17살부터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금 200만 원을 받고 쫓겨났다. 알만한 사람은 아는 종로에서 유명한 찹쌀 떡집이었다. 파릇파릇 새싹이 돋을 무렵, 딱 3개월을 쉬던 아빠는 자전거에 건어물을 싣고 집을 나섰다. 당신이 가진 (모찌 만드는) 재주를 써먹으려면 가게를 열어야 했고, 가족을 굶길 수 없었고, 빚도 갚아야 했으니 더는 물어 설 곳이 없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집을 나섰다.

그렇게 몇 년간 모은 돈으로 떡집 대신 슈퍼를 차렸다. 돈이 주인을 기다렸다는 듯 들어왔고, 성공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평생 친구와 놀러 다닌 적도 없는 아빠는 오로지 가족들을 위해 살았다. 자식들이 성장하고 먹고살 만해 졌을 때 그동안 돌보지 못했던 건강이 나빠졌다. 간암에 걸렸고 간 절제를 하고 투병 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열심히 산 대가는 건강을 치고야 말았다. 자식들은 금방이라도 아빠를 잃을 것 같아 안타까웠지만 약속이나 한 듯 아빠 앞에선 내색하지 않았다.

‘어떻게 저렇게 희생할 수가 있지?’

아빠의 인생을 들여다보게 된 게 이때부터였다. 아빠와 만날 때마다 아빠의 과거를 캐물었다. 처음엔 쑥스러워하고, 대단히 성공한 인생이 아니라고 할 말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점점 나빠지는 건강 앞에서 서울로 올라오게 된 이야기, 엄마를 만난 이야기, 이사다닌 이야기, 자식들을 낳았을 때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동안 아빠 사진을 제대로 볼 수 없었고, 녹취록도 컴퓨터 한 켠에 숨겨 두었는데 가족관계증명서 한 장이 이렇게 아빠를 꺼냈다.

아빠,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아빠, 우리 아빠,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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