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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구경] 청계천에서 만나는 'K-장터' 여행

서울시 광장시장, 동대문시장, 문구완구거리, 동묘시장, 서울풍물시장

by 김종성
동대문일요시장_02.jpg 청계천 자전거도로 옆 K-장터 / 이하 ⓒ김종성

서울 청계천은 종로구·동대문구·성동구를 지나는 도심 속 물길이다. 청계천을 거닐다보면 서울 관광명소 중 필수 코스로 손꼽히는 광장시장에서 "너무 싸서 화가 난다~!" 라고 써있는 재미있는 현수막이 어울리는 평화시장과 동묘벼룩시장, 서울풍물시장에서는 연이어 만날 수 있다.


저렴한데다 디자인과 질 좋은 의류와 잡화를 '득템'할 수 있다. 예전엔 중장년 아저씨들만 북적거렸는데, 이젠 청년과 외국인 관광객까지 찾아오는 명소가 됐다. 서울시 공공자전거 ‘따릉이’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린 후 청계천변에 나있는 자전거도로를 달리며 K-장터를 여행해도 좋겠다. 인터넷 지도에서 ‘서울시 자전거’를 검색하면 따릉이 무인 대여소 위치가 나온다.

광장시장_02.jpg 광진시장

100년이 넘은 맛집 장터, 광장시장


1905년 생겨난 백 년 역사의 전통시장 광장시장은 사시사철 시민들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찾아오는 서울의 자랑스러운 명소가 되었다. 광장시장(廣藏市場)의 연원은 조선 임진왜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왜군의 전격적인 침략으로 조선 조정은 군사력 동원이 필요했고, 그 군인들의 군복 제조에 필요한 옷감을 거래하는 장터가 종로거리에 생겼다고 한다.


구한말 일본인들이 남대문시장 경영권을 장악한 뒤 상권을 종로 쪽으로 넓혀오자 조선 상인들과 고종이 조선의 자본으로 이 시장을 세웠다. 공식 명칭은 동대문시장이었고, 청계천 광교와 장교 사이에 자리를 튼 까닭에 광장시장이라고도 불렸다.

광장시장_06.jpg 다양한 맛집이 많은 광장시장

광장시장은 입구부터 늘어선 먹자골목이 사람들의 발목을 붙잡는다. 광장시장의 명물 빈대떡부터 김밥, 찹쌀 꽈배기, 비빔밥, 경주 십원빵, 육회 등 눈과 귀를 자극하는 먹음직스러운 먹거리들이 시장 특유의 정겨우면서도 감각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광장시장은 자유여행자의 천국이다. 자유롭게 시장통 골목을 거닐다 만나게 되는 상점, 맛집은 SNS의 서울 핫플레이스나 유명관광지의 볼거리와는 또 다른 색다른 발견이자 추억이 된다.


100년이 넘은 역사를 지닌 종로구 광장시장은 노점과 노포(老鋪, 오래된 가게)에 이르는 다양한 맛집을 만날 수 있어 눈과 입이 즐겁다. 먹자골목에서 가장 인기 좋은 빈대떡, 각종 야채를 취향껏 골라 먹을 수 있는 산채비빔밥, 외국인들이 들으면 놀랄 마약김밥·할머니뼈해장국 등이 대표적이다. 재미의 어원은 ‘양분이 많고 좋은 맛’이라는 한자에서 왔다고 한다. 우리가 약속을 잡을 때 맛집부터 검색하는 걸 보면 재미는 곧 맛있는 걸 먹는 데서부터 온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동대문일요시장_01.jpg 일요일마다 너른 장터가 생기는 동대문 평화시장 일대

구제아닌 새제품을 싸게 파는, 동대문 일요시장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는 요즘 절약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 있다. 서울 동대문 평화시장 일대에서 펼쳐지는 '동대문 일요시장'이다. 일요일마다 의류, 잡화, 악세사리 등을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다. 평화시장 일대의 가게들에서 시중 가격보다 훨씬 싸게 판매해 '천원 시장'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판매 상품들 모두 구제가 아닌 새 제품이라는 점도 특징이다.


매주 일요일마다 평화시장, 광희패션몰 등이 모여 있는 일대 거리와 차도가 장터로 변신한다. 시민들이 많이 찾아오는 인기 명소가 되면서 인터넷 지도에 ‘동대문 일요시장’이라는 지명이 생겼다. 동대문 일요시장은 구제가 아닌 '새 제품'을 시중가보다 저렴하게 판매하는데다 중국산, 베트남 제품이 아닌 국산품이다. 디자인, 옷감, 마감 등이 나쁘지 않다. ‘무조건 2천원’ 팻말이 서있는 옷 무더기서 마음에 드는 옷을 쏙쏙 건지는 재미가 쏠쏠하다. 화투 그림으로 디자인한 사각팬티 같은 웃음이 나는 기발한 의류들도 많다.

동대문일요시장_08.jpg 동대문 문구완구 시장

단돈 5천원~2만원이면 멀쩡한 의류나 예쁜 신발을 장만할 수 있으니 절약의 성지라 불릴만하다. 요즘 같이 치솟는 고물가 시대에 단비 같은 곳이 아닐까 싶다. 나는 올 가을 입고 싶었던 청자켓을 만 오천 원에 사고 기분이 좋아서 아예 그 자리에서 입고 다녔다. 이렇게 시민들은 새 옷을 싸게 사고, 상인들은 안 팔린 옷이나 잡화 등을 재고 떨이 할 수 있으니 서로 좋다. 일요시장은 의류에서 신발, 양말 등이 주류이며 가방이나 예쁜 액세서리 등도 나와 있어 청년들에게도 인기다.


동대문 평화시장 앞 청계천 건너편에는 ‘동대문 문구·완구시장’ (종로구 종로52길 36)이라는 특별한 상설장터가 있다. 국내 최대 문구·완구 전문 시장으로, 시민들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아이들과 함께 찾아오는 명소다. 어른들도 좋아할 흥미로운 피겨(캐릭터 등의 모형 장난감), 인형, 플레이 모빌, 문구 등이 다양하게 펼쳐져 있어서다. 1970년대 중반부터 형성된 이 시장엔 각종 장난감을 저렴한 도매가로 살 수 있다. 완구뿐 아니라 공책, 필기류 등 각종 문구와 멜로디혼, 물감을 비롯한 교구, 화구 등도 시중가격보다 싸게 살 수 있다.

동묘벼룩시장_01.jpg 동묘벼룩시장

만원의 행복을 누리는, 동묘 벼룩시장


서울에 있는 많은 시장가운데 지갑이 가벼워진 시민들의 최애시장이 있는데 바로 동묘벼룩시장이다. 볼거리 풍성하고 살거리가 저렴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지하철이 연결된 수도권 시민들까지 찾아오고 있다. 지하철 1호선과 6호선이 오가는 동묘역이 시장 들머리에 있어 편리하다. 구제 옷, 오래된 가전, 책, 골동품, 시계, LP, 중고 가구, 카메라 및 공구류, 등산용품은 물론이고 자전거, 피아노까지 그야말로 ‘없는 것이 없다’데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가격 덕택이다.


주말과 휴일에는 자전거가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많은 전통시장들이 대형 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 편의점에 밀려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이곳만은 예외다. 십 년 후에, 혹은 이십 년 후에 오더라도 별로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곳이다. 오히려 동묘벼룩시장은 왕성하게 가지를 뻗은 식물처럼 나날이 불어나고 있다. 장터를 사랑한 어느 작가의 말대로 돈이 없고 친구가 없고 연인이 없을 때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일은 이곳 시장 골목을 걷는 것이다.

동묘벼룩시장_08.jpg 관우 장군의 사당, 동묘

시장이 할 수 있는 좋은 일 중 하나는, 초유의 고물가 시대에도 사람들의 얼굴에 표정과 온기를 입혀내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의류나 신발, 잡화 모두 1만원이 안 되는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 구제 또는 빈티지라 불리는 중고 상품에서 할인에 할인을 거쳐 흘러 들어온 새상품을 파는 번듯한 가게도 있다.


의류상점 가운데에는 개수가 아니라 저울로 달은 무게를 기준으로 판매 가격을 정하는 재밌는 가게도 있어 ‘만원의 행복’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식료품 가게들도 있는데 유통기한이 몇 달 남지 않은 여러 식료품들을 반값 이하로 구입할 수 있다.


동묘벼룩시장 안에 있는 동묘의 본 이름은 동관왕묘(東關王廟)'로 '보물 제142호'로 지정된 문화재다. 1601년(조선 선조 34년)에 지어졌다. 여기서 '관왕'은 중국 삼국지에 나오는 장군 '관우'의 별칭으로 그의 혼백을 모신 사당이다. 임진왜란 때 파병 온 명나라 장수들이 관우의 덕을 입어 전쟁을 이겼다며 조선 땅 곳곳에 관왕묘를 세우게 된다. 동묘는 이들 가운데서 가장 규모가 크고 제대로 격식을 갖춘 대표적인 관우의 사당이다.

서울풍물시장_01_.jpg 서울풍물시장

서울 최대 골동품 성지, 서울풍물시장


서울풍물시장은 청계천이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되면서 장터를 잃었다가 2008년 신설동에 새롭게 터를 잡은 곳이다. 옛 장신구와 고가구, 희귀 음반 등 다른 시장에서는 구할 수 없는 골동품과 독특한 물건들을 판매하고 있다. 2층으로 된 현대식 상가 건물로 외국인 관광객에게 인기 있는 서울풍물시장은 서울미래유산에 등재된 장터다.


750m 정도의 골목을 따라 동묘벼룩시장과 길이 이어진다. 두 곳의 시장이 소통하듯 이어지는 골목 또한 양옆에 장터가 빼곡히 나있다. 주말과 휴일이면 온갖 것이 길가에 난장을 이루고 펼쳐진다. 바르기만 하면 요통이 낫는다는 크림 장수, 떠듬거리는 한국말로 상인들과 거래를 하는 중앙아시아에서 온 이주민 청년들, 군복을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군용 의류와 제품을 파는 ‘밀덕(밀리터리 덕후)’ 아저씨··· 사람들의 면면이 흡사 소설 속 인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풍물시장_07.jpg 골동품 천국

서울풍물시장을 포함 청계천변 시장들은 이제 ‘K-키치’를 대표하지 싶다. 키치(kitsch)란 잡다하고 조악한 것들이 혼재됨 혹은 B급 정서를 표방하는 문화나 예술을 뜻한다. K-아트, K-축제, K-문학 등 화려한 K의 세계에서 당당히 B급 정서를 표방하는 곳이다. 이곳만의 독특한 매력 때문일까 장터에는 여러 국적의 외국인 관광객들이 흔히 보인다.


이 시장들은 트렌드나 유행에 맞춰 갑작스럽게 생겨나거나, 변화를 맞이하는 가게들이 아니다. 본래의 개성은 꾸준히 유지한 채 지역적 특색, 시간의 흐름 등이 자연스럽게 녹아 든 곳들이다. 청계천변에 있는 특색 있는 시장들은 머지않아 ‘K-장터’로서 서울시민들의 삶이 담겨있는 관광명소가 될 것 같다. 내겐 도시 서울의 소중한 자산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살고픈 도시, 가고픈 도시란 화려함과 소박함, 빌딩과 골목, 새것과 헌것이 함께 공존하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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