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북촌한옥마을
눈 내린 겨울날 가고픈 곳 가운데 하나가 서울여행1번지 북촌한옥마을이다. 서울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통골목이다. 종로구 가회동과 삼청동 일대에 조성된 북촌한옥마을은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면서 한옥을 잘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더불어 많은 사적들과 문화재, 민속자료가 있어 도심 속 거리 박물관이라 불릴만하다.
북촌은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으로, 풍수 지리적으로 좋은 지역이라고 하여 조선시대 사대부는 물론 권문세가와 왕족들이 모여 살았다. 조선말기 황현이 지은 <매천야록>에 의하면 "서울의 대로인 종각 이북을 북촌이라 부르며 노론이 살고 있고, 종각 남쪽을 남촌이라 하는데 소론이하 삼색(三色)이 섞여 살았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노론은 조선중·후기의 기득권 정파다.
북촌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만 골랐다는 명소가 북촌 8경이다. 한옥마을 골목골목을 걸으며 8곳의 명소를 찾아다니는 여정이 즐겁다. 한옥 마을에 깃든 운치를 느끼려면 눈 내린 겨울날이 제일 좋다. 북촌 8경엔 한옥풍경 외에도 창덕궁과 돌담길, 고풍스러운 학교교정, 박물관, 공방 등이 있어 다채롭다.
1경 창덕궁 전경, 2경 원서동 공방길, 3경 가회동 11번지 일대, 4경 가회동 31번지 언덕(북촌전망대), 5경·6경·7경 가회동 골목길, 8경 삼청동 돌계단길이다.
고적한 창덕궁 돌담길로 시작하는 북촌8경
지하철 3호선 안국역(3번 출구)에서 가까운 북촌문화센터는 북촌한옥마을여행의 베이스캠프다. 북촌의 역사와 다양한 여행 정보, 북촌8경의 위치가 표시된 '북촌 산책' 지도를 얻을 수 있다. 북촌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하자, 돌담 너머로 창덕궁의 전경이 펼쳐졌다. 북촌 1경으로 궁궐 안 설경은 나오기 싫을 정도로 멋지다.
창덕궁은 조선시대 임금들이 가장 오랜 기간 동안 거처했던 곳으로 광해군 때부터 270년간 정궁으로 사용됐다. 창덕궁이 자리한 동네 이름도 '용(왕)이 누워 쉰다'는 와룡동이다. 눈 덕분에 추녀마루마다 서있는 잡상(雜像)들이 눈길을 모은다.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주인공마냥 재밌게 생겼다. 한옥지붕을 운치 있게 꾸미는 암키와, 수키와처럼 일종의 장식기와로 액운을 막고자 만들었다.
창덕궁 돌담길을 따라 이어지는 북촌2경인 원서동은 옛날 조선왕실을 돌보던 나인과 중·하인이 모여 살던 동네였단다. 궁중 여인들이 빨래하던 빨래터가 골목 안에 남아 있다. 창덕궁 후원의 서쪽에 있다는 위치에 따라 원서정으로 불렀던 데서 유래된 원서동은 창덕궁의 뒤안길로 한옥을 개조한 가게와 공방이 들어선 조용하고 고즈넉한 한옥 골목길이다.
북촌2경에서 고희동 가옥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이 1918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직접 설계해 지은 집이다. 서양식과 일본식 주거 문화의 장점을 적용해 실용적인 한옥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그의 그림과 함께 좁고 긴 복도와 유리문, 실내로 들어온 툇마루와 대청, 개량 화장실 등 근대식 한옥집 모습을 볼 수 있다.
고희동 가옥에서 나와 제법 가파른 언덕을 넘으면 북촌3경이 펼쳐지는 가회동 11번지 일대다. 크게 S자형으로 휘어진 골목 구석구석에 자수공방, 민화공방, 매듭공방, 북촌전통공예체험관 등이 자리하고 있어 발길이 절로 머물게 된다. 공방마다 직접 체험을 할 수 있어 흥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북촌3경에는 이국적인 유럽식 건축양식의 석조건물이 멋스러운 중앙고등학교(종로구 계동) 또한 명물이다. 주말과 공휴일엔 학교를 개방하니 꼭 들어가서 걸어보면 좋겠다. 눈 내린 고풍스러운 교정이 한옥마을 만큼이나 아름답다.
북촌한옥마을 최고의 전망대, 북촌4경
가회로를 건너 돈미약국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한옥밀집지역인 가회동 31번지가 펼쳐진다. 기와지붕들이 파도가 넘실대는 듯하고 흡사 신명난 어르신들이 어깨춤을 추는 것 같은 장관의 북촌4경이 발 아래로 펼쳐진다. 눈이 살포시 내려앉은 북촌의 기와지붕이 그려낸 형과 색, 선의 자연스러움은 그 자체가 작품이다. 낮은 담과 북악산의 산자락을 닮은 처마, 좁은 골목이 이렇게 소박하고 아름답게 어울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예스럽고 한국전통주택의 미학을 체감할 수 있는 풍경이다.
언덕 골목길인 북촌5경과 6경은 북촌에서 가장 유명한 가회동 골목길이다. 언덕 아래에서 올려다본 풍경이 5경, 언덕에서 내려다본 풍경이 6경이다. 한옥과 골목, 남산과 고층 빌딩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6경은 북촌을 대표하는 풍경으로 꼽힌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600년 고도 서울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혹시 문화해설사 가이드가 관광객들 앞에서 설명하고 있는 곳을 지나간다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한옥 이야기를 들어보길 권한다. 겉모습은 비슷하게 생겼지만 중국의 집엔 없는 온돌과 마루, 왜 부엌은 집 전체에서 가장 좋은 곳에 있는지, 안채와 곳간채 사이의 폭을 어떻게 달리해서 통풍을 원활하게 했는지, 뒷산 봉우리와 처마 끝을 어떻게 조화롭게 했는지, 사랑채의 안고지기라 불리는 미닫이 여닫이 문이 어떻게 효율적인 공간을 창출하는지 직접 들어보면 우리의 한옥이 다시 보인다.
현재의 북촌한옥마을을 지은 사람은 일제강점기 '건양사'라는 건설개발회사를 운영했던 정세권 선생(1888~1965)이다. 1920년대는 일제가 계획적으로 북촌 진출을 시도하면서 조선인들의 주거 공간을 위협할 때였다. 그는 북촌의 대형 필지를 사들인 뒤 중산층과 서민을 위해 작고 생활하기 편한 근대식 개량 한옥을 지어 분양했다.
기존의 대형 한옥이 마당을 중심으로 건물들이 들어선 ‘중정식’이라면, 그는 마루 개념의 거실을 중심으로 방들이 모여 둘러싸는 ‘중당식’을 구현했다. 그의 대규모 한옥집단지구 개발을 통해 많은 조선인이 북촌에 거주할 수 있었고, 조선인의 북촌을 그나마 지켜낼 수 있었다. 그래서 혹자는 이를 두고 "건양사의 경성 개발은 시대를 앞서간 뉴타운 건설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당시 경성(서울)의 3대 갑부 중 한명이었던 정세권 선생은 일제강점기 때의 여느 부자들과 달랐다. 재산을 민족운동에 쏟아 부은 민족자본가였다. 신간회, 조선물산장려운동, 조선어학회 등에 참여하며 운동을 이끌고 후원했다. 이 때문에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이 발발하자 일경에게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재산의 상당 부분을 강탈당하기도 했다. 이를 지켜본 한용운은 "백난중(百難中) 분투하는 정세권씨에게 감사하라"고 했다. - 참고도서 : <건축왕, 경성을 만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