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서울만큼 복 받은 도시가 또 있을까 싶다. 자전거를 타고 조금 달리거나 지하철, 버스를 타면 한 시간 안에 크고 작은 강과 산을 만날 수 곳이 서울이다. 그 가운데 한강은 서울에서 가장 뚜렷하게 눈에 띄는 자연 상징물 가운데 하나로, 시민들은 강을 바라다보면서 팍팍한 도시의 삶에서 많은 위안을 느낀다.
난지한강공원(서울시 마포구 상암동)은 서울 한강변에 자리한 10여개의 공원 중 가장 '공캉스'(공원에서 즐기는 바캉스) 하기 좋은 곳이지 싶다.
접근성 개선·자연성 회복·레저․문화공간 조성을 컨셉으로 2002년 조성됐다. 가까운 하늘공원, 노을공원, 월드컵공원과 보행교로 이어져 있어 다채로운 풍경을 즐길 수 있고 공원을 이용하려는 시민들의 접근성이 좋아졌다.
난지한강공원 일대는 1978년부터 1993년까지 쓰레기 매립장으로 사용되었던 난지도가 있던 자리였다. 이렇게 멀끔한 공원이 한때 쓰레기 매립지였다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는다. 당시 국제적인 매립장의 높이인 45m 수준으로 매립할 계획이었으나, 수도권에 조성하기로 한 매립지 건설이 늦어지면서 쓰레기는 계속 쌓였다.
마침내 세계에 유래가 없는 95m 높이까지 쌓인 초대형 쓰레기 산이 2개나 생겼는데 현재의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이다.
1990년대 초반 이사할 집을 알아보러 상암동 부근 동네에 갔다가 난지도를 보고 돌아온 어머니의 표정을 아직도 기억한다. 넓은 쓰레기 평원 위로 새들이 날아다니고 뒤로는 쓰레기가 쌓인 언덕이 높이 솟아 있었다고 했다. 어머니가 전해준 난지도 풍경을 떠올려보았지만 좀처럼 실감나지 않았다.
원래 난지도(蘭芝島)는 온갖 난초와 꽃들이 만발해 꽃섬이라 불리기도 했던 하중도(河中島, 강 한 가운데 있는 섬)였다. 겸재 정선의 <경교명승첩(보물 제1950호, 서울 근교와 한강변의 명승명소를 그린 그림)>이라는 화첩에도 나오는 아름다운 섬이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남녀노소 시민 모두 즐길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다. 여름철에 인기 있는 난지 캠핑장, 강변물놀이장, 거울분수와 수상스키·요트를 대여해 탈 수 있는 선착장 등 다양한 레저 시설이 있다. 텐트를 치고, 반려견과 뛰어놀고, 연을 날리기 좋은 너른 초원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탁 트인다.
모래가 풍성하고 널찍한 놀이시설이 갖춰진 어린이 놀이터도 있다. 공원 내 편의점에서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라면도 빼놓을 수 없다. 한강에서만 먹을 수 있는 라면으로 자전거를 타다가 먹으면 잊기 힘든 맛이 난다.
이곳에 오면 코로나19로 인해 인기가 높아진 자전거를 신나게 탈 수 있다. 자전거 대여소와 신나게 페달질을 하며 달릴 수 있는 자전거 전용도로, 자전거 익스트림장, 산악자전거 체험장도 마련돼 있다.
난지한강공원에서 고양시 한강 하구를 지나 임진강이 흐르는 경기도 파주까지 자전거도로가 이어져 있어 자전거족에게 인기 있는 라이딩 코스이기도 하다. 한낮의 햇볕은 따가웠지만 솔솔 불어오는 강바람은 시원해서 어디까지라도 달릴 수 있을 것 같다.
한강변을 따라 우거진 버드나무 숲과 갈대가 이어지는 ‘갈대바람길’은 난지한강공원의 낭만적인 산책로로 손꼽힌다. 우리나라 자생나무라 더 정이 가는 버드나무는 산과 들은 물론 물가에서도 잘 사는 생명력 강한 나무로 성씨(버들 柳)로도 쓰인다. 수풀사이로 스쳐가는 까끌까끌하고 소슬한 강바람 소리도 잊기 힘들다. 풀벌레 소리가 시끄럽기는커녕 평화롭고 고즈넉하게만 느껴진다.
‘갈대 바람길’을 걷다보면 자연스레 난지생태습지원이 나온다. 기다렸다는 듯 노래를 부르는 온갖 풀벌레들로 숲속 산책에 운치와 낭만을 더한다. 한강 하류 생태계 복원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인공습지다. 난지생태습지원은 시민들에게 도시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생물들을 직접보고 체험하며 자연감수성을 키우고, 자연에 쉽게 다가 갈 수 있는 학습장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보행교로 이어진 하늘공원·노을공원·월드컵공원
자전거로도 건너갈 수 있는 보행교를 통해 하늘공원·노을공원·월드컵공원 등 3개의 공원이 이어져 있다. 하늘공원으로 가는 난지하늘다리를 건너면 키가 크고 장대한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반긴다. 살아있는 화석나무로 불리는 키 큰 나무 사이로 난 숲길이 호젓하고 아늑하다.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으면 딱 좋을 오솔길 같은 흙길이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난지한강공원에서 빌려온 2인용 자전거를 타고 나무 사이 길을 달려가는 부부의 모습이 참 낭만적이다. 강아지와 산책 나온 동네 주민 아저씨, 예쁜 모델을 데리고 사진을 찍으러 온 사진가들까지 메타세쿼이아 나무 숲길은 다양한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하늘공원의 명소로 사랑받는 곳으로 누구라도 어떤 카메라로 사진을 찍던지 멋진 풍경 사진이 되는 길이다.
난지한강공원에서 나무계단(노을계단)으로 연결된 노을공원은 해가 저물 무렵에 가면 더욱 좋다. 이름처럼 서울에서 석양이 가장 아름답게 펼쳐진다는 공원으로 캠핑장과 조각공원도 있다.
종종 조용히 노을을 보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을 때 이곳을 찾는다.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관망하며 도심 속 여유를 느껴볼 수 있는 드문 곳이기 때문이다. 어떤 스카이라운지보다 자연적이고 고즈넉한 서울 속 녹지공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