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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성 Oct 22. 2021

민주·독립정신을 일깨우는 역사산책로, 북한산 순례길

서울시 강북구 북한산둘레길2코스

북한산 둘레길 2코스의 별칭 순례길

청명한 가을날 부담 없이 산행을 즐길 수 있는 북한산 둘레길에는 특별한 코스의 길이 나있다. 김창숙·이시영·이준 등 10여기의 애국선열 묘소가 모여 있는 ‘순례길’로 북한산 둘레길 2코스이기도 하다. 이들의 약력과 생전의 활동내역이 적힌 안내판 또는 QR코드 스캔을 통해 나오는 내용은 우리 역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4.19민주묘지, 광복군 합동묘역, 근현대사기념관도 자리하고 있어 발길을 머물게 한다. 둘레길 가에 보광사라는 고즈넉한 사찰이 있어서 쉬어가기 좋다. 총 2.4km 거리로 1시간 남짓이면 충분히 완주할 수 있는 숲길이지만 걸어보니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게 된다. 

북한산 자락에 잠든 애국선열들

3·1운동부터 대한민국 건국까지 격동기 근현대사에서 나라의 독립과 민주화를 위해 자신의 삶을 내던진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을 걷기 좋은 숲길에서 만날 수 있다니···· 순례길이라 이름지을만했다. 나라의 독립을 향해 고난과 역경 속으로 뛰어든 훌륭한 선조들 앞에 부끄러움과 함께 숙연한 마음을 가지게 된 시간이었다. 


순례길은 애국선열들의 영웅적 활동이나 역사적 사건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선열들이 얼마나 모진 고초를 견뎌냈는지 보다는 역경 속에서 지키려 했던 가치에 주목한다. 그것이 순국하신 선열들이 남긴 진정한 유산이기 때문이다. 선열들의 묘 또한 안내판이 없었다면 무심코 지나칠 만큼 규모가 소박하고 단출하다. 

순례길의 들머리 솔밭근린공원
둘레길가에 피어난 기기묘묘 야생버섯

순례길의 들머리는 솔밭근린공원(강북구 삼양로 561)로 우이신설선 솔밭공원역에 내리면 우람하고 울창한 소나무 숲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도심 속에 이렇게 울울창창한 솔숲 공원이 있다니 나도 모르게 솔밭을 거닐어보게 된다. 소나무숲 혹은 한자로 송림이라 하지 않고 솔밭이라 지은 이름이 정답다. 특히 돌보고 일구어야 하는 '밭'이 들어가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가을날 북한산 둘레길에서 가장 많이 눈길을 끄는 존재는 가을비를 생명수 삼아 피어난 야생 버섯이다. 길섶과 나무에 붙어 꽃처럼, 작은 우산처럼 혹은 망태처럼, 날카로운 표창처럼 피어났다. 봄날 들꽃만큼이나 수가 많고 모양이 다양해서 놀랐다. 곳곳에서 만나는 흥미로운 야생버섯 덕택에 산행이 지루할 틈이 없다. 

순례길에서 보이는 4.19민주묘지
애국선열들이 잠든 묘소

순례길에서 맨 처음 만나게 되는 곳은 국립 4.19민주묘지 전망대다. 4.19혁명은 1960년 우리나라 헌정사장 최초로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불의한 독재 권력에 항거하기 위해 일어났다. 당시 희생된 290명의 묘역이 산자락 아래로 펼쳐져 있어 절로 숙연한 마음이 생긴다. 3.15부정 선거에 반대하는 학생 시위에 이승만 정권은 무장 경찰을 동원해 학생들을 폭력으로 진압한다. 


이에 격분한 시민과 대학생들은 물론 고등학교 학생들까지 궐기해 독재 정권 타도와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4·19혁명을 일으키게 된다. 이후 이승만은 퇴진하여 하와이로 망명해 살다가, 1965년 91세의 나이로 객사했다. 이승만 정권의 2인자이자 3.15부정선거의 주역이었던 이기붕은 소위였던 아들의 총에 맞아 사망한다. 아들 이강석은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와 남동생을 쏘아 죽이고 자살한다.


4.19민주묘지 전망대를 지나면 신숙·김도연· 김창숙·양일동·서상일 선생의 묘역이 차례로 이어진다. “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 차라리 자유민으로 죽으리라”, “국가의 기본은 국민이요. 정치의 대상은 국민의 복리에 있다”, “우리가 믿고 바랄 것은 우리 스스로의 힘 뿐이다” 무덤입구에 서있는 안내판에는 애국지사들이 남긴 인상적인 어록도 새겨져 있다. 

둘레길가에 자리한 고즈넉한 절 보광사
여섯 형제 가족이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이시영 선생 묘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성재 이시영 선생의 묘소 앞 안내판은 역사책 읽듯 보게 된다. 일본이 조선을 강제 병합한 해가 저물어가던 1910년 12월30일 새벽, 건영·석영·철영·회영·시영·호영 여섯 형제는 집안의 재산을 전부 처분한 수백억의 거금을 챙겨 가족 40여 명과 함께 비밀리에 만주로 망명한 뒤 일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일제강점기 항일무장투쟁의 요람이던 신흥무관학교도 이시영 형제들이 세우고 운영했다. 이후 형제들은 모두 돌아가시고, 일제의 패망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온 이는 이시영 뿐이었다. 독립운동가 월남 이상재 선생은 "우리 민족은 우당 가문에 큰 빚을 졌다"며 이렇게 말했다.     


"동서 역사상 나라가 망한 때 나라를 떠난 충신 의사가 수백, 수천에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우당 일가족처럼 6형제 일가족 40여 명이 한마음으로 결의하고 나라를 떠난 것은 전무후무한 것이다. 장하다! 우당의 형제는 참으로 그 형에 그 동생이라 할 만하다. 6형제의 절의는 참으로 백세청풍이 될 것이니 우리 동포의 가장 좋은 모범이 되리라."

17분의 독립운동가가 잠든 광복군 합동묘역
근현대사기념관 앞의 순국선열 동상

일제강점기 독립을 위해 일본군과 싸우다가 순국한 김찬원·문학준·정상섭 선생 등 애국선열 17위를 모신 ‘광복군 합동 묘역’에도 발길이 머문다. 중국의 태행산지구전투, 산지성능천전투 등에서 임시정부 광복군으로 일본군을 무찌르다 전사했거나 지하공작원으로 활동하다 순국한 선조들이다. 모두 20대의 젊은 나이로 후손이 없어서 이렇게 합동 묘역을 조성했단다. 1967년 광복군 동지회에서 조성했다. 


순례길의 끝에 있는 근현대사기념관(강북구 4.19로 114)에 들어가면 국권회복을 위해 피흘려 싸운 애국지사 선열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다. 2016년 독립정신과 민주주의의 뜻을 제대로 기억하고 알리기 위해 설립되었다. 헌법에 담긴 ‘자유’, ‘평등’, ‘민주’의 이념은 선열들이 피땀 흘려 체득하고 축적해 온 소중한 가치이며, ‘독립운동가들이 꿈꾼 나라’가 대한민국의 미래상임을 알리고자 한다는 소개말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근현대사기념관을 나오면 다양한 맛집과 카페가 있는 4.19카페거리가 이어져 있어 들르기 좋다.  

        

강북구 문화관광해설사의 안내와 설명을 들으며 순례길을 탐방할 수 있다. 강북구청 홈페이지 - 본인인증 후 로그인 - 홈페이지 상단 구민참여 클릭 - 강북구문화관광해설 클릭 - 해설예약 클릭 - 하단에 글쓰기로 신청 완료. (문의 : 901-6216)    

여러 맛집과 카페가 이어지는 4.19 카페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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