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종로구
얼마 전 흥미로운 뉴스기사를 보게 되었다. 영국의 세계 여행 잡지 ‘타임아웃’이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동네(The world’s coolest neighbourhoods) 49곳을 소개했는데, 서울 종로 3가가 3위로 선정됐단다. 타임아웃은 종로 3가를 ‘유서 깊고 별난 곳이자 가식 없는 곳’이라고 묘사하며 ‘서울의 심장이자 영혼’이라 표현했다. 이어서 궁전, 한옥골목, 저렴하고 특별한 맛집 등 다양한 관광 장소가 있다고 소개했다.
동네 주민 2만 7000명과 지역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순위를 정했으며, 음식·주류·문화뿐만 아니라 지역 공동체 정신과 지속 가능성도 평가 기준에 포함되었다고 밝혔다. ‘타임아웃’은 종로 3가의 선정 이유에 관해 “근처의 궁궐, 화랑, 잡다한 관광지가 유명하지만 종로 3가의 진짜 매력은 탑골 공원 주위에 모여 있는 할아버지들, ‘송해길’에 있는 포장마차 노점상, 북한 음식을 파는 식당, 곳곳에 숨어 있는 카페와 호프집에 있다”라고 밝혔다.
지난 주말 지하철 종로3가역에 내려 ‘타임아웃’이 경탄하고 추천한 곳에 찾아가 보았다. 이방인의 눈으로 보니 익숙했던 장소와 풍경이 새롭고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산책하듯 구석구석 여행을 마친 후에야 외국인들이 종로3가를 쿨(Cool)하다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오래된 과거와 세련된 현재가 서로 배척하지 않고 비빔밥처럼 어울리려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재밌고 매력적인 도시는 변화의 바람 속에서도 옛 것과 새로운 것이 다양한 모습으로 공존하는 곳이다.
‘타임아웃’은 ‘종로3가의 진짜 매력은 탑골 공원 바둑판 주위에 모여 있는 할아버지’라고 소개했다. 탑골공원은 국내 최초의 도심 내 공원으로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났던 의미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12m 높이의 원각사지 10층 석탑(국보 2호)이다. 무려 1467년(세조13)에 제작했다.
기단부터 탑신부 꼭대기까지 온갖 동·식물과 인물상이 빈틈없이 조각돼있다. 우리나라 탑 가운데 손꼽히는 걸작품이라고 한다. 당시 이 일대에 사찰과 탑이 많아 ‘탑이 많은 고을’ 탑골로 불렀다는데 현재 이름 낙원동보다 훨씬 정감 간다. 참고로 낙원동은 1914년 10월 1일 일제가 대대적인 행정 구역 개편을 하면서 새로 생겨난 동네 이름이다.
탑골공원과 함께 ‘송해길’에 있는 포장마차 노점상, 북한 음식을 파는 식당, 곳곳에 숨어 있는 카페와 호프집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포장마차에서 소주에 오징어튀김을 즐겨보라”라고 추천하기도 했다. 종로3가역 6번 출구로 나오면 포장마차 거리를 볼 수 있다. 갈매기살 골목 등 길게 줄지어 있는 포장마차는 종로3가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강원도집', '전주집', '충청도집' 등으로 지역 명을 쓰면서 고향을 떠나 사는 사람들의 향수를 달래고, 소주나 막걸리를 맥주 컵 하나에 가득 담아 단돈 1000원에 파는 잔술도 있다.
인천이나 천안에서 전철을 타고 올 정도로 인기 있는 이발소 골목을 빼놓을 수 없다. 이발소 특유의 사인볼이 빙빙 돌아가는 10여 곳 가게들 앞에는 하나같이 '이발 5000원, 염색 5000원'이라고 쓰여 있다. 이 '착한 가격' 때문에 많은 어르신들이 지하철을 갈아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이 골목에 찾아온다.
이런 가격이 가능할까 싶은 이발관이 다른 곳도 아닌 서울에 이렇게 모여 있다니 참 별일이다. 저렴하고 맛깔난 포장마차거리까지 가까우니 가히 ‘어르신들의 파라다이스 낙원동’이라 부를만했다.
<타임아웃>은 ‘종묘 돌담길 산책 후 쑥 라떼 마시기’를 소개했다. 종로3가역 11번 출구 인근에는 종묘 돌담이 이어져 있는데 바로 ‘서순라길’이다. 종묘를 순찰하는 순라청 서쪽에 위치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종묘 왼쪽 돌담길을 따라 창덕궁과 창경궁을 향해 북쪽으로 이어지는 800m 거리에 조성되었다. 익선동 한옥마을 골목과 가깝지만 북적이는 익선동과 달리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는 길이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돌담길을 산책하기에도 좋고 담벼락을 따라 이어진 ‘인스타 감성’의 맛집, 카페들도 방문하기 좋다.
서순라길은 1995년 종묘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되면서 조성되었다. 종묘는 19만4331㎡ (약 64만평) 넓이의 거대한 녹지공간이기도 하다. 종묘를 멋진 자연경치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세운상가다. 종로3가역 12번 출구로 나오면 작은 광장과 함께 높다랗게 솟은 세운상가가 나온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인 옥상으로 가면 파란 하늘과 북한산이 품은, 한 눈에도 명당이구나 싶은 종묘가 발아래로 펼쳐진다.
2022년 3월 무려 90년 만에 창경궁과 종묘가 녹지와 보행로로 연결될 예정이라니 기대가 크다. 1968년 지은 국내 최초의 종합전자상가인 세운상가는 종로에서 퇴계로까지 1.8km에 이르는 4개의 건물군이 보행교로 이어져 있어 흥미로운 발걸음을 할 수 있다.
종로3가에서 청년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단연 익선동 한옥골목이다. 단층의 오래된 한옥 골목에 트렌디한 카페와 맛집, 옷가게 등이 들어서 골목길을 걷는 정겨움에 즐거움을 더한다. 모두 한옥의 대들보, 서까래, 기와지붕을 살린 덕분에 독특하고 이채로운 외관의 가게들이 많아 걸음걸음이 흥미롭다.
허물어진 한옥의 담장을 그대로 살린 가게들이 있는가 하면, 마당이 있는 아담한 한옥 집을 거의 그대로 살린 다방, 연탄불을 피워 안주와 간식거리를 파는 재미있는 슈퍼는 무너진 대문을 그대로 두고 입구로 쓰고 있다. 해질녘 찾아가면 골목길 가로등과 가게마다 비추는 다채로운 조명이 어울려 정겨움이 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