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내게 가르쳐준 것
나는 네가 엄마같이 나를 품어줬으면 좋겠어.
나는 잠시 당황했다. 서운한 게 많았다며 펑펑 우는 남자를 달래줘야 하긴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도 이남자가 방금 내뱉은 말을 머릿속에서 도저히 소화해낼 수 없었던 것이다. 엄마같은 게 뭔데? 내가 어떻게 해줘야하는데? 내 물음에 그는 울면서 답했다. 나를 잘 챙겨주면서 내 마음과 인격의 깊이를 잘 다듬어줬으면 좋겠어. 그래서 더 좋은 사람으로 키워줬으면 좋겠어. 나는 지금 그런게 필요해.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같은 여자친구를 바라는 서너살 연상의 남자에게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사랑도 연애도 잘 모르는 나이. 막내딸로 사랑받으며 자라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이. 나는 엄마는커녕 딸노릇도 제대로 못하고 있던 스물 일곱이었다.
몇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됐다. 엄마같은 여자친구를 찾는 남자들이 많다는 것을. 엄마처럼 자기만 바라봐주고, 투정부려도 항상 이해해주고, 자신을 위해 모든 걸 맞춰주는 여자. 피곤한 발걸음으로 집에 들어가면 왔니?라며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는 여자. 피곤해, 나 좀 쉴래. 라며 넥타이를 푸르면 밖에서 많이 힘들었구나, 라며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는 여자. 그런데 어쩌나. 안타깝게도 이세상에 '엄마같은 여자는 없다'. 아니, 있어서도 안 된다. 연인은 서로 존중해줘야 하는 독립적인 대상일 뿐 엄마가 아니니 말이다.
30년이란 세월이 넘도록 각기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성인이 엄마처럼 계산없고 희생적인 사랑을 줄 수 있을까, 아니다. 엄마처럼 상대를 품어주고, 인격을 넓혀주고, 마음의 깊이를 다듬어줄 수 있을까, 아니다. 무엇보다 연인에겐 '상대방을 인내심으로 키울 하등의 책임이 없다'. 사랑은 서로를 빛나게 해주는 것이지 한쪽에서만 일방적으로 받아주고 이해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인에게 엄마다운 이해심와 인내심을 바라는 이기적인 남자는, 설령 그토록 이해심이 넓은 여자가 찾아온다 해도 절대 바뀔 수 없다.
아빠같은 남자를 찾는 여자들도 많다. 나는 아빠처럼 마음이 넓은 남자였으면 좋겠어. 내가 무슨 말만 해도 다 들어주는 남자 있잖아, 내가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고 해달라는 건 다 해주는 남자. 하지만 역시 안타깝게도 아빠같은 남자 또한 '존재해선 안 된다'. 내가 만나는 사람은 독립적인 환경에서 자란, 내가 사랑을 쏟아야 할 나의 연인이지 아빠가 아니니까. 때론 상처에 울기도 하고 때론 화도 내는 남자일 뿐이니까.
부모같은 연인은 없다. 연인은 나를 키워줄 책임이 있는 사람이 아니며, 나를 마냥 이해해줄 책임이 있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성인은 자기 스스로 인격을 넓히고 갈고 닦아야 한다. 그 역할을 대신할 연인을 찾는다면 그냥 쭉 부모님과 사는 게 낫다. 우리는 꼬마아이가 아니지 않은가.
그냥 집에 가서 엄마얼굴 보라고 해, 엄마만큼이나 깊은 이해심을 요하는 남자친구때문에 괴로워하는 친구에게 조금은 각진 조언을 해주었다. 너도 절대 아빠같은 사람 기대하지 말고, 날카로운 말도 덧붙였다. 이해는 서로, 함께 하는 것이다. 엄마같은 여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