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몸사림보단 이불킥
미쳤어!
친구는 혀를 내둘렀다. 이 동네에 비슷한 아파트의 이름을 가진 아파트가 한두동인줄 아니. 게다가 너 그사람 집이 몇 동 몇호인지도 정확하게 모른다며! 한 번도 안와봤다며! 그래도 나는 고집을 피웠다. 그러게, 아무리 짧게 만났어도 남자친구 집도 몰랐다는 게 말이 되나 싶네. 그래서 더 가봐야겠어, 집 앞에서 기다려볼래. 그러니까 거기 가는 버스번호나 알려줘. 전화기 너머로 친구의 따가운 고함이 들렸다. 야 이 답답아! 가겠다는 사람을 왜 굳이 붙잡아, 니가 뭐가 부족해서! 너 좋다는 사람도 옆에 있는데! 간 사람은 붙잡는다고 절대 안돌아와!
안다.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도. 집 앞에 가봤자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는 것도. 하지만 나는 가야했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날 위해서. 그를 붙잡고 싶은 게 아니었다. 내 마음속에 후회 한 점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뜨겁고 솔직한 청춘이고 싶었다.
버스가 정류장 앞에 멈춰 섰다. 서늘한 늦가을 밤이었다. 스니커즈 발끝으로 툭툭 땅바닥을 차면서 오랜시간 서있었다. 나는 기다렸다. 내 마음이 다하는 순간을. 와, 달이 되게 동그랗다. 라고 중얼거렸던 것 같기도 하다. 찬 바람이 볼을 스치는 순간 불현듯 내 마음이 속삭였다. 이제 됐어. 잘했어. 나는 조용히 발걸음을 떼 정류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전하지 못한 선물과 초콜릿이 담긴 쇼핑백을 벽에 내려놓았다. 안녕. 잘 있어.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겠다고 울며불며 난리치던 때로부터 예닐곱 해가 지났다. 친구는 아직도 나에게 그때 얘기를 한다. 너 진짜 귀여웠어. 근데 그 땐 내 친구지만 좀 한심스럽기도 하더라. 아니 왜 그 먼데까지 가, 그만큼 사랑하지도 않았다면서 주책같이. 너 가끔 이불킥 안하냐.
사실 나도 부끄럽다. 어휴, 그때 정말 얼마나 추웠는데. 뭐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라고 그랬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이불킥은 나의 뜨겁고 솔직한 청춘을 떠오르게 한다. 그 때 아니면 할 수 없었던 부끄러운 일들, 이해되지 않는 행동. 사실은 그런 게 청춘의 전부다. 당연히 창피하지. 그래서 넌 이불킥할 일이나 있어봤냐. 나는 웃으며 되묻는다. 그 예쁜 나이에 이불킥할 일도 안만들고 뭐했냐.
누구에게나 이불킥하는 순간이 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가장 찬란한 시절조차 사랑 앞에 몸사리다 후회하는 것보다는 부딪히고 이불킥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내 이불킥을 사랑한다. 예쁜 나이의 이불킥이란 다신 없을 소중한 기억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