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주의자의 배신

하나에서 둘, 연애에서 결혼, 그리고 여전히, 사랑.

by Cactus

나는 나만의 사적인 공간이 없어질 일이 두렵다고 말했다.

너는 우리의 집 한 켠에 내가 원하는 공간을, 내가 원하는 것들로 오롯이 채우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나는 스스로 지켜온 삶의 리듬이, 사람들의 시선과 내 존재의 변화가 두렵다고 말했다.

너는 각자 가꿔온 삶의 중심지가 우리의 것으로 합쳐지는 것 뿐, 네 삶의 리듬과 존재는 변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가족이란 경계의 확장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사랑하는 서로를 키워준 가족들께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 뿐이며, 가족의 확장은 의무나 책임보다는 사랑의 마음이 커지는 것이라 말했다.


나는 여성으로서 사회가 규정한 역할에 미숙하다고 말했다.

너는 사회가 어떻게 규정지었든 우리가 우리의 룰을 정해가면 되는 것이며, 미숙한 우리 둘이 함께 집안일을 배워나가면 그 또한 즐거운 놀이일 것이라 말했다.


나는 여전히 토요일 아침이면 커피 한 잔을 손에 든 채 여행잡지를 읽고 싶다고 말했다.

너는 그렇게 하라며, 자신은 향긋한 커피 한 잔을 내려준 후 옆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토요일 오전을 즐기겠다고 말했다.




늘 사랑을 원했지만 희생과 얽매임은 싫었다.

달콤한 연애를 하면서도 내가 잃어야 할 나의 생활, 공간, 시간, 취미의 소멸이 두려워 결혼을 망설였다.

내 머릿속의 결혼이란,

아주 막연히,

한 공간에 얽매여 서서히 나 자신의 생기를 잃어가는, 그런 나를 받아들여야 하는 잿빛 희생에 가까웠다.

부스스한 머리로 청소기를 밀며 아침거리를 고민하는 희생.


하지만 너라면,

내가 지키고 싶어하는 사적인 공간과 시간과 영역을 항상 존중해주고,

울고 있을 땐 가르치거나 답을 주려하는 대신 조용히 옆에서 손을 잡아주고,

내가 웃을 때 나보다 더 기뻐하고,

내가 꿈꿀 땐 누구보다 그 길을 응원해주고,

모든 사람이 날 비웃어도 늘 따뜻한 말로 나의 성글고 거친 마음을 녹여주는 너라면,

나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로를 웃게 하기 위해 기꺼이 서로를 희생했던 연애의 순간들이 우리에게 행복이었듯

그 희생조차 행복할 것 같다.


햇살이 비치는 창가 옆 커피테이블에서 특유의 인쇄지 냄새를 맡으며 책을 읽을 때

향긋한 커피 한 잔을 내려두고 조용히 옆에 앉는 네가 있다면,

나도 결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2019.08.

독신주의자, 결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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