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시술과정 #배주사전쟁 #혼자가아닌둘이
주사 맞을 시간이야!
이불을 뒤척이며 일어나면 침대 끄트머리에 비스듬히 앉아 주사약을 조제하는 신랑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잠옷을 말아올리고 손으로 내 배를 꼬집는다. 잠이 덜깨 손에 힘이 잘 안들어간다. 신랑은 내가 꼬집은 부분을 알콜솜으로 슥슥 닦은 뒤 주사바늘을 조심스레 꼽는다. 약을 주입한 뒤 바늘을 휘리릭 빼고, 그 자리를 알콜솜으로 다시 한 번 문지르면 배주사가 끝난다. 물론, 저녁 배주사는 남아있다.
시험관시술의 8할은 배주사다. 통상 생리 2-3일에 초음파를 하고 이번달 시험관시술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면, 그때부터 병원에서 배주사를 처방해준다. 3-4일 후 병원에 다시 내원해야 하고, 이때 초음파 결과에 따라 주사약을 바꾸거나 양을 추가한다.
배주사는 말그대로 배에 맞는 주사. 시험관 초기엔 과배란을 유도하는 주사를 맞고, 여러 개의 난포가 잘 자라나면 어느 순간부턴 순조로운 난자 채취를 위해 조기배란을 억제하는 주사를 맞는다. 성분과 기능은 다르나 둘다 호르몬제고 둘다 배에 맞는 주사다.
처방에 따라 매일 1회 이상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매번 병원에 올 수는 없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 배에 주사를 놓아야 한다. 말그대로 자가주사다.
나 정말 도저히 셀프로 주사 못하겠어.
주사실에서 주사방법을 안내받고 나오면서 나는 울먹였다. 간호사선생님이 방금 배주사를 놓아주셨을 때 생각보다 안아프긴 했다. 바늘도 얇고 약도 많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주사바늘 꼽는 것도 두 눈으로 못보는 내가, 내 스스로 내 배에 주사바늘을 꼽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너무 비참하고 서글프고 끔찍한 일이었다. 내가 왜? 내가 뭘 잘못해서 이짓까지 해야돼?
그때 신랑이 내 수간호사를 자청했다. 내가 해보지 뭐. 최선을 다해서 안아프게 놓아볼게. 신랑은 내 몸을 대신해 아파줄 수 없으니 주사라도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정말 겁나고 못하겠으면 말하라고, 그렇다면 시험관을 그만두고 자연임신을 계속 시도해보자고 했다.
나는 특이한 사람이다. 이렇게 ‘안해도 된다’ 라는 위로를 들으면 오히려 용기가 생기고 선뜻 하게 된다. 나는 짜증을 멈추고 주섬주섬 주사를 가방안에 넣었다.
주사의 갯수와 용량은 점점 많아졌다. 처음엔 처방받은 두 개의 주사를 각각 150ml씩 매일 오전에 주사했다.
며칠 후 병원에 갔더니, 난포가 잘 자라고 있다며 용량을 250ml로 높였다. 그다음엔 매일 오전, 오후 2회로 횟수를 늘렸다. 며칠 후 배란억제주사를 맞았고, 난자 채취일 전엔 하루에 배주사를 거의 5-6방 맞았다.
주사마다 아픔의 정도가 다르다. 바늘이 엄청 얇아서 주사 느낌도 없는 것도 있고, 주사바늘이 잘 안들어가거나 주사약 투입에 시간이 오래걸리는 것도 있다. 사람은 정말 적응의 동물인가보다. 처음엔 무서워서 덜덜떨던 내가 어느순간 담담히 주사를 맞고있으니 말이다.
우리집엔 수간호사가 산다. 나보다 한시간 일찍 일어나 조용히 출근준비를 마치고, 시간이 되면 약을 제조해 환자를 깨우는 친절한 수간호사.
너무 친절한 나머지 가끔은 나의 신음소리에 놀라 황급히 주사바늘을 빼버리지만, 그래서 나의 구박을 받으며 다시 덜덜덜거리는 손으로 주사바늘을 꼽지만, 우리집 수간호사는 서툴지언정 따뜻하다. 그래서 나는 이 모든 과정이 ‘덜 힘들다’(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한번은 내가 일찍 출근해야해서 신랑이 샤워하는 시간에 자가로 주사를 높았다. 생각보다 힘들지 않고 아프지 않아서 놀라던 찰나, 샤워하고 나온 수간호사가 나를 보고는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수간호사가 멀쩡히 옆에 있는데 자가로 주사해서 김빠진다나 뭐라나. 웃으라고 하는 얘기인걸 알지만, 그 이후로는 모든 주사를 수간호사에게 맡기고 있다. 사실은 그도 나의 힘듦을 덜어주기 위해 뭐라도 함께하고 싶다는 것을 알기에.
혼자가 아닌 둘이라 이 지리멸렬한 배주사 전쟁을 이겨낸다. 아니, 이 험난한 시험관시술 절차를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