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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정 Jul 22. 2018

갈매나무가 대신 눈을 맞는 밤


  작동하는 게 신기할 정도로 낡은 지프차를 타고 도시 곳곳을 누빈다. 현지인 간사들과 함께여서 차마 외국인이 쉬이 들어가지 못할 곳도 갈 수가 있었다. 도시의 깊은 골목 외딴방부터 시작해 HIV 보균자 전문 병원, 정신 건강 센터처럼 인도 사람들도 잘 가보지 못할 병원들까지 참 많은 곳을 다녔다.


  어느 날은 하루 종일 달려 도시 외곽의 작은 집에 도착했다. 말이 좋아 집이지 웬만한 축사나 폐가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았다. 한적한 흙길에 그런 집이 드문드문 있어 금방이라도 스릴러 영화를 찍을 수 있을 것 같은 풍경이었다.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는데 어둠과 싸울 것이라곤 꼬마전구 하나뿐이었다.


  그곳에는 조금 이상한 부부가 살고 있었다. 엷은 꽃잎 같은 미소를 띤 아주머니가 내 손을 붙잡고는 한 얘기를 또 하고, 또 하고 했다. 말 한 마디 못 알아듣는 외국인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금방 눈치챌 수 있을 정도였다. 아저씨는 우렁우렁한 말투였지만 “가족도 찾아오질 않는데 이렇게 바나나와 계란을 사 들고 오다니, 너희가 우리 가족이다!” 하는 식으로나마 감사 표현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별 것도 아닌 말이지만 아저씨로서는 대단한 발전이다. 젊었을 때 아저씨는 잘 나가는 건축업자였는데, 큼직한 힌두 사원을 몇 개나 지었다고 했다. 사원 숫자와 비례하게 자산 규모도 아저씨의 야망도 커졌다. 통이 컸던 아저씨는 정치판에 손을 뻗었다. 권력욕만으로 시작한 선거의 과정은 결코 말끔하지 않아서, 금권 선거다 뭐다 얼마나 동원했는지 선거에서 패하고 가세도 같이 기울었다. 그렇게 허무하리만큼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었을 때— 하필 그때 알게 되었다. 초청하지 않은 손님처럼 불쑥, HIV가 이들의 삶에 찾아왔다는 것을.


  HIV는 숙주에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주머니의 뇌 어딘가는 그때 손상을 입었다. 잘 나가던 귀부인은 하루아침에 철딱서니가 되었다. 부부는 어느새 거지보다 조금 나은 정도의 행색이 되어 있었다. 하나뿐인 딸은 그즈음 부모를 떠났다. 부모를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딱 잘라 말했다고 한다. 아마 딸에게 듣는다면 그 이상의 사연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으리라 생각한다. 용기 내서 부모를 보러 오다가도 동구 밖에서 서성이다 돌아가곤 했다 하니까.


  그래도 부부는 나름대로 서로를 붙들고 어떻게든 살아냈다. 꼬질꼬질하지만 한때는 고급이었을 옷자락에는 물론 아저씨의 표정에서도 왕년의 자신감이 아직 남아 있었고, 아주머니는 그 미소가 차라리 편안해 보였다. 그렇게 둘은 손 붙들고 얼굴 맞대며 그럭저럭 힘든 시기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HIV가 무너뜨린 담장을 타고 넘어들어온 결핵균 때문에 아주머니가 빨리 치료를 받아야만 하는 급박한 상황이 되면서 이야기는 달라졌다.


  결핵균은 HIV 보균자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하여 결핵이 의심되자 우리 간사들은 곧바로 아주머니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HIV 보균자만을 대상으로 한 결핵 병원이었다. 나는 그 병원이 깨끗하기도 하거니와 꼭 시골 수도원처럼 따뜻하면서도 편안해 좋았는데, 아주머니에겐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주머니는 칼을 들고 의료진을 협박했다. 집에 보내 달라고,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완강하게 주장한 끝에 결국 의료진은 두 손 두 발 다 들고 아주머니를 돌려보냈다.


  우리 사업장 간사는 그 상황을 보며 아주머니 사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겠구나 생각했단다. HIV 보균자가 결핵 치료를 거부해 오래 버틴 케이스는 매우 적다고, 이론으로도 경험으로도 그는 그렇게 배웠으므로. 이따금 아주머니를 생각했지만 달리 손 쓸 도리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 아저씨가 다른 병 때문에 국립병원에 갔다가 한 달 가량 입원 처리가 되어 있었다, 고 나중에야 들었다. 그럼 그 동안 아주머니는? 서둘러 아주머니를 찾았지만 아주머니는 그 사이 세상에서 이미 사라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들은 이야기로는 결핵균이 뇌를 건드리다 못해 뇌를 완전히 장악했다고 한다. 순진한 미소를 지으며 따뜻한 손으로 내 손을 어루만지던 아주머니... 그에 대한 세상의 마지막 기억은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돌아다니는 것을 누군가가 보았더라는 한 줄기 풍문이었다. 거리로는 멀지언정 마음으론 가까이 있다 생각했는데 우리는 그 최후를 풍문으로밖에 듣지 못했다. 결핵 때문에 오래 살지 못하겠거니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금방, 주변에서 생사 확인도 못할 만큼 존엄성 없는 최후를 맞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기에 너무나 씁쓸했다.


  아주머니가 그렇게 세상에서 지워진 후 현지인 간사는 아저씨를 한 번 만났다. 천하를 호령할 듯 기세등등하던 아저씨는 아이처럼 눈물을 연신 흘리고 있었다. 얼마 후 아저씨도 사라졌다. 그 비참하고 싸한 집을 아저씨 혼자 지키고 살 이유가 없었기에. 낮에는 무료 급식소를 전전하다가 밤에는 거적을 덮고 산다더라 하는 한 줄기 풍문만을 수소문 끝에 겨우 들을 수 있었다. 너무나 입맛이 썼다.     



  우리가 졌다. HIV가 결국 한 가정을 완전히 붕괴시켰다. 무너져 가는 것을 붙들어 가며, 힘들어도 희로애락 느끼는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때완 완전히 다른 기분이었다. 험하고 비통한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최소한 삶 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었기에, 가족을 잃고 자신을 잃고 유령처럼 겉돌다 떠나 버린 이 부부의 이야기처럼 괴롭지는 않았다.


  그 후로 꽤 오랫동안 우리 마음은 11월의 나무들처럼 우울하게 벌거벗겨져 떨었다. 이야기를 들은 날 밥을 넘기지 못하고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몇날며칠 마음을 앓았다. 삶을 당연하게 받쳐 주던 것들이 깨진 조각을 밟고 서 있는 이들의 자리는 너무 아파서 사람을 휘청거리게 한다. 잠 못 드는 그런 밤마다 나는 주문을 외듯 입 속에서만 중얼중얼 시를 읽었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_백석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구 자리에 누어서,

머리에 손깍지벼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미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느 먼 산 뒤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에서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이 더운 나라 밤하늘에서 내가 선 자리만큼은 눈이 내렸다. 어딘가에 있을 아저씨와... 살아있다면 아주머니의 마음속에도 그런 비슷한 무언가가 내릴지 모를 일이었다. 읽다 보면 시는 어느새 기도처럼 변했다. 부디 우리 마음에 굳고 정한 갈매나무가 세워지기를, 살아가는 우리를 지탱할 한 그루가 세워지기를. 그 나무가 시리게 내리는 눈을 쌀랑쌀랑 맞아주기를. 그래서 우리 살기를, 단단히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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