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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정 Jul 29. 2018

우리 어른들의 할 일

너의 강인함을 지켜주는 일



   모처럼의 공휴일이다. 정확히는 사람 몸에 코끼리 얼굴을 한 신 가네쉬 축제 기간인데, 이 가네쉬는 코끼리의 지혜로 모든 장애를 뚫고 사업이든 공부든 척척 잘 되게 해준다고 해서 인기가 좋다. 때문에 긴긴 축제의 끝물이 되었음에도 도시 곳곳에 가네쉬 신상을 위한 천막이 몇 개나 남아 있다.


   아이들은 그 앞에 모여 앉아 신나게 춤을 추고 놀고 있지만 어른들의 얼굴에서는 피로가 느껴진다. 꼭 명절 직후 선잠에 빠진 엄마의 얼굴에서 보던 것과 무게가 비슷하다. 휴일이 끝나가는 흐린 오후라 집집마다 밀린 빨래를 한 건지, 아니면 빨래를 업으로 삼는 이들이 모여 사는 동네인지 알 수 없으나 골목은 죄 물웅덩이다.



   힌두교 사원 앞에 차를 대고 조심조심 발을 디뎌 골목으로 들어간다. 아이들을 지나, 빨갛고 파란 사리와 속옷과 아기 배내옷까지 널려 있는 빨랫줄을 지나, 모퉁이를 꺾어가며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동안 미로 속을 걷는 기분이 들었다. 단지 기분만은 아니었는지 걸을수록 좁아지는 골목길, 그중에서도 제일 끝 집이 오늘 우리가 찾아가는 아주머니의 집이다.


   집 앞에 앉아 있던 풍채 좋은 아저씨가 황급히 일어나며 정중히 인사를 한다. 선거철 정치인의 얼굴처럼 정제된 미소를 짓고 있는데 그 모습에서 위화감이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아마 그런 빤들빤들한 처세의 얼굴은 사실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 같다.


   HIV/AIDS 사업장 특성상 사람들의 가장 깊은 마음을 나누는 일이 많아 대체로 정직한 얼굴 표정을 보아 온 편이다. 숨이 죽어 가는 얼굴이나 반가워하는 얼굴은 보았어도, 그렇게 “대외용”이라는 느낌을 주는 얼굴을 많이 보지 못했다. 특이하다는 생각 정도는 했지만 뭐 별 일은 아니었으므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때만 해도 그 아저씨가 아마 남편 되는 사람이겠거니, 했다. 남자는 의자를 비우고 곧 멀어져 갔다.



   집으로 들어서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좁은 방 한쪽을 메운 침대, 그 위에 있던 한 남자였다. 체구만 보면 깡마른 소년 같은데 그 얼굴에선 주름과 나이가 느껴져 위화감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흠칫 놀란 결정적 이유는 남자의 허리에서부터 창틀로 이어져 있는 자색 끈이었다. 남자는 묶여 있었다. 그러나 남자의 입에서 떨어지는 침을 보며 곧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가난한 집, 일을 나가야 하는 어머니. 제 나이로 살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맑은 아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을 것이다.


   아주머니와 그 아들, 딸을 소개받는다. 침대에 앉아 있는 아들은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친다. 뜻밖의 손님에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아들이 아직 뱃속에 있던 시절, 아이 아버지는 술과 폭력이 예삿일인 사람이었다. 아주머니가 배를 맞은 적도 많았다고 한다. 게다가 그때 결핵에 걸려 약도 계속 먹었다. 아마 그 두 가지가 이유가 아닐까 추측한다고… 현지인 간사는 말끝을 흐린다. 이야기는 넘어간다.


   딸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타향 출신이었던 아버지의 흔적은 이 집에 없다. 어머니 쪽 친척으로 아이들 외할아버지, 삼촌 둘에 이모 하나가 있는데, 삼촌 하나 빼고는 다들 성화란다. 이 집에서 나가라고, 동네 창피하니 어디론가 멀리 떠나라고. 명예와 체면을 말하지만 어쩌면 그냥 집을 노리고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잔혹한 또 대담한 추측이지만 사실 그런 일은 흔했다.


   해사한 얼굴의 딸아이는 올해로 열다섯, 피어나는 봄 꽃 같은 나이였다. 우리 팀 간사와는 어물어물 말 배우던 시절부터 알던 사이다. 그 땐 종알종알 말을 쉬지 않는 꼬마였다는데, 한동안 못 보다 오랜만이어선지 지금은 그저 수줍게 웃을 뿐이다. 그래도 장난스러운 기색이 묻어 있는 표정이라 제 나이답게 귀여웠다.


  곧 딸아이는 차이(Chai, 인도식 밀크티)를 내오겠다며 일어나고, 아주머니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인은 가만히 관찰을 한다. 낮고 작게 하나씩 말하는 목소리는 더없이 차분한데 이상했다. 나는 그 차분함이 마치 앙금 같다고 생각했다. 안정적인 기분이 드는 차분함이 아니라, 내려갈 대로 내려가서 더 가라앉을 곳이 없는 느낌의 차분함이었다.


  아주머니는 외국인의 관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다. 해야 할 말이 너무나 많다. 주섬주섬 처방전 한 장과 알약 한 줄을 보여준다. 가정 방문을 하다 보면 자주 보는 모습이지만 오늘은 알약이 단 하나뿐이어서 그게 의아스러웠다. 보통은 기본 예닐곱 가지 정도의 약이 무더기로 나오기 때문이다. 현지인 간사는 처방전을 한참 보다가 내게 내밀었다. 구불구불한 글씨나 용어를 읽을 자신이 없으니 그냥 설명해 달라고 말하려는데, 읽어 보면 알 거라며 연신 내민다. 그래서 마지못해 받아 든 처방전에는 뜻밖에도 정갈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3년 넘는 기간 동안 다수에게 계속 강간당함     
비명을 지르거나 발작을 일으킴
     - 피해 상황이 떠오를 때,
     사건을 떠오르게 하는 사람들과 마주칠 때     

아침에 5회, 밤에 2회 증상 발현     

병력: 발작
(클리닉에서 발작 일으켰을 때: 의식 있었음, 혀를 깨물지 않았음, 팔다리 움직임 없었음)     

일주일 후 재방문 상담 요함


  그리고는 알약 한 종류가 처방되어 있었다. 분명 군더더기 없이 말끔한 글씨였지만 내가 제대로 읽은 게 맞는지 도저히 믿을 수 없어 한 글자씩 더듬는 심정으로 한참 바라보았다. 아주머니의 가라앉은 눈빛을 앞에 두고, 현지인 간사는 들은 내용을 조심스레 전해 주었다.


  대략 3년쯤 전, 지금은 침대에 묶여 있는 아들이 더 어리고 체구가 작았을 무렵, 아주머니는 늘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다녔다. 두 아이를 건사하며 먼 길을 오가기엔 힘이 들었으므로 11살이었던 딸은 집에 남았다. 이 가족을 마뜩찮아 한다면서도 꼭 뻔질나게 드나들며 이것저것 가져간다는 외할아버지는, 이 때 아이의 영혼을 송두리째 박살내 가져갔다. 아이에게, 제 손녀에게 너무 끔찍한 폭력을 휘둘렀다.


  이윽고 삼촌도 그 범죄에 가담했다. 아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저 어머니에게 기숙학교로 보내달라고만 했다. 아주머니는 단순한 아이의 칭얼거림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이가 워낙 끈질기게 졸라대서 1년 전에야 아이를 기숙학교로 보냈다. 나이 지긋한 노인이 경영하는 여학생 전용 기숙 학교였다.


  또 1년이 지났다. HIV 보균자를 위해 일하는 클리닉에서도 당시 비상이 걸렸다고 우리 현지인 간사는 기억해 냈다. 기숙학교에 있던 여학생들의 어머니를 통해서 밝혀졌다. 그 나이 지긋한 양반이 아이들을 상대로 성폭력을 가해 왔다는 사실이. 여학생‘들’이었다. 한두 명이 아니었다. 그 내내 아이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뒤늦게 추가된 말도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공부를 할 때도 아이는 청소를 했고,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아이에겐 매가 쏟아졌다고. 클리닉에서는 TF 팀을 꾸려 고발 절차를 밟았고 기숙학교는 문을 닫았다. 기숙학교 교장은 해외 어디론가 도망쳤다고 한다. 그 아내와 딸도 알고 있었다던 후안무치한 범죄는 졸렬한 가해자의 도망으로 그렇게 끝이 났다. 적어도 세상에서는.


  아이의 상처는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아이는 계속되는 발작 때문에 학교를 1년 쉬기로 했다. 책도 공책도 다 기숙학교에 두고 도망치듯 나온 탓에 아이는 마땅히 할 게 아무것도 없이 하루를 보낸다고 했다. 색색의 리본으로 머리를 묶고 교복을 단정히 입은 채 등교하는 동네 소녀들을 멍하니 본다고도 했다. 아이에게 좋은 책이라도 몇 권 선물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이가 내미는 찻잔을 받아 든다.


  3년. 결코 짧다 할 수 없는 그 세월 끔찍한 범죄의 피해자가 되었음에도 아이는 여전히 사랑스럽고 밝은 에너지를 갖고 있다. 감히 그런 더러운 것들이 다 깨뜨릴 수 없을 만큼 아이는, 그냥 아이였다. 할 말을 더 찾지 못하고 아이가 끓여 준 차이를 마셔 본다. 유난히 따뜻하고 달아 맛있는 차이. 나는 할 말을 더더욱 찾지 못한다.




   집을 나선다. 문 앞의 빈 플라스틱 의자를 내려다본다. 앉아 있다가 우리를 보고 허둥지둥 일어났던, 오늘은 물을 뜨러 이 집에 왔다던— 얼핏 호인 같은 미소로도 다 숨길 수 없는 위화감이 들던 그 빤빤한 얼굴을 다시 생각해 본다. 그가 바로 아이 외할아버지였다.


  가해자가 여전히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불편하다. 악마를 보았다, 보지도 않은 영화 제목을 한 번 생각해 보며 들어간 골목을 돌고 돌아 나온다. 괴로움이 깊이를 더한다. 입술이 떨릴 것 같아 애써 팽팽하게 당겨 미소를 지었다. 손이 떨릴 것 같으면 주먹을 꽉 쥔다.


   내 마음 슬프다고 이 앞에서 내가 울 수는 없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이야기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아이는 무너지지 않았으니까. 아이의 그 강인함을 동정한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다. 아이가 당한 일은 제3자인 나조차 미안한 마음이 들 만큼 어둡지만, 아이는 여전히 그 악몽 안에 살고 있지만... 우는 건 내 할 일이 아니었다.


  우는 대신 흐린 하늘 아래 물웅덩이 가득한 골목 위에서도 우리는 꿈 꿔야 한다. 이미 있었던 일을 없었던 일로 만들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살아남았고 지금도 살아가려 애쓰는 아이 바로 곁에 서서, 괜찮을 내일을 함께 꿈꾸며 그 꿈이 이루어지도록 부단히 애 쓰는 것이야말로 우리 어른들이 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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