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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정 Aug 05. 2018

좋은 일이 생길 거예요

기대와 불안의 이중주 안에서


  첫사랑이나 첫 키스의 아찔한 달콤함을 담은 대중가요의 가사를 굳이 빌려오지 않더라도, 처음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우리에게 설렘을 안겨준다. 아직 가보지 않은 길, 이후로 뭐가 나올지 모르면서 걸어가는 길은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주기 때문이다. 성향에 따라 또 상황에 따라 기대를 더 크게 느끼는 이도 불안을 더 크게 느끼는 이도 있겠지만 내게 처음은 언제나 설렘이었다.


  그래서 HIV/AIDS 사업장에서 처음으로 방문한 집도 잊지 못한다. 전쟁 통에 대충 지은 움막처럼 보이는 옹색한 집. 남편의 죽음으로 끝난 결혼 생활을 지옥 같았다고 말하면서도 그 말을 할 때 빼고는 시종일관 웃고 있던 여자. 집주인의 싸늘한 시선을 받으면서도 지금 더 바라는 게 없다던 여자. 내 머릿속 그를 둘러싼 환경은 거친 크로키로, 그 와중에도 날 보며 웃던 여자의 모습은 나직하고 옅은 필치로 그려져 있다.


  정식으로 NGO 파견 단원으로 다시 온 나를 보고 함박웃음 지으며 가장 먼저 반가워해 준 것도 그였다. 그 후로 다른 환자들 집을 방문하느라 한 동안 못 보다가 오랜만에 만나면 내 손을 덥석 잡고 자기를 잊어버렸냐고, 왜 통 오질 않느냐고 한참 타박 아닌 타박을 주곤 했다. 농담처럼 내가 어떻게 언니를 잊겠냐고 까르르 웃으면서 대답하지만 사실 그 말은 내 진심이었다. 그는 내게 특별한, 내가 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오늘만큼은 그의 이름을 “브리샤”라 부르자. 본명을 부른다한들 누가 그를 알아볼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민감성 질병이므로 가명을 부르는 게 서로 좋을 것 같아 기쁜 마음으로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을 골랐다. “웃음” 혹은 “사랑 받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내 마음에 떠오르는 감정과 찰떡같이 어울리는 이름이라 어쩌면 본명보다도 더 그에게 잘 맞는 이름 같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의 내 마음과도 일면 닮은 이름이다. 브리샤를 만나러 가는 길은 늘 기쁘지만 오늘은 평소보다 더 들뜬 이유가 있다. 오늘은 바로 브리샤의 재혼 자리를 알아보러 가는 길이었다. HIV/AIDS 양성 환자들만 모이는 클리닉에서 일하다 보면 가끔 의도치 않게 중매결혼은 물론 연애결혼까지 보게 되는데, 오래전부터 클리닉에 다니던 남자 분이 혼처를 알아본다는 말에 몇 다리 건너 우리 현지인 간사가 브리샤를 소개해 주게 된 거였다. 이미 남자 쪽 가족들이 한 번 집에 왔다 갔고 그 날은 남자의 집을 방문할 차례였는데, 브리샤의 가족들이 영 협조를 해 주지 않아 마지못해 우리가 다 같이 나선 거였다.



   나중에야 들었지만 우리 현지인 간사는 가기 직전까지도 끈덕지게 그 형제들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나중에 증인을 서고 서류에 서명을 해야 하는 것도 그들이었고, 아무튼 남남인 우리가 법적으로 끝까지 책임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현지인 간사는 브리샤가 가족들에게도 축복받는 결혼을 하길 원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브리샤가 얼마든지 재혼이라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거잖아?” 내게 묻지만 실은 내게 던지는 질문이 아니었던 불만스러운 한 마디. 그 얼굴에는 형제들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드러나 있었다.


  형제들은 여태까지 연락이 없다. 알아서 살든지 말든지 관심 없다며, 그 여자 삶에 끼고 싶지 않다며 발을 뺐다. 씁쓸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상견례 자리에 브리샤를 덩그러니 혼자 앉혀둘 수는 없어, 아쉬운 대로 현지인 간사들 모두와 나까지 가게 됐다. 전날 소식을 듣고 나도 브리샤의 사리에 잘 어울릴 만한 반짝이는 귀걸이 하나를 케이스에 곱게 담았다. 그렇게라도 브리샤의 새 출발을 응원하고픈 마음이었다.



  차에 타고 가는 내내 왁자지껄 우리는 신이 났다. 내겐 알아듣는 말보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현저히 많은 외국어지만 다들 신나 있으니 깔깔 웃는 소리만 들어도 재미있었다. 덜컹거리며 가는 내내 우린 무척이나 행복에 들떠 있었고, 덕분에 남자의 집이 꽤나 멀었음에도 가는 동안 지루한 줄을 몰랐다. 집 근처에 가서 정확한 위치를 묻기 위해 우리 간사가 남자와 통화를 할 때쯤에야, 천천히 실감이 나는 듯 브리샤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감돌았다. 긴장은 모두에게 전염되어 우리는 조금씩 조용해졌다.


  한참 통화를 한 후에 차를 세우고 내려 보니 꼭 한국에서 20년 전쯤에나 보던 시장 골목 같은 길이다. 한참 휘적휘적 들어가니 비교적 한적한 주택가가 나오고, 그중 낡은 4층짜리 아파트 제일 위층에 남자의 집이 있었다. 혼자 사는 집답게 단출하고 작은 방에 남자뿐 아니라 남자의 어머니와 형수까지 앉아 우리를 맞아 주었다. 좁은 방에 열 명도 넘는 사람이 옹기종기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나야 한 마디도 못 알아들으니 가만히 앉아 있다지만 다른 사람들도 이 상황이 낯선 듯했다. 여태까지 신나게 웃고 떠들던 게 거짓말이라도 되는 듯 분위기가 딱딱했다.


  이윽고 우리 현지인 간사 한 명이 포문을 열었고, 남자 쪽에서는 형수가 차분하면서도 야무지게 이야기를 받았다. 영 유연하지 못하던 분위기가 조금씩이나마 풀어져 간다, 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 들은 바로 우리 현지인 간사는 그 때 조금 불쾌했다고 한다. 진작 잡아 둔 약속인데 남자의 아버지도 형도 나타나지 않은 그 자리 자체가, 또 대화에서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작은 감정들이, 그 식구들이 브리샤를 소중하게 받아들이는 느낌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런 것 때문에 다들 굳어 있었나?


  나는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건 물론 그런 눈치조차 느끼질 못했다. 그 방에서 있었던 중요한 대화 틈에서 가장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아마 나였을 텐데, 하필 또 침대 안쪽 구석에 앉게 되어 누구의 시선도 받지 않고 방 전체를 조용히 보면서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다가 보았다. 긴장이 뒤섞인 두 남녀의 얼굴을. 허공을 보는 것 같지만 시선 끝에 브리샤를 살짝 걸쳐 둔 남자의 얼굴과, 알게 모르게 남자를 힐끗 보고는 눈을 내리깔고 입술 끝을 살짝 깨무는 브리샤의 얼굴을. 그렇게 은근슬쩍 서로를 바라보는 속눈썹 끝에 걸려 있는, 기대와 불안이 적절히 뒤섞인 가벼운 긴장을.


우리 현지인 간사는 브리샤를 위해 입을 열었고, 나는 침대 구석에 앉아 그런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모습을 보며 새삼 나는 브리샤가 처음 결혼할 때 모습이 어땠을까 상상했다. 언어 특성상 그를 언니라는 뜻의 호칭으로 부르기는 하지만, 미혼의 어린 외국인인 내게 그는 사회 분위기상 훨씬 어른이었다. 한국어였다면 나는 그를 “언니”가 아니라 “아주머니”라고 불렀을 그런 느낌이었다는 소리다. 그런데 그냥 아주머니도 아니고 지난 결혼 생활에 치를 떨던 아주머니였다. 그러다 보니 느끼지 못했다. 그도 한때는 금잔화로 만든 꽃목걸이보다 해사하게 얼굴을 붉히며 미래를 꿈꾸고 희망을 길러냈을 어린 신부였다는 사실을, 그에게도 푸른 봄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세파는 조금씩 밀려와 우리 주변에서 철썩대며 우리의 무표정을 변화시킨다. 기쁠 때 웃고 슬플 때 우는 건 우리 모두 같지만, 무표정은 누구도 같지 않다. 단호함이 느껴지는 입술이라든지 웃음기가 채 지워지지 않은 눈꼬리 같은 것들을 삶은 우리에게 흔적으로 남긴다. 브리샤의 눈동자에는 언제나 불안이 서성이고 있어, 꿈으로 얼룩진 눈동자를 한 시절을 그려보기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서 입술 끝에 사탕처럼 물려 있는 저것은 분명 기대감이었다.


  한 번의 실패에서 우리는 불안을 끄집어내고, 그럼에도 시작을 다시 해보는 용기에서 우리는 기대를 잡아든다. 여전히 행복해질 권리가 있는 두 사람이지만 사실 꼭 행복해질 거란 보장 같은 건 없다. 실제로 그렇게 어렵사리 새로운 인연을 맺은 후에도 새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며 훌쩍훌쩍 우는 아주머니들 손을 잡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러나 시작이 주는 긴장감 안에서 그런 모습까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새로운 발걸음을 떼는 순간이라면 불안과 기대의 이중주는 늘 함께 울려 퍼진다. 어디까지가 불안이고 어디서부터가 기대인지 그 색을 딱 잘라 구분할 수 없어도, 그 둘은 긴장이라는 이름 안에 함께 움직인다. 그리고 그건 나쁘지만은 않다.


  둘이 잘 될지 어떨지는 알 수 없다. 서로 죽고 못 살아도 알 수 없는 게 사람 사이의 일인데 뭐. 하지만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내딛는 지금 자체가 의미 있다. 두 사람의 얼굴에 가볍게 실린 긴장감 자체가, 두 사람에겐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이었을 것이다. 처음 결혼할 때 그 결혼이 어디서 어떻게 끝날지 이렇게 다시 시작하게 될지 예측하지 못했듯, 지금 끝을 말하긴 이르다. 어디서 어떻게 끝나든 이미 두 사람 안에서 무언가 시작되었다. 앞으로 갈 길이 멀지만, 멀리 갈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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