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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정 Sep 17. 2015

나의 일상은 휴가보다 아름답다

휴가 직전 여름 풍경

   덥다. 너무 더워서 참을 수가 없다. 한국의 여름도 만만한 건 아니었지만 인도의 여름엔 비할 바가 못 된다. 기온이 40도를 웃돌기 시작하면서부터 부담스러워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온다. 그러나 날씨로부터 도망칠 길 같은 건 없다. 그저 내가 이방인임을 새삼 확인하며, 엉덩이의 끈기로 모니터 앞에 앉아 버틸 뿐이다. 그러다가 컴퓨터의 열기까지 훅 몰려와 너무 힘들면 잠시 쉬었다. 닥치는 대로 먹기도 하고, 힘들다고 징징대기도 하고, 낮잠을 자다가 숨이 막히는 기분에 헉 놀라며 깨기도 하고... 그렇게 여름은 깊어가고 있었다.



  하루는 비가 갑자기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했다. 여름에 장마철이 있는 한국과 달리, 인도는 보통 여름이라 부르는 건기와 비가 종일 내리는 우기가 극명히 나뉜다. 한여름에 어쩐 비인가, 싶었지만 아침부터 후텁지근해 숨이 턱턱 막히던 차라 오히려 비가 반갑다. 비가 오려고 그렇게 더웠구나. 마당에 금방 고이기 시작하는 물 웅덩이를 지켜보며 시원한 물 소리를 만끽했다.


  그런 날이 있는가 하면 이런 날도 있었다. 어째서인지 인터넷 연결이 되질 않고 일은 급해서, 마음만 안달복달하며 시간을 보내던 날이었다. 결국 하던 걸 다 덮고 동네로 나가 무작정 걷기 시작한 날.


  빨래가 널려 있고 사람들이 한들한들 걸어 다니는 동네 길. 따가운 볕을 이유로 마다하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같이 일하는 친구 두어 명과 함께 걷다 보니, 내가 몰랐던 동네를 한 층 더 발견하게 되었다.


클래식은 영원하다.

   다리미와 다림판, 스팀 다리미까지 나오는 세상이지만 쉬이 버릴 수 없는 것들이 분명 있다. 인두와 다리미의 중간쯤 되어 보이는 그 안, 뚜껑을 열어 숯을 꾹꾹 채우고 자신 있는 솜씨로 다림질을 슥슥 하시는 거리의 다림질 아저씨 아주머니들.


  모든 옷이 다 그렇겠지만 인도 옷 또한 그 선을 살려 잘 다렸을 때 맵시가 난다. 인도 사람들은 옷맵시에 무척 신경을 쓴다. 셔츠, 사리, 꾸르따와 꾸르띠, 전통과 현대를 넘아드는 다양한 옷이 있지만 뭐가 됐든 좋은 자리에 나갈수록 곱게 다려 입고 예를 갖추는 데 최선을 다한다. 그 모습은 지켜보고 있자면 일종의 경건함마저 느껴질 만큼 진중하고 장엄한 맛이 있다. 아저씨의 자신 있는 손끝을 홀린 듯 지켜보다 눈이 마주쳐 히 웃었다.


  길 가다 목이 마르면 동네 빵집 앞에 있는 작은 주스 코너로 간다. 오늘의 메뉴는 모잠비, 수박, 파인애플. 수박을 고른다. 그 자리에서 수박을 서걱서걱 썰어서는 금방 갈아 내어 주는데 달고 시원해 기분이 좋다.

  

  한 손에는 고추 튀김과 바나나를 사 들고 비닐 봉지를 달랑거리며 집에 돌아가는 길, 어느새 해가 기울어 간다. 더위는 여전하지만 그래도 다시 기운 차려 일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자리에 앉아 행정 작업을 시작한다. 아동 후원을 시작하기까지 이렇게 필요한 게 많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생각 외의 부분에서 난항을 겪었다. 간단한 프로필이 담긴 서류 하나 만드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아이들은 물론 그 부모들도 아이들의 생일이 언제인지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과목이 뭔지 이런 것들을 그다지 생각하지 않고 살아 왔기 때문이다. 아이를 애칭으로 부르는 문화여서 가끔은 서류상의 본명을 아무도 몰라 곤란해하는 웃지 못할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아이는 2005년 생이라는데 아버지는 1999년에 돌아가셨다고 설명이 적혀 있어 갸우뚱한 적도 있다.


  몇 번이나 전화를 해 가며 두 번이고 세 번이고 확인을 한다. 그동안 세계 곳곳에서 묵묵히 이런 일을 해 온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덥다. 전기가 또 나갔다. 여름이 진해질수록 정전 시간은 길고 규칙적이 된다. 아까 사 온 바나나를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테라스에 모여 앉는다. 아무래도 오늘은 이 정도 일 하면 다 한 것 같다.


깊었던 상처가 아물다 못해 사라져 있음을 발견하는 날도, 일상의 어느 하루였다.

  또 색깔이 전혀 다른 날도 있었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어쩔 수 없이 내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내 손발에는 '선천적 표피 박탈증'이라는 말로 우선 표현되는 낯선 병이 있다. 평생 함께해 온 병임에도 낯선 이름이다. 가끔 생각해 본다. 이 이름으로 표현되는 증세를 가진 사람은 나 말고 얼마나 될까, 하고. 할아버지에게 유전으로 물려받은 병이고, 쉽게 말해 손발에 지방 한 겹이 없는 병이다. 그래서 붉고, 피부가 습진에 걸린 것처럼 벗겨지기도 한다.


  딱히 통증이나 가려움 같은 건 없다. 무거운 거 들 때 조금 힘들고, 병이나 캔을 잘 따지 못하는데 정확히 병 때문인지 그냥 내가 야물지 못해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다. 게다가 "나 이거 따 줘" 하고 내밀 수 있는 친구가 언제나 옆에 있었으므로 딱히 크게 불편한 건 없다.


  어릴 때는 불편한 게 있었다. "손이 왜 그래요?" 하고 놀라는 상대방의 눈, 나를 걱정하면서 큰소리 내는 것이 다 불편했다. 그럴 때마다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나를 쳐다봤고, 때로는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불쌍하다고, 안됐다고.


  하지만 난 불편하지도 불쌍하지도 않았으며, 굳이 꼽자면 누가 날 그렇게 보는 그 시선만이 그나마 조금 불편한 것이었다. 그게 없었다면 불편하다는 생각은 물론 내 손이 남들과 크게 다른지도 모르고 살았을지도. 아무튼 나는 여름에도 샌들 같은 건 딱히 신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 언제나 양말을 꼭꼭 챙겨 신는 사람, 핸드크림을 항상 갖고 다니는 사람으로 자랐다. 걱정하며 놀라고 한숨 쉬고 혀 차는 소리, 아무 말 없이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눈을 떼지 못하는 시선들은 언제나 있었으니까.


그런 시선, 그런 소리...


  그래도 그런 시선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또 감사하게 생각한다. 혀를 차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밉거나 진심으로 그들에게 화가 났던 적은 없다. 그중에는 나를 딸처럼 여기는 아줌마들도 계셨고, 친척들도 있었다. 진심으로 내가 안쓰럽고 걱정스러워 그러신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었으니까.


  상처로 남은 건 딱 한 번, 유치원 때였다. 아이들은 틀린 것과 다른 것을 구분하지 못할 만큼 어렸고, 나는 지금으로선 믿기 힘들 만큼 내성적인 데다가 '다른' 것을 가진 아이였다. 나는 마치 '틀린' 것처럼 한편으로 소외됐고, 그때는 미웠던 것 같다-고 지금은 기억도 희미하다.


   다른 것으로 분류되고 한쪽으로 밀려나는 경험, 거절의 경험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나를 좌지우지할 때도 있었다. 예를 들면 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조차도 병적일 정도로 “이 사람이 날 속으로는 싫어하지 않을까?”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순간 그 속내를 드러냈다가 상처받은 상대의 얼굴을 본 순간, 내가 그렇게 말하면 그동안 자기가 표현해 온 사랑은 다 뭐가 되냐, 자기를 그렇게 믿지 못하냐는 말을 들은 순간 마음속의 벽 하나가 와장창 깨진 그 순간까지 항상 그랬다. 그 이후 어느 순간부턴가 샌들도 편하게 신었고, 여기서는 맨발로 다닌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어느새 더 이상 속으로 그런 불안한 질문은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물론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나서 기억이 희미해진 덕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절에서 오는 상처를 낫게 한 건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사랑해 준 시선이었다.


  상처가 아물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그것이 내게 상처였음을 알았다. 너무 나와 밀착되어 있어서 상처인지 나인지도 구별되지 않았던 거다. 둔해서 감사했다. 그때 내가 괜찮지 않았는데 지금은 괜찮구나,라는 건 굉장히 소중한 문장으로 마음에 남았다.


  인도의 일상에서 이렇게 구구절절 내 해묵은 병과 상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같이 사는 우리 아이 하나가 어제 손이 벗겨진다고 찾아왔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는 아니고 일시적인 것 같다. 일을 많이 거들어야 했던 거친 손이고, 날씨는 건조하고, 그 피부에 물이 계속 닿으니까. 일시적인 습진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물기가 탁 번졌다. 우리 엄마아빠는 나를 보며 어떤 느낌이셨을까? 아이에게는 핸드크림을 하나 주며 틈틈이 바르라고 해서 보냈다. 아마 괜찮을 거다.


  아이만 괜찮은 게 아니다. 나도 괜찮다. 더불어 상처에 대한 처방도 알게 되었다. 상처는 우선 싸매야 한다. 눈총에 아프지 않게 타자로부터도 보호하되, 자기 연민으로 덧나지 않게 자아로부터도 보호해야 한다. 그 보호 안에서 치유해야 한다. 보통 이 보호와 치유는 어지간하지 않으면 적어도 한 번쯤은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괜찮아질 때까지 울어도 돼. 그래도 널 사랑해. 이제 괜찮아졌어? 그럼 이제 같이 일어나자. 라고 온몸으로 받아주는 사람 말이다. 그 후로 그 사람은 그 상처에 대해 자유로워지고, 같은 상처에 있어서는 대처법이 생기는 것이다. 상처가 아문, 그래서 자유로워진 사람은 또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어젯밤 이 생각을 오래오래 하면서, 난생 처음 진심으로 내 손발에 가진 이 병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상처가 아니기에, 내게 아픔이 아니기에 가능한 생각이었고 그래서 더 감사했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곧바로 일어나 그 전과 똑같이 살기를 종용하지 말자. 그저 곁에 쭈그려 앉아 같이 울고 같이 한숨 쉬자. 자기로부터도 타자로부터도 상처를 보호하면서... 그리고 "그럼에도" 이해받고 사랑받는 스스로를 인식함으로써 상처가 나아지면, 같이 으쌰으쌰 일어나 손 잡고 걷자, 하는 생각. 릴케의 말대로 사랑도 배워야 하는 것이다.


  오늘도 인도 길거리 한복판에서 사랑을 배운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로 나비처럼 내려앉길, 바라고 꿈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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