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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명절을 혼자 보내게 되었다. 사실 작년 추석에도 출근하긴 했다. 워라밸이 꽤 잘 지켜지는 편이지만, 어쩌다 보니 내 일은 딱 요맘때가 밀도 있게 바쁜 시기인지라. 올해도 연휴에 집에서 일할 판이었으므로, 기왕 이렇게 된 거 혼자 쉬엄쉬엄 앉아서 하면 될 것 같았다. 일뿐 아니라 놀 것도 많았다. 처음에나 심란했지, 이제 시간 싸움만 남아있는 지금은 무서울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친척들을 마음껏 만날 수 없는 명절이고, 가족들이야 자가격리 끝나고 보면 그만이었다.
다소 오만한 이 생각에 실금이 가기 시작한 건, 엄마와 통화를 할 때였다.
“명절인데 집에도 못 오고 어떡하니? 반찬이라도 해서 집 문고리에 걸어주고 올까?”
“엄마, 거기서 여기까지 언제 왔다 가려고 그래. 괜찮아. 요즘 세상에 배달 안 되는 음식도 없고. 마트도 다 배달돼서 해먹을 수도 있어.”
“그래도 명절에 혼자 있으니까 안쓰러워서 그렇지…”
“아냐, 엄마! 절대 오지 마. 엄마아빠가 그렇게 다녀가면, 나 그럼 진짜로 조금 슬퍼질 거 같아… 그냥 영상 통화나 한 번씩 해.”
웃으면서 말했지만, 주책맞게도 코끝이 시큰거렸다. 문고리에 걸린 반찬을 들고 들어온다면 분명 울 것 같다는 게 진심이었다. 서둘러 전화를 끊고 자리에 앉았다. 힘내서 일하자. 기분 좋게 일하자.
너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만 열심히 할 생각이었는데, 이상하다. 해도 해도 끝이 안 난다. 일이 많아서 마음이 어려웠던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이번에는 숨이 턱턱 막히게 답답했다. 사무실에서는 물론이고 재택근무할 때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연휴에 일해서 그런가? 시간과 정신의 방에 갇힌 게 이런 기분일까? 갇혀 있어서 괜히 마음이 외로 꼬이는 걸까? 뭔지 몰라도 아무튼 이런 심사는 혼자만 알아야 했다. 누구에게도 보여줄 순 없었다.
친구들에게 카톡하는 대신 핸드폰 속 사진들을 들여다봤다. (써 놓고 보니 무슨 헤어진 연인 같고 청승맞기 짝이 없다.) 가족들에게 전화하는 대신 집 마당을 비추고 있는 CCTV를 핸드폰으로 들여다봤다. (써 놓고 보니 무슨 스토커 같고 좀 그로테스크하다.)
사진 속 익숙한 얼굴들은 전생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득했다. 불과 며칠 전인 서울국제도서전 사진조차 그렇게 낯설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CCTV 속 마당은 딴 세상처럼 보였다. 한낮에는 마당에 다니러 오는 고양이들의 꼬리가 살랑거리는 모양새를, 명절이라고 가족들이 둘러앉아 무언가를 구워 먹는 모습을, 모두가 잠든 새벽에는 CCTV 앞에 흩날리는 먼지까지도, 한참 들여다보았다. 평소에도 안 하는 야근을 늦게까지 한 날, 그렇게 청승맞고 그로테스크하게 배배 꼬인 마음을 새벽 늦도록 훌쩍거리다 잠들었다. 일이 아직 많지만 내일 하루는 쉬어야지.
그렇게 작정하고 맞은 휴식의 날 아침. 진동이 울렸다. 엄마가 아침부터 영상 통화를? 자다 일어나서 세수도 안 한 얼굴이라 조금 고민했지만 일단 받았다. 화면 너머에는 뜻밖에도 외할머니 얼굴이 있었다. 그제야 생각났다. 어제가 오늘인 듯 오늘이 내일인 듯 살다 보니 날짜 가는 줄 몰랐는데, 백신 접종을 마친 엄마아빠가 드디어 요양병원에 계신 할머니 면회를 갈 거라고 분명 사전에 들었던 것이다.
코로나 시국이 시작된 후론 한 번도 뵙지 못한 할머니. 가끔 전화를 드렸지만, 대화는 단편적이었다. 안부를 묻고, 식사 잘하시냐고 묻고, 약은 잘 드시는지 묻고. 지금 돌아보면, 그런 질문은 여기저기서 자주 들으실 테니 좀 더 귀엽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때의 나는 단순하게, 그게 가장 중요한 얘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면회도 못 가니까, 얼른 나아지셔서 퇴원만 하시면 내가 꼭 가겠다고. 늘 그랬듯 그런 말만 했다.
몇 년 만에 보는 할머니 얼굴은 많이 상해 있었다. 할머니는 천천히 내 이름을 불렀고, 옆에서 외숙모와 엄마가 반색을 하며 하는 말을 대충 들으니 아마 어떤 손주 얼굴은 못 알아보신 모양이었다. “못 알아보겠다, 야.” 하시는데 “할머니, 내가 지금 자다 일어나서 얼굴이 부어서 그래.” 하면서 웃었다. 세수도 안 하고 누워있다 받았다는 게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엄마는 눈물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대화를 갈무리했다. 영상통화는 너무 짧고도 정신없이 지나가서, 할머니와 대화를 했다는 기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심란할 엄마 마음이 더 걱정됐다.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했다는 미안함에, 상한 할머니 얼굴을 보는 속상함에 엄마는 착잡해 보였다. 전화가 끊기기 전 급하게 “엄마, 집에 가면 전화해.” 덧붙였다.
면회를 마친 후에는 외삼촌 댁에 들렀다 갈 거라고 했으므로, 집에 갈 때까지의 시간을 가늠하며 기다렸다. 두어 번은 왕복하고도 남을 시간이 지났음에도 전화는 오지 않았다. 높은 확률로 아직 외삼촌 댁에 있겠지만, 아무 일도 없겠지만, 시간과 정신의 방에 있는 나의 마음은 너무도 쉽게 불안해졌다.
그제야 인정했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나 사실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구나. 일이 많다거나, 올 것 같은 시간까지 전화가 오지 않는다거나 하는 작은 일들조차 나에게 큰 불안으로 작용할 만큼.
차분하게 매트를 편다. 복잡하게 구깃구깃해진 마음을 당장 펼 방법이 없을 때는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근육을 자극할 때 풀리는 곳은, 승모근 고관절 대퇴근뿐이 아니다. 마음의 어혈이다. 긴장했던 마음을, 혹여나 주변에 폐를 끼칠까 두려웠던 마음을, 스트레스에 짓눌려 있던 마음을, 작은 자극에도 예민하게 일어서는 마음을 눙쳐낸다.
한 시간쯤 땀을 흘리고 마음이 단순해진 후 지금쯤이면 정말 집에 갔겠지 싶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한결 나아진 목소리. 할머니를 뵙고 왔다는 데서 마음이 조금 풀어졌나 보다. 이렇게 우리는 몸을 움직여 마음의 뭉친 곳을 풀어본다.
내일은 좀 더 나아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