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 의 시간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
올해를 마무리할 때까지 이곳에 남자고, 애당초 정했던 2년에 반년만 더하자고 결심했지만 한국에 가서 그러기가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인도에서의 일상이 너무나 당연해서, 이 시간을 위해 한국의 가족들은 그리움에 속 앓이도 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나 대신 껴안으며 지내왔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접어 두고 밀어 두었던 여러 이야기가 수면 위로 올랐다. 한동안 머리 싸매고 고민하고, 여기저기 연락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결론을 내려야만 하는 그 끝의 끝까지 가서야 마음 아프지만 결론을 내렸다. 이대로라면 평생이어도 행복할 것 같았지만, 더 있어주었으면 한다는 말도 들었지만, 처음 계획대로 9월이나 10월에 떠나는 것.
나는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떠나야 할까, 하는 고민은 처음 해 보는 것이 아니었다. 2년의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맞기도 하고 떠나 보내기도 했고,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자연스럽게 내 모습을 그려보곤 했으니까. 그러나 상상은 상상이고 현실은 현실이어서, 처음 하나부터 열까지 넘어야 할 산 뿐이었다.
처음에는 야무지게 바느질을 하듯 나를 빼낸 자리를 흔적 없이 여며 놓고 떠나는 방법에 집중했다. 빈자리를 미리 정리해야 한다고 다짐하던 마음이 그랬다. 여태까지 해 오던 일에 구멍이 나지 않게, 행정 문서들을 잘 정리하고 매뉴얼을 만들어 다음 사람이 잘 인수인계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식으로 일을 생각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감정과 관계를 생각하면 어불성설이었다. 관계란 대체될 수 없는 것이고, 언제나 이별은 마음 한 조각을 잘라 푹 떠내어 버리는 듯 아플 수밖에 없는 것이니. 떠나야 하는 자리를 보는 마음엔 우습게도 스산한 외로움이 맴돌았다. 지금이야 이렇게 언어화가 되지만 그때는 뭐가 힘든지 스스로도 뭐라 정리를 못하면서 그냥 끙끙 앓는 시간이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그런 고민을 시작했다. 나의 가장 좋은 것만 두고 가고픈 이 곳에, 나는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무엇 하나 남기지 않을 고민을 하다가 남길 고민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었다. 물질적인 것은 아니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일 관련한 스킬?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우선 남길 만큼 대단한 걸 갖고 있지도 않으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를 잡아낼 단어가 있을 텐데… 한참 고민하다 떠오른 단어는 성품이었다. 성격이 좋다 나쁘다의 개념이 아닌, 이 시간을 통해 내가 배워야 할 ‘덕목’이라는 의미에서의 성품. 그리고 그것은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의 끝에서 하나씩 터져 나올 것이었다.
고민하던 중 지금 이 감정을 처음 느껴보는 게 아니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인도에 오기로 결심을 한 건 아직 인도에 있던 1월이었고, 한국에 돌아와서 지내다가 인도로 출국을 한 건 10월이었다. 그 9개월 동안 내가 씨름한 상대는 죽음에 대한 공포, 미래에 대한 불안, 막연함, 이제는 도저히 같아질 수 없을 여태까지의 시간 등이었다.
싸우는 상대가 사람이거나 풀어야 하는 문제집이었다면 차라리 쉬웠을 것 같은데 너무 막연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 속의 전쟁이 더 벅찼다. 밤이면 가만히 앉아 그 모든 감정을 해부라도 하듯 한참 들여다보면서도, 낮에는 휴학생 신분으로 여느 때보다 다양하고 많은 일들을 하느라 그 시간이 어떻게 굴러갔는지 모르게 지나갔더랬다.
지금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이제 끝났으니까 집에 가서 쉬자’ 하는 기분이 아니라, ‘여기를 떠나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자’ 하는 기분.
돌아갈 곳은 집으로 표기되는 곳이지만 이곳도 내겐 집이고, 이 모든 길은 여정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 인생의 롤 모델 빨간 머리 앤이 종종 말했지. 이 모퉁이를 돌면 나올 길이 기대된다고.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용기였다.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다가 눈 질끈 감고 탁 튀어나오는 정도였던 나의 용기는 이제 조금 더, 단단해져야 한다. 좀 더 담담하고 편안하게 걸음을 뗄 수 있는 용기. 아직은 불안하고 분주하고 조심스러운 겁쟁이가 서 있지만 걸음을 뗄수록 조금씩 달라지겠지. 그리고 용기를 시작으로 해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하나씩 깨달아 가며 걷다 보면, 그게 여기 두고 갈 나의 사랑이 될 거였다.
나의 사랑을 두고 갈 곳을, 한 곳 더 찾아간다. 여느 때처럼 차를 타고 도시 반 바퀴를 돌아 낯선 동네에 들어섰다. 동네 초입에 들어서자 일을 하다 급하게 나온 기색이 역력한 남자가 가까이 다가온다. 큰 눈에 감격을 담고 나를 보는 걸 보니 분명 우리가 오늘 왜 만나는지 미리 연락을 받은 듯하다.
20명의 아동 결연이 잘 진행되어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덕분에, 새롭게 다른 아이들을 더 결연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 결연 후원을 받을 아이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하기 위해 찾아간 거였다.
이목구비 뚜렷한 아이 아버지 눈에, 콧대 없는 동양인 얼굴에 실제로 아이 아버지보다 어린 나는 제법 어려 보일 텐데도 있는 대로 예를 갖춰 인사를 하는 모습에 오히려 내가 더 고개 숙이게 된다. 이 모든 연결에서 가장 작은 고리일 뿐인 내가 뭐라고 가는 데마다 이렇게 황송한 인사를 받는다. 늘 민망하기 짝이 없다.
어색한 인사를 마친 다음 남자를 차에 태우고 조금 더 달려 도착한 곳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작은 골목길. 집집마다 식구를 유추해 볼 수 있을 정도로 잔뜩 널려 있는 빨래, 어디선가 나던… 오래 분뇨가 쌓인 화장실 냄새. 그리고 거기서 나던 생활이라는 느낌.
이윽고 닿은 남자의 집은 밖의 따사로운 햇살이 무색하도록 어둑어둑했다. 문 밖의 세상이 이질적이었다. 아이는 학교에서 급하게 불려 나왔다. 낯선 외국인을 신기해하면서도 수줍어 차마 말을 찾지 못하는 아이의 얼굴에 슬쩍 숨겨진 장난기가 보였다.
아이 어머니는 그동안 영어 배우지 않았냐며 얼른 인사하라고 아이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아이는 용기를 내어 내게 가까스로 인사를 건넸다. 할 수 있는 한 밝게 웃으며 대답한다. 반가워, 이름이 뭐야? 사실 이름 나이 정도는 다 알고 왔지만 묻는다.
아이의 얼굴이 조금씩 해사해진다. 아이 얼굴이 조금 풀어졌다 싶었을 때 우리는 사진을 찍기 위해 마당으로 나갔다. 카메라 앞에 서 있는 아이의 자세는 여전히 빳빳하지만 그래도 표정만큼은 아까보다 밝다.
아이의 표정이 밝은 만큼이나 어머니의 눈시울은 붉다. 내 손을 붙잡고 고맙다고, 고맙다고... 그 마음에 나도 울컥하지만 그냥 밝게 웃고 말했다. 어머니 이거 제가 하는 거 아니라고, 한국에서 다른 누군가가 아이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자기 돈 아껴서 소중하게 보내는 거라고. 저는 그냥 전달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아이가 공부 열심히 하고 잘 커서 나중에 자기가 도움받은 것처럼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면, 그러면 된다고.
내 말을 얼마나 알아들었을지 모르겠지만 아이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러나 정작 학교로 돌아가기는 싫어서 대문 간에서 한참을 뭉그적거리다가 팔랑팔랑 손을 흔들고 사라져 갔다. 참 사랑스럽게 눈에 밟히는 뒷모습이라 미소가 절로 나왔다.
아이가 가고 어머니와 현지인 간사들 사이에 이야기가 조금 더 길어진다. 아이 아버지는 푸줏간에서 마리 당 얼마씩 받고 염소를 잡는 일을 한다. 염소 고기는 꽤 고급으로 치기 때문에, 아이 아버지가 먼발치서 보는 손님들은 대부분 밝고 여유가 있었다.
가족을 위해, 즐거운 시간을 위해 염소 고기를 사러 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매일 같이 보는 아버지와 그 이야기를 전해 듣는 어머니는 소박한 꿈을 나누었다. 그런 모습을 조금 더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기면, 그래서 언젠가 우리만의 가게를 가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말이다. 매달 주어질 아이의 학비와 식량 꾸러미가 당장 그 꿈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이 척박한 상황에서 그 꿈을 좀 더 수월하게 만드는 첫 걸음으로 충분히 만족스럽겠다.
아침마다 마당을 쓸어내는 싸리빗자루 소리가 듣기 좋다. 먼지 하나까지 쓸어낼 기세지만 결코 그럴 수 없다는 점도 좋아한다. 곱게 떨어진 나뭇잎과 꽃잎들을 한 데로 몰아가다 보면 바람 한 줄기가 그것들을 도로 제자리에 데려가는 것도, 기껏 온 길을 돌아가게 만드는데도 싫지 않았다. 그렇게 땀 흘리다 보면 샤워한 후로 잊고 있던 샴푸 냄새가 뭉근하게 느껴지는 것도 좋았다.
결, 의 시간은 그런 의미였다. 최선을 다해도 절대 완벽에는 이를 수 없는, 잊고 있던 것이 슬슬 흘러오는 시간. 보다 여유 있고 관조적인 시간.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더 강하게 다잡아야 하는 시간이었다.
잘못하면 과거를 돌아보다 다 실패처럼 느껴져 허우적거리거나 미래를 돌아보며 불안함에 빠지거나 그 모든 감정에서 외로움에 홀로 휘청거리기 쉬운 시간이므로. 여전히 그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하다 헛발질도 하고 푹푹 빠지고 넘어지기도 하면서 이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궁금해하고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이 있다면 나의 가장 좋은 것만 남겨 두고픈 이 곳,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작별을 고하며 떠나고픈 마음 하나다. 용기가 필요했고, 필요하다. 그밖에 또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도 찾아야 하며 그 모든 것은 고스란히 내 흔적이 될 것이다.
하나는 찾았다. 그건 관심이었다. 적당히 기웃거려 보는 마음이 아니라, 마음 다해 상대의 말과 행동과 상황과 감정을, 상대를 듣고 싶어 하는 마음이라는 의미로 관심. 우습지만 내가 여기 관심을 두고 가야겠다는 생각은, 유독 꿈자리가 뒤숭숭했던 날 꿈에 나온 한국의 친구가 눈에 밟혀 하루 종일 생각하다가 찾아냈다.
친구가 잘 지내는지 궁금해 연락을 했고, 어떻게든 격려를 전하고 싶었다. 친구와 근황을 나누며 생각했던 게 꽃 선물을 보내는 거였다. 꽃 선물은 친구 어머님 손으로 보냈다. 친구 어머니를 나는 뵌 적도 없지만, 지구의 다른 구석에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관심이 있다면 우린 서로에게 선물이 될 수 있으니.
나도 여기 그런 마음을 두고 가려고 한다. 용기, 관심, 그 다음은? 모르겠다. 살다 보면 찾게 되겠지. 뚜렷한 것 하나, 좋은 것만 두고 가자는 그 마음만 가지고 걸음을 옮긴다.
생활은 여전하다. 하나 둘 사춘기를 맞아 가는 아이들과 어떻게 관계를 해 나가야 할지 고민하고, 그러면서 같이 성장하는구나 느끼고, 아이들 숙제를 도와주다가 같이 진이 빠지고, 환자들을 만나고 온 날이면 얻어 맞은 듯 몸인지 마음인지 어딘지 힘이 빠지는 동시에 솟아오르는 무언가를 느끼고, 이런 이야기들을 일기에 쉴 새 없이 쏟아내다 보니 두꺼운 일기장 한 권이 거의 끝나 가고 있고.
그중 일부만 요약해 지인들에게 보내는 이 글은, 아마 큰 일이 없다면 금방 마지막을 맞을 것이다. 그리고 나면 이 복작거리는 생활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혼자 책상 앞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 찾아올 것이고 솔직히 인정하자면 그게 여전히 두렵다.
그러나 마지막 이야기라고 끝은 아니다. 나의 인도는 평생 마음에 남아 있을 것이고, 또 언젠가 어디선가 우연처럼 다시 마주치게 될 테니까. 그러나 이런 생각도 떠나는 그 순간까지는 조금 더 마음에만 꾹 담아 두기로 한다.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마지막의 마지막은 아직 오지 않았다. 아직 내가 만나야 할 사람들이, 그들의 이야기가 조금 더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