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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정 Jun 16. 2024

목적지를 결정하고 항공편을 결제하자

목적지 저번에 정한 거 아니었어요?

여행에서 언제나 가장 먼저 따져봐야 하는 것은 항공편이다. 그 전에 목적지 결정이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 지금 3번째 글인데 목적지를 3번째 얘기하고 있어요…


물론 목적지는 이미 이전 글에서 정했다.


✔️ 부모님의 희망사항이 있다면 반영한다. 
✔️  “아무데나”가 나올 경우, 부모님의 평소 액티비티 취향/음식 취향/체력, 현지 날씨 등을 고려하여 선택지를 2-3개 안으로 추린다. 
✔️ 그냥 가져가면 안된다. 유튜브 브이로그라도 하나 가져가서 보여드리면서 이야기한다.


이 과정을 거쳐, 우리 집의 여행은 이탈리아로 낙찰되었다. 동생의 희망사항과 현지 날씨를 고려해 포지타노를 비롯한 남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하기로 했다. 그럼 다 정한 거 아닌가?


그런 줄 알았다.

이탈리아 왜 벌써 멀게 느껴지죠


그래서 호기롭게 항공편을 검색했다. 일단 어느 공항으로 도착할 것인가, 인데… 보통 이탈리아 여행은 피렌체 혹은 로마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으나, 북부는 이미 제꼈으니 고민 없이 로마로 결정한다.


아시아나 직항, 헬싱키를 경유하는 핀에어 2개가 10여 만원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그럼 역시 직항이 좋겠지? 그 순간 동생이 묻는다. 그래도 중간에 한 번 일어나서 다리 펴고 쉬면 좋지 않을까? 현혹된다. 그런가? 그러면 30만원 아껴서 맛있는 거 더 사먹을까? 그러고 보니 헬싱키 공항에 분명히 무민샵도 있지 않을까? ‘헬싱키 공항 무민샵’ 검색한다. 나온다. 무민 굿즈를 털어올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이거지. 여행은 이 맛이잖아. (아니다.) 그럼 기간은… 대충 이 정도? 하루이틀 차이 중에 비행기 가격에 큰 차이가 없는 선에서, 하루라도 더 놀 수 있는 정도로. 쿨- 결제 완료! 짝짝짝!


자.


지금까지 ‘이러면 안됩니다’ 편을 보셨습니다.

지금부터 ‘이렇게 해보세요’ 편을 보시겠습니다.



우선 다짜고짜 항공편부터 검색하면 안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을 생각하자. 로마와 포지타노 정도만 생각하고 항공편을 결제하기 전에, 구체적인 날짜와 날짜 별 도시 이동 동선을 다 짜야 한다. 당연한 소리 한다고? 이 당연한 생각을 저는 못해가지고요.


로마에서 무엇을 얼마나 할지 정하고, 포지타노로 어떻게 이동할지 찾아보고, 포지타노 인근 아말피를 비롯한 도시가 많은데 다 좀 알아보면서 구체적으로 뭘 할지 정하고, 다시 로마로 돌아올지 다른 곳을 갈지… 세세하게 정했어야 했는데. 결국 날짜의 시작과 끝을 이미 박아버린 후에 얼기설기 메운 우리의 동선은 다음과 같았다.


로마(1.5일) → 아말피&포지타노(2일) → 살레르노(2일) → 스펠로(2일) → 로마(1.5일)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살레르노에는 굳이 머물지 않았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아말피와 포지타노에서 이틀을 보낸 뒤 살레르노에서 굳이 이틀씩 머물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은 든다. 거기 별로 할 게 없는, 그냥 평이한 도시였다. 알고 보니 남들은 살레르노에 숙소를 잡고 페리 타고 포지타노 당일치기로 가더라고. 나는 거리만 생각해서 아말피 갔다가 포지타노를 왕복으로 왔다갔다 했는데, 페리는 취소되고 버스는 붐벼서 엄청 고생했다.


살레르노의 골목. 산책하기엔 좋았다.


그나마 살레르노에서는 예쁜 독채 숙소를 예약해서, 스마트TV로 넷플릭스 연결해 엄마 한국 드라마 실컷 보고, 부엌에서 고기도 구워 먹고 컵라면도 끓여 먹으면서 잘 쉬었다. 결과적으로는 그 시간도 뭐 좋기야 했지만... 만일 우리 엄마가 여행지까지 가서 휴식하는 건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면, 더 많은 활동을 하고 싶어하시는 유형이었다면, 분명 한 소리 들었을 것이다. 좀 더 세밀하게 알아보았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든다.


자, 이런저런 거 다 알아봐서 세부 일정이 정해지면 진짜 항공편을 결제할 차례!



아니다.


‘이러면 안됩니다’ 편에는 두 가지 패착이 더 있다. 첫째, 부모님과 함께하는 여행은 무조건 직항이다. 중간에 다리 펴고 걸어 다닐 필요? 없다. 공항에서 내렸다 어쨌다 하는 게 더 번잡스럽고 피로하다. 가는 길에는 기대치라도 높으니까 그렇다 치는데, 오는 길에는 정말 피곤하다. 그리고 멀리 가는 비행기는 보통 큰 걸 타니까, 자리마다 스크린이 달려 있어 놀 것도 많고 현재 위치나 도착까지 남은 시간을 파악하기도 편하다. 반면 작은 비행기는 그런 것도 없고, 얼마나 왔는지도 잘 모르겠고, 부모님 입장에서는 다소 답답하다. 경유하다 보면 최소한 한 번은 그런 거 타게 된다. 그냥 큰 거 타고 한 번에 가자.


어디까지 왔는지, 식사 일정은 언젠지, 꼼꼼히도 적힌 핀에어 스크린


두번째, 경유를 하더라도 지도 한 번은 머릿속에 그려보자. 혹시 읽으면서 눈치채셨습니까? 한국에서 이탈리아를 갈 때 핀란드를 거친다는 건 상당히 부자연스러운 동선이라는 사실을요... 북유럽이 더 멀다. 더 멀리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거라고요. 심지어 지금 러시아-우크라이나 폭격 때문에 항로도 조금 변경되어 있어 더 걸린다고 한다. 그 사실을 나는 쿨-결제 때리고 나서도 몇 달이나 지나서야 알았다. 그것도 누가 말해줘서 알았다.


여기서 변명. 나는 학교 다닐 때부터 지리에 유난히 약했다. 아니 사실 지금도 들어간 문으로 다시 나오는 게 조금 버겁고, 계단 같은 걸 내려갈 때 그 높이가 잘 파악이 안 되는 수준이다. 지능지수 검사했을 때에도 공간지각능력이 다른 능력 대비 낮게 나왔는데 그 결과가 오히려 ‘역시 그랬군’ 하고 나를 안심시켜 주었을 만큼, 공간을 지각하는 능력이 남들보다 현저히 떨어진다. 아직 시도도 해보지 않은 운전면허 취득에 대해, 아빠는 이미 매우 부정적이다 못해 냉소적이다. 합격할 가능성은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나 같은 사람이라면 지도를 펴고, 나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머릿속으로, 세계 지리를 한 번은 그려보고 결제하기를 권한다. 나는 그냥 항공권 판매 사이트에 적힌 소요 시간만 봤지 뭐야.


심지어 핀란드는 눈... 눈이 왜 와 있어?


그러니까 요약하면, 바보 짓만 안 하면 된다는 거잖아, 그럼 나 이제 진짜 결제해야지.

이렇게 생각하신 분이 계시다면. 결제하기 전에 하나만 더 하시기를 권한다.


그건 해당 구간 비행기를 이미 이용한 사람들의 후기를 찾아보는 것이다. 미풍양속의 나라 대한민국에는 예부터 특정 장소의 모든 요소를 사진으로 기록하는, 훌륭한 블로그 선생님들이 많이 계시다. 검색창에 항공사와 도착지만 입력해도 많은 정보가 뜬다. 아예 항공편명을 입력해도 뜬다. “핀에어 로마” 검색하면 된다. ‘탑승 후기’ 같은 말을 붙이지 않아도 다 뜬다.


찾아보면서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한번 돌려본다. 음, 기내식은 대충 이런 느낌. 스크린은 이렇게 생겼군. 엄마 보시기 편하겠는데. 아니 술은 식사 때 서빙하는 거 아니면 다 유료라고? 오케이. 경유 시간이 짧은데, 시간이 모자라다는 얘기는 없군. 근데 경유지에서 짐 검사를 하네? 오케이. (유럽연합이라 그랬으나 유럽이 처음이고 생각이 짧은 나는 몰랐다.) 핀란드 공항이 액체에 유독 민감하다고? 오케이. 그럼 치약이랑 핸드크림은 1명의 가방에만 넣기로 하자.


나는 이 짓을 출국 전날 밤이 되어서야 했는데, ‘결제 전에 이것부터 진작 할걸…’이라고 생각했다. 체크인하면서 창가 자리 혹은 통로 자리가 남아있는지 확인하고 선택할 수 있는 항공사가 일반적인데, 핀에어는 이미 결제 단계에서 자리가 모두 고정되어 있어, 추가 요금을 내야만 자리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 혼자였다면 아무 자리여도 상관이 없지만, 혹시라도 엄마랑 우리랑 자리가 떨어지면? 기왕 같이 가는 여행이고 장거리 비행이라 중간중간 화장실도 가게 될 텐데, 당연히 딸들과 나란히 앉아 편하게 갈 생각 하셨다가 혹시나 엄마가 혼자 똑 떨어져 앉으시게 될까 걱정스러웠다. 후기를 찾아보다 보니, 일행의 자리라도 붙여주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어 더욱 우려가 됐다.


결국 핀에어 어플까지 받아서 모바일 체크인을 하면서 자리를 확인했다. 모바일 체크인을 아예 해버리면 QR코드로 항공권을 대체해야 하는데, 또 그게 종종 안 먹혔다는 후기를 봐서 진짜 체크인을 하지는 않고 중간 단계까지만 들어가서 자리를 확인했다. 여행보다 6개월가량 일찍 항공권을 구입했기 때문인지, 다행히 세 자리가 붙어 있었지만, 그걸 확인하기까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불안했다. 결제 전에 이 사실을 알았다면, 역시나 아시아나 직항으로 결제해서 이 마음의 짐을 덜었을 거다.


써놓고 보니 지극히 상식적인 선인가, 그냥 나만 바보인 거였을까 싶기도 하지만… 어쩌다 한 번인 해외여행 준비를 앞두고 상식을 놓치는 사람이 나 하나는 아닐 거라 생각하며.



<오늘의 요약>
✔️ 부모님과 함께하는 여행은 무조건 직항 + 한국 항공
✔️ 경유가 불가피하더라도, 머릿속으로 대강의 루트를 그려보자. 소요 시간만 보면 안!
✔️ 해당 항공편을 이미 이용한 블로그 선생님들의 후기를 참고해, 소소한 정보를 얻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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