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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정 Jun 23. 2024

숙소를 예약해 보자

제 추천은 "독채 숙소"입니다!

계획을 세밀하게 잘 세우는 사람이 있고, 계획에는 영 재능이 없는 사람이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 전자가 MBTI의 J, 후자가 MBTI의 P라고 생각하겠지만… P도 계획을 세웁니다 여러분. J와 P의 결정적 차이는 계획의 유무보다 그 계획을 바꾸게 만드는 새로운 정보가 주어졌을 때 드러난다. P는 새로운 정보를 인식하여 계획을 바꾸는 데에 스트레스를 덜 받고 (그래서 어차피 유동적인 계획이니 아주 세부적으로 세우지 않는 사람이 많고), J는 자신의 판단을 거친 결론을 고수할 때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그래서 꼼꼼하게 계획을 잘 세우는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런데… 계획을 잘 세우지도 못하면서 계획이 바뀔 때 스트레스를 받는 최악의 조합. 그 사람이… 바로 나예요… 그 사람을… 사랑해 줘요…


계획의 시작부터 끝까지 우당탕쿵탕 스트레스를 받는 그 사람이… 마치 어떤 약 광고에서처럼 가슴을 쓸어내리며 편안함과 개운함을 느끼는 순간이 있다. 바로 항공권과 숙소 예약을 마쳤을 때다. 그 두 개 하면 솔직히 준비 다 한 거나 다름없잖아. (사실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그 사람은 나름대로 합리적이고 꼼꼼한 사고력을 발휘하려 노력하였다. 그 로직은 아래와 같다.


첫 번째, 숙소 평을 아주 꼼꼼히 보지는 못 해도 몇 개 정도는 보도록 한다.
두 번째, 중간중간 독채 숙소를 잡자.


둘 다 성공적으로 기능하기는 했다. 아무래도... 한뀪인먄 R아볼 슈 잇꼐 쟉쎵햔 후긔 같은 게 없는지 후루룩 훑어보는 건 꼭 필요한 일이니까. 그리고 독채 숙소는 정말 추천하고 싶은 옵션이다. 호텔은 호텔만의 매력이 있긴 하지만, 멋들어진 스위트룸을 넘나들 수 있다면 모를까 내 예산에서는 아무래도 호텔 방만 전전하는 여정이 좀 답답했다.



우리는 엄마와 여동생과 나까지 인원이 총 셋이다 보니, 원활한 커뮤니케이션과 안전과 물건 공유까지 생각하면 아무래도 셋이서 한 방을 쓰는 편이 나았다. 문제는 대부분의 호텔에서 3인실이 별로 매력적인 옵션이 아니라는 것. 3인실 자체를 따로 두지 않는 호텔들도 있어, 일단 3인실 옵션이 있는 호텔을 찾아다니는 것부터도 만만치 않았고, 찾더라도 다 2인실보다 아주 약간 커진 방에 침대 하나 빠듯하게 추가한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여기에 캐리어 세 개의 부피까지 생각하면, 가는 데마다 3인실 호텔만 찾아 다니는 건 아무래도 좀 덜 매력적이다. 그래서 나와 동생은 그렇다면 지방 도시에서는 독채 숙소를 잡아보기로 했다. 좀 예쁜 곳으로.


요즘은 국내 숙박/여행 플랫폼에서도 해외 호텔 결제를 해주는 경우가 많고, 우리도 로마 호텔은 그렇게 예약했지만. 아무래도 현지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길 수 있음을 생각하면 (생각보다 이탈리아 여행에 그런 후기가 간간이 보였다.) 해외 플랫폼을 쓰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부킹닷컴에서 도시 이름만 찍고 숙소를 뒤적거렸다. 다행히 예쁜 독채 숙소가 많았다.


보다가 괜찮아 보인다 싶은 곳을 발견하면 주소를 구글맵에 검색해서 위치를 파악했다. 어디가 어딘지 대충 몰라도, 기차역에서 너무 멀면 제외했다. 진짜 가장 가고 싶었던 독채 숙소는 뷰가 너무 아름다웠지만 역에서 멀어도 너무 멀고 좀 외진 데 있는 것 같아서 제외했다. 결국 치열한 고민 끝에 살레르노와 스펠로에서 각각 독채 숙소를 예약했다. 딱 여행 일주일쯤 되었을 때부터 독채 숙소를 쓰게 되는 것이었다. 사진만 봐도 아주 만족스러웠다. 사진을 보여드렸을 때 엄마도 꽤나 기대가 되시는 눈치였다. 너무 좋겠는데?


이 아름다운 화장실을 보라-!

정작 여행지에 도착해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았다. 우선 호텔 방이라는 넓지 않은 공간에 세 사람이 있다는 게 생각보다도 답답했던 것 같다. 공간의 절대적인 넓이 자체보다도, 공간 대부분이 침대 아니면 캐리어다 보니까 침대에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외에 딱히 뭘 어쩌기가 애매했다. 숙소에서 보내는 시간이 긴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은근히 답답했던 것이다.


세 사람이 한 방에서 자니까 생기는 불편함도 있었다. 이탈리아와 한국 사이에는 7시간이나 되는 시차가 있는데, 나는 왜 7시간 시차를 느끼지도 못하는 걸까… 나는 그냥 어두워지면 자고 밝아지면 일어났다. 심지어 가는 비행기에서 피곤했기 때문에 첫 날 밤부터 아주 잘 잤다. 매일매일 달게 자다 못해 아침마다 잠이 모자라다는 생각을 하면서 눈을 떴는데, 그건 나만의 이야기였다. 엄마와 동생은 시차 때문에 일찍 깨면 밤 12시, 늦어도 새벽 3시 사이에는 눈을 떴다. 옆에서 자는 사람을 생각해 최대한 대화를 참고, 약간의 대화도 속살거리면서 했지만… 알다시피 그런 목소리는 ASMR처럼 귀에 콕콕 들어온다. 결국 아무도 100% 만족하지 못한 밤이 지나고, 모두에게 피로한 아침이 오게 된다.



독채 숙소로 옮기고 나서는 수면 패턴에 맞추어 방을 나눌 수 있으니 좋았다. 각자 편안한 시간에 잠들고 편안한 시간에 깨어나, 각자의 시간을 즐기는 것. 우리가 머문 아파트는 유럽 건물답게 아주 오래된 건물이라 홑유리창 너머 도시의 소음이 고스란히 들어오는 곳이었는데, 집안 모두 잠든 밤 혼자 깨어 있는 감각을 오랜만에 느끼며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어 좋았다.


혼자 가만히 누워 있으니, 한국에 두고 온 업무 생각이 자꾸 막막하게 머리를 메웠다. 결국 머리를 비우겠다고 “너무 좋은데?” 싶었던 케이팝 명곡의 무대를 유튜브로 보다가… 아니 이건 내 방구석에 누워서도 볼 수 있는 건데 이탈리아까지 와서 이걸 보고 있다니 좀 시간이 아까운 건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다가… 여행은 쉬러 오는 건데 여기 와서 이렇게 쉬는 시간을 아까워하는 게 맞나 또 돌아보다가… 이런 생각을 반복하고 있다는 자체가 별로 건강한 마음으로 쉬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 자괴감이 들다가… 난 참 “아무 것도 안 하기”를 못하는 사람이군, 생각하다가. 결국 “아무 것도 안 하기”를 포기하고 100년 전 유럽을 여행한 한국 여성과 일본 여성의 여행기까지 쭉쭉 읽는다. 그러고 나니 비로소 마음이 좀 쉬어진다.


이틀간 내 “자기만의 방”이었던 곳


스마트TV에 넷플릭스를 연결해서 <눈물의 여왕>을 보며 누워서 푹 쉰 엄마와 동생은 그 밤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같은 방에서 같은 여행을 줄곧 달려왔던 우리는, 일주일만에 비로소 ‘자기만의 방’을 찾아 여정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여정에는 그 독채 숙소의 아름다움이 도움을 주었다. 오래된 가구들이 놓인, (이런 비유조차 너무나 동양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금방이라도 <소년탐정 김전일>의 사건 배경이 될 것만 같은 고풍스러운 취향의 숙소에서, 그 집 안에 있는 순간순간을 즐길 수 있었다.


노란 톤으로 설계되어 있고 고운 타일이 붙어 있는 부엌에서, 우리는 비로소 한식 한 끼를 우리 손으로 차렸다. 마트에서 사온 고기를 굽고, 샐러드에 챙겨온 즉석 밥과 볶음 고추장을 부어 비빔밥을 만들고, 컵라면 하나를 끓여, 맥주와 곁들이는 기분 좋은 오후. 이 식사 이후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아직 하루의 볕이 한가득 남아있는 시간. 곱게 꾸며진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쉬기만 하면 되는 그런 날. 글 쓰는 여자에게만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게 아니다. 모든 노동과 의무에서 해방되어 잠시 몸을 뉘일 공간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일주일 동안 바삐 여행한 몸과 마음은 살레르노에서 잘 쉬어 갔다. 동네를 산책하고, 마트에서 생필품을 사고, 길 가다 마주친 포케 가게를 반가워하며 간장과 쌀이 들어 있는 음식을 사 오고, 그런 하루 끝마다 예쁜 방에 몸을 뉘이면서. 그 힘으로 우리는 마지막 여행지, 스펠로로 떠날 수 있었다.


꽃과 예술의 도시 스펠로 또한 한국에 잘 알려진 지역은 아니지만, 프랑스나 이탈리아에서 휴가로 많이 찾는 작고 아름다운 도시였다. 이곳의 독채 숙소 또한 빼어나게 아름다워, 창밖으로 펼쳐지는 움브리아 평원만 바라봐도 시간이 잘 갈 것 같았다. 여기서도 나는 낮잠을 잤다. 자기 전, 바닥에 깔린 러그 위로 펼쳐지는 햇살이 너무 고와, 그 자체로 마치 좋은 꿈 같았다. 자고 일어나니 한낮의 마지막 햇살 자락은 이미 사라지고 저녁이 내리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이 여유를 우리는 온전히 누렸다. 하루를 마치고 호텔에서 “즐거웠다!” 하면서 나란히 잠드는 것도 좋았고, 멋진 음악을 틀어놓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시간도 행복했다. 그러나 독채 숙소는 우리에게 전혀 다른, 완전히 새로운 여행의 감각을 선사했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여행에서 독채 숙소, 정말 꼭 추천합니다-!


<오늘의 요약>
1. 호텔 좋지!
2.  하지만 독채 숙소도 좋다. 사유는 다음과 같다.
 - 한국에서 익숙한 공용 공간을 쓰게 되므로, 부모님도 여유로움
 - 부엌이 딸려 있다면 간단한 한식을 해 먹기 용이함
 -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자기만의 방. 거기서 더해지는 여행의 새로운 색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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