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국제영화제] <관리처분계획ㅡ미아리 텍사스 편> 리뷰
DIRECTOR. 장윤미
CAST. 미아리 텍사스의 골목/거주자들, 신월곡제1구역 재개발 위원회, 연대자들
SYNOPSIS. "70년 오명 청산! 성매매집결지 본격 철거!"에 가려진 이야기.
PROGRAM NOTE.
장윤미 감독의 <관리처분계획—미아리 텍사스 편>은 미아리 텍사스, 또는 신월곡제1구역 재개발을 내부에서 바라본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는 1부 골목, 2부 투쟁, 3부 이모라는 세 개의 단락으로 나뉘어 있는데, 각각 다른 주제를 다른 스타일 안에서 담아냈다. 1부의 경우 미아리 텍사스의 복잡한 골목 풍경을 담은 휴대폰 사진이 주된 이미지로 보여지면서 '식당 이모'에게 보내는 이곳 종사자의 편지가 내레이션으로 전해진다. 특정 인물의 이야기라기보다 성노동자의 사연을 뭉뚱그린 듯 느껴지는 이 편지에는 밀려나는 현실에 대한 서러움과 의외로 다정했고 따뜻했던 이곳에서의 삶이 담겨 있다. 2부는 거친 화면 안에 대책 없이 이주를 강요받는 성노동자들과 손님맞이 역할을 하는 '현관이모'들의 피눈물 나는 싸움을 보여준다. 3부는 단조로운 영상 속에 한 현관이모와의 긴 인터뷰를 담았다. 그 삶의 이야기가 너무 세세하고 풍성해 민속지로서의 가치 또한 상당해 보인다. 영화 말미에는 "미아리 텍사스를 포함한 신월곡1구역 재개발 지역은 2026년 3월 현재 철거 중"이라는 자막이 나오지만 그 얼마 뒤 성북구청은 "서울 최대 성매매 집결지였던 '미아리 텍사스'가 완전 폐쇄됐다"고 밝혔다. 이 폐쇄는 마지막까지 이 구역에서 이주하지 않고 영업을 하던 성매매 업소가 이주를 완료하면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끝까지 여기서 삶의 끈을 붙들고 있던 이들의 마지막 흔적인 셈이다. (문석)
집에서 공부만 하던 여자애들이 흔히 그렇듯, 나는 미아리 텍사스에 대해 잘 모르고 살았다. 성노동자들이 생존권을 이야기하며 시위하는 장면은 뉴스에서 봤다. 그리고 지극히 머리로만 생각했다. 장기적 관점에서 성매매라는 형태의 착취는 사라져야 하지만, 당장 코앞에서 생계수단을 잃는 그녀들을 위한 지원과 제도가 필요하다고. 딱 거기까지였을 뿐, 깊은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다. 여자는 이런 이야기 근처에도 가면 안 되는, (그러나 무수한 남자들에게는 거기까지 가는 것이 통과의례처럼 여겨지기도 한다는, 이런 말은 괄호 안에 있어야 하는,) 그게 미덕인 사회에서 살아왔으니까.
물론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아도 이런 생각은 어불성설이다. 이 사회에서 성매매는 엄연히 불법이니까, 근절해야 할 대상이니까.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행위의 종사자들을 인정하는 제도와 법률을 만들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존재하는 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언젠가 성매매 업소가 스타벅스 매장 수보다 많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서울 바닥에서는 돌아서면 있는 게 스타벅스인데 그보다 많다니. 괴리는 여기서 발생한다. 산업은 이미 거대하고, 그 거대한 산업을 단숨에 뿌리 뽑을 의지나 집행력이 없는 법이, 본의 아니게 눈 가리고 아웅이 되어 버리는 것. 이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영화관에 들어선다.
이 영화는 몇 개의 파트로 나뉘어 있는데, '1부 골목'은 거의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가 오는 장면이나 차가 지나가는 장면을 영상으로 담기는 했지만 대체로 미아리 인근에서 채취한 소리와 골목 구석구석에서 찍은 사진을 섞어 조합했다. 그리고 위로, 단편 소설 같은 편지 하나가 흐른다. 미아리에 들어온 지 20년 정도 된 여성이 의지하던 식당 이모에게 쓴 편지다. 대부분 미아리에 대한 지식수준이 나와 비슷할, 관객들을 미아리에서의 삶과 연결시켜 주는 느낌이고 아마도 많은 인터뷰와 실제 여성들 삶의 자잘한 면면으로 재구성되었을 것이라 나는 이 편지가 참 좋았다.
이야기 속에서 돋보이는 것은 단연 일상성이다. 일반인 여성뿐만 아니라 성노동자 여성들 사이에서도 미아리는 무서운 곳, 들어가면 위험한 곳으로 여겨진다는데, 편지 속에서 느껴지는 것은 지나가던 개나 고양이를 돌보거나 망했다는 어느 사장 이야기를 안타깝게 전하고 김장 소식을 묻기도 하는, 지극히 평범한 이웃 간의 대화다. 이 이야기들은 스쳐가는 사진들과 접목되며 미아리 골목에 사는 여성들이 '일 밖의 삶'을 어떻게 보내는지 드러낸다. 조악한 장식, 한때는 화려했을 장식 사이로, 초라한 신발이 놓인 초라한 골목. 개나 고양이가 스쳐가고, 벽면에는 여기저기서 붙인 스티커들이 붙어 있다. 카드빚 관련 광고 스티커부터 미성년자 고용 금지, 화재 예방 스티커까지, 이 공간이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지 잘 보여준다.
2부 투쟁, 3부 이모는 이 삶을 좀 더 미시적으로 관찰한다. 2부의 투쟁은 성노동자들의 투쟁 현장과 거기서 나온 모두 발언들을 들려준다. 1인칭으로 하고 싶은 말을 가장 집약적으로 담아낸 모두 발언을 통해, 그녀들의 삶은 우리에게 좀 더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그녀들의 말에 온전히 다 동의할 수는 없음에도, 최소한 저렇게 자다 말고 쫓겨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올라온다. 3부 이모는 한 이모의 이야기를 구메구메 펼친다. 열심히 살아온, 주변을 위하고 가족을 아끼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이제 나이도 먹고 상황도 어려워진 상황을 이야기하는 이모의 구술사는 거의 대부분 까만 화면 위에 자막만 깔린 채로 나온다. 그럼에도 주목해서 듣게 된다.
영화를 보는 동안 기분이 기묘해진다. 그녀들이 열심히 일궈 온 삶의 궤적임에도, 그녀들의 말에 온전히 고개를 끄덕이기에는 조금 머뭇거려지는 순간들 때문이다. 사실 그녀들이 처한 어려움은 순전히 타인의 폭력성에 의한 것이다. 욕망의 발로로 생겨난 산업이고, '진상 손님'들의 착취뿐만 아니라 불법이라는 사유로 내부에서도 다양한 착취가 이루어졌다. 그래도 그녀들은 씩씩하게 자기 삶을 살았는데, 그럼에도 이 산업을 합법화하자고 주장할 마음은 올라오지 않는다... 동시에 그들을 법외 존재로 남겨두는 것은 옳지 않다고 느낀다... 이 복잡한 마음으로, 그녀들의 패기와 용기, 실패와 좌절, 기쁨과 슬픔 같은 것들을 바라본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녀들의 행복과 무운을 빌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좋았던 가장 큰 이유는, 관객을 설득하려 들지 않아서였다. 친화력이 좋고 싹싹한 것으로 생각되는 (동시에 내 편이 아닐 때는 미친 듯이 싸울 패기도 가진, 그만큼 멋진) 여성들과 감독은 아마도 좋은 관계를 이룬 것 같다. 윤미 씨, 윤미 님, 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면서 그는 아마도 꽤 오랜 시간 미아리 인근을 거닐었던 것 같다. 그동안 감독이 주목한 것은 세상이 여기에 붙이는 찬반의 딱지가 아니라, 그냥 거기서의 삶, 골목이 사라지고 동네가 싹 밀려나가면 사라질 삶의 모양이었다.
현관 앞에는 신발이 놓이고, 골목에는 쓰레기봉투가 놓이고, 그 와중에도 김장 배추는 소금에 절여지고 새끼 고양이는 태어나고 눈이 푹푹 쌓이고. 어떻게 보면 세상이나 '관리처분계획'에서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을 이야기들에, 골목에 사는 당사자들에게는 너무 조그맣고 새삼스러운 일상의 조각이라서 그들조차 주목하지 않을 파편들에, 감독은 시선을 두었다. 그 크고 작은 시선의 결과물이, 영화 안팎의 전혀 다른 사람들을 연결 짓는다.
2026년 상반기 기준 미아리 주민들의 99.4%가 이미 이주하여, 철거가 거의 완료되었다고 한다. 사실 이들이 겪은 일은 도시에서 사는 누구라도 겪을 수 있었을 일들이다. 단지 아무도 이들을 보호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을 뿐이다. 이들은 거기에 항의하고 있었을 뿐이다.
타인의 욕망으로 시작된 산업을 견인하고도 인정받지 못한 이 여성들이, 지금 어디에 있을지 모르겠다. 여전히 이주하지 않은 0.6%의 사람들 중에 그들의 이름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99.4%는 그렇다면 또 어디에 있을까.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누군가가 밀려난 자리에서 그들이 살던 삶의 파편들을 헤아려 보는 것은 다소 서글픈 일이다. 다시 한번, 그들의 행복과 무운을 멀리서 빈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 영화 상영일정]
2026.04.30 16:30 CGV전주고사 4관 (상영코드 139)
2026.05.02 10:30 CGV전주고사 6관 (상영코드 313)
2026.05.08 17:00 CGV전주고사 4관 (상영코드 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