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현혹되지 마라
폭스 사의 애니메이션 <아나스타샤>가 아니더라도, 많은 음모론자들이 제정 러시아의 끝자락에 엄청난 호기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미디어에서 몇 번이나 다루어도 신선할 만큼 파격적인 '소재'들이 가득하니까. 제정 러시아의 끝,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왕가. 그곳에는 라스푸틴이 있었다. 제정 러시아가 죽기 전 삼킨 독약이었다.
그전까지 유럽에서 러시아는 거대한 곰 같은 나라로 인식하고 있었다. 몇 번이나 유럽을 들었다 놨다 했던 나폴레옹이 모스크바 정복에 실패하고 돌아왔던 것이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어서였을까. 상호 견제와 협력 사이를 바삐 오가던 유럽 외교사에서 러시아는 호시탐탐 남하 기회를 엿보고 나머지 나라들은 이를 견제하려는 모습을 수시로 보인다. 그러나 20세기 초 러일전쟁(1904-1905)으로 그들 모두 충격에 빠진다. 군사 강국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러시아가 일본에게 패배하다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이란 나라가 있는지조차 몰랐던 이들에게는 충격이었지만 사실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20세기 초 러시아는 농민들을 꾹꾹 밟고 쥐어짠 힘으로 군사 대국처럼 비치고 있었을 뿐이었다. 변해가는 국제 정세와 경제 체제 안에서 농산물만으로는 한계가 있었고, 이제는 공업 노동력을 쥐어짜기 위해 알렉산드르 2세가 농노 해방령을 발표했다. 체제적인 바탕이 준비되지 않은 해방은 참 해방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농민들은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려 경제적으로 예속되었고, 황실은 여전히 그 고통을 나몰라라 했다. 수출량을 늘려 공업을 발달시키는 것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근이라는 상황조차 고려하지 않은, 폭주 기관차처럼 무식한 목표치였다. 곳곳에서 조직이 형성되고 노동 운동이 일어났지만, 본질적인 부분은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계속된다면 한계가 반드시 오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 한계는 1905년 1월 어느 일요일에 터져 나왔다. 정교회 가퐁 신부를 필두로 한 사람들은 황제의 겨울 궁전 앞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황제의 초상을 들고, 황제에게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급료를 올려 달라는 청원서를 들고 가는 길이었다. 황제의 군대는 이에 사격으로 맞섰다. 수많은 사람의 피가 흘렀고, 이 날은 '피의 일요일'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았다. 그 날 당일까지도 황제를 아버지처럼 여기던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계기로 제정 체제 자체에 반감을 품기 시작했다. 1905년은 러시아 제정에게 치명적인 해였다. 비인간적 처우를 참다 못한 포템킨 전함 수병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도 같은 해였으니까. 그러나 서서히 러시아 혁명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 줄은 가퐁 신부 본인조차 잘 몰랐을 지도.
그래도 그 누구보다도 몰랐던 인물을 들자면 당시 차르였던 니콜라이 2세가 아닐까. 역사상 무능한 군주를 꼽아 보라면 금방 나올 이름 중 하나일 것이다. 패악을 떠는 군주는 아니었지만, 무난하게 순박한 인간성만으로 군주가 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피의 일요일' 당일도 당시 러시아 상황에도 무관하게 휴가 중이었고, 발포에 대해서도 별 생각이 없었다. 그도 일기장에는 그 날을 끔찍한 날이었다고 썼지만, 상황 파악을 해서 내린 결론이나 책임감의 표현이 아닌 그냥 사건에 대한 유감 표명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피의 일요일'로 행진을 실패한 가퐁 신부는 러시아를 떠나면서 그를 '살인자'라고 칭하며, 존칭도 무엇도 생략한 저주의 편지를 남겼다. 마땅히 흘러야 할 피가 당신과 당신 가족의 머리 위로 떨어질 것이라고. 그리고 그 예언은 머지않아 현실이 된다.
니콜라이 2세는 평범한 환경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아마 수수하고 평온하게 천수를 누렸을지도 모를 인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정략적인 결혼과 정부(情婦) 같은 이야기가 덕지덕지 붙은 유럽 왕가 사이에서 알렉산드라 황후와 연애결혼을 하고 조용하게 산다는 건 분명 흔치 않은 일이었으니까. 두 사람 사이에는 네 명의 딸과 아들 하나가 있었고, 딸들은 부모보다 훨씬 야무진 편이었다. 특히 장녀 올가에 대해서는 아들이 아니라 황위에 올리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는 평가가 있었을 정도다. 생존설로 유명했던 아나스타샤 또한 아첨하는 사람들에게 촌철살인을 날리기를 잘해 꼬마 도깨비라는 뜻의 '쉬비지크'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제법 다복한 가정이었지만, 떠나지 않는 근심거리가 하나 있었다. 유럽 왕실을 맴돌던 혈우병이 알렉세이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혈우병 보인자였던 빅토리아 여왕을 통해 혈우병이 전 유럽 왕가에 퍼지게 되는데, 출혈에 약하고 지혈도 잘 되지 않는 병이라 평균 수명이 매우 짧았다. 여성에게는 보인자로만 전달되기 때문에 빅토리아 여왕에게도 알렉산드라 황후에게도 문제가 없었지만 어린 알렉세이는 병약한 시절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이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은, 매우 숭고하고 아름다운 감정이었을 그 마음은 라스푸틴이라는 돌팔이 수도승을 만나면서 완전히 엉망이 되어 버린다.
라스푸틴은 본명이 아니다. 막 살던 젊은 시절을 농축해 '탕자'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었다.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이 탕자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방탕한 생활을 하는 돌팔이 수도승 라스푸틴을 통해 1903년 알렉세이의 상태가 다소 호전되면서 황실에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혈우병의 치료법은 1960년대까지도 요원한 일이었고, 혈액응고인자 제제를 발견하고서야 진전이 있었으니 라스푸틴이 굉장한 치료법으로 혈우병을 낫게 했을 리는 없다. 다만 평생을 아픈 아이로 살아 온 알렉세이와 신경이 쇠약한 편이었던 알렉산드라 황후가 라스푸틴을 통해 심리적인 위안을 크게 얻었던 듯 싶다. 그까짓 게 뭐라고 상태가 호전까지 되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사람 심리라는 게 의외로 많은 걸 움직인다. 심리 테스트라고 아무 질문이나 던지고 아무 답지나 줘도 '어머, 진짜 신기한데 다 제 얘기 맞아요' 할 수 있다는 걸, 다양한 다큐에서 이미 여러 번 보여준 바 있다.
라스푸틴은 그렇게 황실의 총애와 신임까지도 단단히 받게 되면서 종교적인 일뿐 아니라 국가의 대내외 중대사를 주물럭거리는 큰손으로 떠오른다. 니콜라이 2세와 알렉산드라 황후는 거의 그에게 엎어지다시피 한 상태였다. 무능한 군주였던 니콜라이 2세는 거의 '이참에 손 떼는' 수준이었다. 물론 그렇게 지내다가 피의 일요일 사건도 발생했던 거였다. (라스푸틴이 처음 황실에 발을 들인 것은 1903년, 피의 일요일 사건은 1905년이다.)
라스푸틴 이야기가 나오면 빠지지 않고 함께 언급되는 것이 그의 문란함이다. 알렉산드라의 정부와도 같은 존재였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두 사람이 그렇고 그런 사이였든 아니었든 그게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두 사람 관계에서 보다 본질적인 문제점은 라스푸틴에 대한 황제 부부의 맹목적 신임과 권력 이양에 있었다고 본다. 아무튼 라스푸틴은 귀족이나 황족 여성들과의 성추문이 끊이지 않았는데, 개중에는 강간 범죄도 있었고 그를 추종하는 여성들도 많았다. 종교적 신비로움을 가장하고 사람 심리를 건드리는 일에 황후도 넘어갔을 정도니까.
똑똑했던 장녀 올가는 그런 라스푸틴을 경계했으나 알렉산드라는 라스푸틴을 두둔하며 오히려 딸을 꾸짖었다. 그러나 라스푸틴을 좋게 바라보는 건 오직 그들뿐이었다. 귀족들 또한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와 제 배 불리는 라스푸틴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결국 라스푸틴을 눈엣가시로 여기던 황족과 귀족들이 모여 그를 암살할 모의를 짠다.
살아생전 황실을 패망으로 몰아넣은 라스푸틴은 암살조차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았다. '원샷원킬' 같은 건 없었다. 라스푸틴을 초대한 자리의 음식에 청산가리를 넣었는데 죽지도 않고 잘 놀기만 하는 것이었다. 결국 총을 쏘았는데도 죽지 않고 도망까지 치려했다. 결국 무기로 쳐서 강에 던져 넣었다. 나중에 사체를 건졌을 때 직접적 사인은 익사로 밝혀졌다고 하니 더 어이가 없다. 당시 강에는 두꺼운 얼음이 깔려 있었는데, 그 얼음 안쪽에서 라스푸틴의 손톱자국이 발견되었다는 말도 있다. 천운이라고 해야 할지 참 질긴 생명력이었다. 그래도 아무튼 죽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황실의 권위를 되돌려줄 수는 없었다. 혁명의 불길은 이미 당겨졌고, 민중의 분노는 그 이상을 용납하지 않았다. 로마노프 왕가의 마지막 일원들은 니콜라이 2세부터 막내 알렉세이까지 모두 숙청되었다. 이때 아나스타샤가 살아남았다는 음모론만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안나 앤더슨 때문이 크다. 안나 앤더슨 생전에도 뜨거운 감자였다. 아나스타샤를 알던 사람들이 절대 아니라고 부정하기도 했고 아나스타샤의 모국어인 러시아어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제정 러시아 황실 내부 이야기나 예법을 소상히 알고 있기도 했고, 귀를 비교해 보았을 때 비슷한 구석이 17군데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법적으로 동일인이라 인정할 수 있는 수준이라 진짜 아니냐는 말도 심심찮게 나왔다. 사후 화장을 했기 때문에 DNA 대조가 불가해 이대로 미궁이 되는가 싶었지만, 결국 생전에 남긴 머리카락을 통해 나중에 아나스타샤와 무관한 사람인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러니 로마노프 왕가의 마지막 일원들은 1918년에 모두 죽은 것이다. 유해는 우랄 지역의 한 갱도에 묻혔고, 이때 마리아와 알렉세이의 유해는 다른 유해들과 조금 떨어진 장소에 있었기 때문에 다른 유해들보다 16년이나 늦은 2007년에야 발견되었다. 다른 유해들은 진작 발견되어 필립 공(에든버러 공)의 DNA를 이용해 검사를 했고, 지금은 성인으로 추대되어 상트페테르부르크 정교회에 안치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을 역사의 뒤안길에 내버려 둔 채 혁명은 제 갈 길을 갔다. 1917년은 두 차례에 걸친 러시아 혁명의 해로 남았다. 영국으로 망명하려던 왕가의 일원은 모두 숙청되었고, 라스푸틴의 별칭은 'crazed monk미치광이 수도승'이 되었다. 한 세기를 떠돌던 음모론은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통해 몇 번이나 되살아나다가 결국에는 정돈되었다.
그리고 백 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이 미치광이 수도승의 이름이 대한민국의 실시간 인기 검색어에 몇 번이나 오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주한 미국 대사관에서 누구누구를 더러 한국의 라스푸틴이라고 보고했다는 사실이 새삼 거론되었고, 그 딸의 이름이 하루에도 수십여 건의 기사로 떠오르는 현재의 상황도 한국판 라스푸틴 사건이라고 외신에 계속 대서특필되고 있다.
사이비 종교는 위험하다. 인간 심리의 말랑말랑하고 약한 부분을 노려 뱀처럼 콱 물고 늘어지니까. 그런 개인적 차원의 폐해도 분명 위험하지만, 알렉산드라 황후가 그냥 마음 위안 차원에서만 라스푸틴을 만나고 그를 그냥 궁중 수도승 정도로 두었다면 그 폐해가 좀 작았을 것이다. 개인의 혼이 비정상인 정도에서 그쳤을 테니까. 물론 라스푸틴이 없었으면 제정 러시아가 원만하게 굴러갔으리라는 말은 할 수 없다. 전체적으로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 다만 결과의 차이를 말하려는 게 아니라 과정의 차이, 태도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다. 문제는 차르가 할 수 있는 결정, 차르가 해야 하는 결정을 라스푸틴이 주물럭거리게 내어두었다는 점에 있었다.
백 년이 지났다. 제정 러시아가 무너지고 소련도 무너지며 세상이 여러 번 자반 뒤집기를 할 만큼 긴 시간이었다. 그만큼이나 우리나라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 부침을 겪은 끝에 지금 우리는 민주주의 공화국에 살고 있다. 차르의 결정이 아니라 대통령의 결정, 대통령의 결정이 아니라 헌법에 의해 국민에게서 나오는 결정을 권력이라 부르는 나라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 꼴이 좀 많이 우습게 되었다. 날마다 새로 터지는 뉴스는 웬만한 영화보다 더 흡입력 있는 전개를 보여주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었지만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았다. 풍자와 해학의 민족다운 면모를 보이는 한편으로 주요 대학에서는 시국선언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 계속되었고 그 모든 힘이 광장에 촛불로 맺혔다.
그리고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백 년 전의 어느 돌팔이 수도승을 생각하며 상황을 지켜본다. 수도승을 쳐내는 것도 물론 중요했고, 니콜라이 2세의 무능이 아닌 다른 권력이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제정 러시아가 혁명으로 무너진 데는 그전부터 켜켜이 쌓여 온 부조리의 큰 그림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날로 날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고, 그중에는 놀랍지 않은 것이 하나 없다. 경악을 금치 못하는 한편으로 세상에 드러나 다행이라는 생각도 한다. 그동안 이해할 수 없던 것들 중 일부가 이해되어서 느끼는 해소의 감정도 있다. 잘 기록하고 기억하면서 큰 그림도 함께 지켜보아야 한다. 날카로운 눈이, 그리고 행동하는 손이 필요하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사람들처럼. 하나의 눈, 하나의 글, 하나의 손이 슈퍼히어로처럼 기능하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한 명이 아니니까. 누가 무슨 짓을 꾸미는지 계속 눈을 부릅뜨고 보아야 한다. 누가 감방 도배를 문제삼고, 누가 이역만리에서 송환 결정에 항소하겠다 되려 큰소리치며, 누가 영장 기각이라는 딱지를 달고 검사실을 빠져나가도- 우리는 그 이름을 잊어선 안 된다. 언제나 그렇게 눈을 부릅뜬 여럿의 힘으로 넘어왔다. 몇 명이 사이 좋게 손잡고 짜는 판이 아닌, 다 같이 짜는 판이어야 한다. 헌법 1조 1항과 2항은 분명 그런 뜻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