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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희 Feb 12. 2024

오늘만 쓸 수 있는 글

알베르 카뮈, <결혼, 여름>

이번에는 글을 제날짜에 올리지 못했습니다. 저는 연휴 동안 대구에 다녀왔습니다. 대구는 남편의 부모님이 계신 곳입니다. 이제 남편은 없지만 저는 설과 추석 일 년에 두 번은 꼭 딸과 함께 대구에 갑니다. 아들을 잃은 부모님들에게 손주까지 없는 명절은 너무 가혹한 것 같아서요. 처음엔 관성 같은 발걸음이었습니다. 십여 년을 남편과 살면서 늘 다니던 길이었으니 가지 않는 것이 더 슬프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맨 첫 명절은 마음을 떼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없는 대구라니 현관문을 열고 집에 발을 들일 상상만 해도 심장이 너무 조여서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용기를 내었던 건 내 슬픔만이 다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빠의 빈자리를 느낄 딸에게 할머니, 할아버지의 자리까지 뺏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벌써 여섯 번째 설 입니다만 갈 때마다 어렵기는 합니다. 올해의 어려움 중엔 이 연재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할까 봐 싫었습니다. 밤에라도 틈틈이 써서 일요일에 올리려고 노트북도 챙겨 갔습니다. 결국 노트북은 한 번도 켜지 못했습니다. 일요일 오후에 집에 도착해서 지금부터 쓰면 돼,라고 저를 다독였습니다.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오면서도 내내 무얼 쓸까 고민했거든요. 두서없긴 하지만 메모장도 둘 채워 두었습니다.  

자, 그럼 이제 쓰기만 하면 돼. 그렇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자정이 지났어요. 자정 전에 해내고 싶었는데 잘 안되었습니다. 일요일마다 연재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지만 한편 그게 뭐 대수인가 싶기도 했습니다. 지나치게 저를 옭아매는 건 제 방식이 아니거든요. 조금 부끄럽지만 저는 웬만한 일에는 저를 관대하게 봐줍니다. 걸핏하면 몰아세우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저는 이번에 카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연휴 내내 카뮈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아이스크림을 사 오는 길에도, 자려고 불을 끄고 나서도 카뮈 생각을 했습니다. 잠들기 전까지 카뮈의 무엇에 대해 쓸까 고민했습니다

저는 카뮈를 무척 좋아합니다. 경외심을 갖고 있습니다. 카뮈는 제게 내리쬐는 여름, 피어오르는 열기, 짙은 녹음, 포기할 줄 모르는 생(生)입니다. 저는 삶에 기울어진 사람입니다. 분명히 그렇습니다. 제 안에는 이방인에 나오는 뫼르소처럼 분명한 자기 확신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살아있는 것들에 깊은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살아있음에 안도를 느끼고 자주 형용할 수 없는 환희에 휩싸입니다. 주로 혼자 길을 걸을 때 그런 감정에 사로잡힙니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그렇게 태어난 것 같습니다. 카뮈도 분명하게 생(生)에 기울어진 사람입니다.      


나는 꾸밈없이 이 삶을 사랑하며, 이 삶에 대해 자유로이 이야기하고 싶다, 이 삶은 나의 인간 조건에 대해 자부심이 들게 한다. 하지만 흔히 들어왔던 말이 있다. “자랑할 게 뭐가 있어.” 아니, 자랑할 것이 있다. 이 태양, 이 바다, 청춘으로 끓어오르는 내 심장, 소금 맛이 나는 내 몸, 노란색과 파란색 속에서 부드러움과 영광이 교차하는 이 광활한 배경. 이것들을 정복하기 위해, 내 힘과 능력을 다해야 한다. 이곳의 모든 것이 나를 본연의 나 자신으로 내버려 둔다. 나는 나의 어떤 부분도 포기하지 않고, 어떤 가면도 쓰지 않는다.

카뮈의 이 문장을 저는 몇 번이고 다시 읽었습니다. 너무 아름다워서, 몇 번이고 다시 읽었습니다. 소리 내어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소리를 내어 읽으면 글은 말 그대로 살아 움직입니다. 더욱 빠져들 수밖에요.

저도 꾸밈없이 이 삶을 사랑하고 이 삶에 대해 자유로이 말하고 싶습니다. 꾸밈없이 이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조건이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이유를 붙이지 않고 사랑하는 것, 타이어가 펑크가 나도, 신호등이 빨간 불로 바뀌어도, 나뭇가지가 휘어도, 찬바람이 옷 사이를 파고들어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없는 남편의 집에 가야 하고, 그 걸음이 매번 다른 어려움을 안긴다 해도 나는 이 삶을 사랑합니다. 그게 내 인생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되지는 못하니까요. 그리고 나는 자유로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거리낌 없이 재지 않고 내가 느끼는 바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럴 때 이 삶이 나의 인간 조건에 대해 자부심을 들게 할 것 같습니다.

카뮈에게 저는 삶을 바라보는 눈과 살아내는 태도를 배웠습니다. 나는 내게 주어진 괴로움이나 힘듦을 마구 이겨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괴롭고 힘들 땐 괴롭고 힘들다고 토로합니다. 일어설 힘이 없을 땐 그 자리에 드러누워 있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그 시간이 지나고 결국엔 내가 이겨낼 거라는 걸 의심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삶을 묵직하게 느낍니다. 앞으로 내게 남은 관문이 쉽기만 할 거라고 낙관하지 않습니다. 어떤 관문은 당최 통과하기가 힘들어요. 그런데도 나는 그 역시 내 삶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고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매일의 태양이 이 세계의 첫 태양이고, 매일의 석양이 이 세계의 마지막 석양인 것처럼 느끼고 널려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해 나가면서 나아가고 싶습니다. 한발 늦은 글이지만 한발 늦어서 나는 이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어제라면 결코 쓰지 못할 글을 오늘의 나는 씁니다. 어제 카뮈에 대한 글을 썼다면 그것은 오늘과는 전혀 다른 글이었을 것입니다. 오늘은 그런 것입니다. 오직 오늘만이 오늘입니다. 오늘만 쓸 수 있는 문장으로 오늘만 건넬 수 있는 마음을 동봉합니다. 더없이 유한한 오늘이 다시 시작됩니다. 오늘의 아침은 이 세계의 유일한 아침, 소중하지 않을 수 없어요. 특별함은 늘 우리 마음 속에 있으니까요. 그러니 오늘의 마음으로 읽어 주세요. 내일은 없을 오직 오늘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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