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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희 Feb 19. 2024

함께 있지 않아도 나는 너를 떠올려

내일이 남편의 기일이라 오늘은 추모 공원에 다녀왔다. 나는 추모 공원에 가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기껏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다녀온다. 이상하게 그곳에 가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쏟아져서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다. 오래전부터 나는 죽음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믿었다. 당연히 동화도 예외일 리는 없어서 추모 공원에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동화가 그곳에 있는 것도 아니잖아. 날 기다리는 게 아니잖아. 나는 그런 변명을 늘어놓는다.

집에서 추모 공원까지는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내려서 십오 분 정도 걸어야 한다. 하필이면 날이 흐리고 비가 왔다.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샀다. 동화가 좋아하던 맥주 한 캔과 내가 마실 맥주 한 캔을 고르고 안주를 사려는데 동화가 뭘 좋아했더라 금방 떠오르지 않아 당황했다. 조미료가 들어간 오징어 안주는 싫어했고 땅콩도 그냥 그랬다. 결국 스트링 치즈를 몇 개 골라 나오는데 마음이 서늘했다. 그 짧은 시간의 망설임이 동화에게 미안했다. 맥주 두 캔과 치즈를 가방에 넣고 걸어가는데 꿈만 같았다. 이런 날이 올 줄 몰랐잖아. 내가 남편의 추모 공원에 맥주를 사들고 혼자 걸어 올라가는 일이 있을 줄은 우리가 사랑했던 무수히 많은 날 상상도 하지 못했잖아. 한두 해도 아닌데 이 길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가까워질수록 자꾸 눈물이 났다. 왜 눈물이 나는 거지, 당황스럽다고 생각하며 눈물을 닦았다. 언덕을 혼자 걸어 올라가는데 사람들이 걸어놓은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보고 싶은 00야. 우리 꼭 다시 만나자.’, ‘아빠, 너무 보고 싶어. 이제는 힘들지 말고 우리 다시 만나자.’ 모두가 다시 만나자고 말했다. 어떻게 다시 만나자는 거지? 정말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믿는 걸까.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편지들에 담긴 애절함을 너무 알 것 같아서  눈물이 났다. 가까워질수록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동화가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아서, 미안해서 더 눈물이 났다.

로비에서 꽃을 사고 남편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갔다. 남편의 자리에는 누군가 들른 흔적이 있었다. 꽃 두 개와 담배 두 개비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잊지 않아 준 누군지 모를 그들이 고맙고 아팠다. 유골함과 함께 넣어둔 우리의 사진을 보는데 남편이 여기 있는 것 같아서 또 눈물이 났다. 내가 그동안 너를 여기에 혼자 내버려 두었구나 미안해서 더 눈물이 났다. 나는 가져간 맥주 캔을 땄다. 남편 몫의 맥주를 먼저 따고 내 몫의 맥주를 땄다. 내 몫의 맥주를 천천히 마시면서 나는 그동안 못한 이야기를 남편에게 털어놓았다. 눈물은 점점 진정이 되었다. 반대로 바깥에서 비는 더 굵게 쏟아졌다. 나는 나를 위해서는 울고 싶지 않았다. 처량하다거나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니까. 나는 내 몫의 맥주를 마시다 말고 남편 몫의 맥주를 마셨다. 한 모금도 비우지 못한 맥주캔을 따라 버릴 생각을 하니 싫어서 내가 다 마셔버려야겠다 생각했다. 남편은 아사히를 좋아했다. 맛있네 당신 맥주. 당신 대신 먹는 거야.

있잖아, 당신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지호 건강하게 잘 지낼 수 있게 도와줘. 당신 어머님도 동생도 힘드니까 가족들을 위해서도 힘써 줘.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힘닿는 데까지 애써 줘. 미안하지만 내가 그 일까지는 못할 거 같아. 나는 그냥 잘 살게. 지호랑 둘이 잘살아 볼게. 그 이상은 나도 벅찰 것 같아. 내가 어떻게 해도 나를 미워하지 말고 꿈에 서운한 모습으로 나오지 말고 그냥 나를 위해 줘. 그냥 나를 다, 내가 어떤 모습이든 이해해 줘.

맥주를 나눠 마시며 나는 남편에게 그런 말을 했다. 그때 갑자기 문자 메시지가 왔다.

어디야.

내가 혼자 이곳에 오는 걸 알고 있는 친구의, 집에 일이 있어서 함께 가지 못하겠다고 말했던 친구의 메시지였다. 그 세 글자를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왜 이렇게까지 눈물이 나는 건지 이유를 모르겠다 생각하면서도 크게 울었다. 나의 울음소리가 빈 복도에 울려 퍼졌다.

왜 이렇게까지 눈물이 나는 걸까 생각하니 그건 안도였다. 혼자서도 괜찮다고, 이 걸음은 결국 내가 감당해야 하는 걸음이라고 생각하면서 간신히 괜찮다고 다독이고 있었는데 친구의 그 물음에 기댈 곳이 생겨서 안도했던 것 같다. 누군가가 나를 염려하고 떠올려 주었다는 사실만으로 안도했다.

나는 괜찮고 싶었다. 잘 해내고 싶었다. 6년 전 그날에 얽매여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곳에 가면 늘 다시 그날 같았다. 그래서 내내 외면하고 싶었다. 그래도 내일은 당신이 떠난 날이니까 와야지 와 봐야지 하고 왔다. 가족들과 함께는 싫어서 혼자 왔다. 나 혼자 오고 싶었지만 다녀와서는 누군가와 술잔을 기울이고 싶어서 친구에게 시간이 괜찮냐고 물었었다. 친구는 엄마와 약속이 있다고 했고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괜찮아. 씩씩하게 다녀올 수 있어. 오기 전 나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전혀 괜찮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려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알았다. 괜찮지 않다는 걸 알았다. 도착하는 게 두려웠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거웠고 한숨 한숨이 어려웠다. 눈물이 났지만 그것도 내 몫이었다. 동화와 마주하는 일은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애써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친구가 어디냐고 물어 주었다. 데리러 갈게,라고 말해 주었다. 나는 크게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안도했다. 생각해 보니 나는 혼자가 무서웠던 것 같다. 나를 위해서 울고 싶지는 않았는데, 당신을 위해서만 울고 싶었는데 결국 나는 나 때문에 안도하며 크게 울어버렸다.  

동화랑 조금만 놀고 있어. 다섯 시까지 데리러 갈게.

나는 오지 않아도 온 것 같다고 괜찮다고 말했지만 와 주기를 바랐다. 누군가를 이렇게 기다려 본 적이 있었나 싶게 기다렸다. 드디어 친구가 도착했고 얼굴을 보는데 멈췄던 울음이 다시 쏟아졌다.

엄마랑 신발을 사러 갔는데 얘가 뭘 타고 갔나, 버스를 타고 갔나, 가서 울지는 않나, 비는 또 왜 이렇게 오나 걱정이 되더라고.

나를 떠올리고 걱정했었다는 친구의 말이 나의 하루를 감싸 주었다. 친구는 동화가 좋아하는 걸 먹자, 기억해 줘야지,라고 말해 주었다. 그래 추모주를 마셔야지, 우리는 동화가 좋아하는 석화랑 조개탕을 먹다가 6년 전 그날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우리 정말 놀랐잖아.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모르겠네. 그래도 잘 버텨왔네.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또 울고 울다가 웃었다.

추모주룰 마셔야지.

친구와 헤어져 집에 오면서 나는 지지 않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남편이 떠나고 수없이 많은 순간 마음이 꺾였다. 일으키고 다시 일으켜야 했다. 나는 꺾인 마음으로는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힘껏 애썼다. 오늘도 나는 의연하려고 애썼다. 버스를 타고 가며, 동화의 사진을 마주하며 내 몫의 시간들을 감당하려고 애썼다. 나는 지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를 처량하게 보고 싶지 않았다. 그게 내게는 지는 일이었다. 나는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싶었다. 실은 잘 되지 않았다는 걸 친구의 메시지를 받고 알았다. 친구가 데리러 오지 않았다면 한동안 6년 전의 그날에 빠져 있을 뻔했다. 친구가 나를 염려해 주어서 나와 그날의 이야기를 나누어 주어서 나는 내일을 내일로 맞을 수 있게 되었다. 함께, 가 나를 구해 주었다. 너무 고마웠다. 너무 다행이었다. 누군가를 염려하고 위하는 마음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다시 한번 실감했다.

아니까, 이렇게 또 알게 되었으니까 나도 애써야지 마음먹었다. 소중한 사람들의 어려움을 모른 척하지 말고 할 수 있는 한 마음을 쏟자 결심했다. 어제에 머물지 않고 내일을 내일로 맞을 수 있게  함께 나누어야지. 그러고 싶다. 오늘 내가 쏟은 눈물을 내일 네가 쏟을 수도 있으니까, 함께 있지 않아도 나는 너를 떠올려, 너를 염려해 라고 말해 주어야지.

어디야, 내가 데리러 갈게.

다시 옮겨도 눈물이 핑 돈다. 오늘 나를 구한 말, 나를 일으킨 말, 내가 마지막까지 손에 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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