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사막
너는 고유해, 나는 그 고유를 사랑하고 - 6
*엽편 소설입니다.
열여섯의 여름, 홍지와 처음 만났다. 샤워 후 방으로 들어가는 몇 발자국에도 땀이 흐르는, 여름의 한가운데였다. 보충 수업이 모두 끝나는 날이었다. 이제 본격적인 방학이 시작되므로 아이들은 한껏 들떠 있었다. 2주 동안 산골 이모할머니 집에서 매일 노을을 볼 생각이었던 나 또한 이미 마음이 두 발을 가지고 교실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종례를 시작했다. 창 밖을 보며 넋을 놓고 있다가 내 이름을 듣고 고개를 휙 돌렸다. '남사현?' 담임의 입에 '특별반'이라는 말이 오르고 있었다. 그해 여름, 학교는 자사고에 아이들을 입학시킬 목적으로 '특별반'이라는 이름의 학급 두 개를 편성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눈물이 찔끔 고였다. 특별반 대상자는 3학년 2반에 모이라는 말을 끝으로 종례는 마무리되었다. 소란스럽게 교실을 나서는 아이들 속에서 베인 나무토막처럼 굳어 있었다. 주번이 열쇠를 내 책상 위에 올려두고 떠났다. 몇 분이 지났을까? 열린 앞문으로 누군가 불쑥 뛰어들어왔다.
사현이야?
나는 눈알만 굴려 그 아이를 보았다. 앞머리가 빽빽했고 곱슬거리는 뒷머리는 반 묶음으로 묶여 있었다. 한쪽 어깨에 초록색 백팩이 둘러져 있었고 운동화를 신은 채였다. 고개를 돌려 그 아이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쨀 거지?
그 아이가 하는 말을 정확하게 이해했다. 가방을 메고 열쇠를 집어 들었다. 뒷문으로 가 문을 잠그고 앞문으로 달려 나왔다. 홍지는 신발장에서 내 신발을 꺼내 가져오고 있었다. 내 신발 뒤축이 홍지의 오른손 검지와 중지에 매달려 달랑거렸다. 신발은 바랠 대로 바래 있었다. 검은색 천에는 카키빛이 돌았고 하얀 신발끈도 군데군데가 까맣게 변색되어 있었다. 관자놀이 부근에 피가 몰렸다. 신발을 받아 들며 입 안 여린 살들을 깨물었다.
운동장으로 가면 걸릴 수도 있으니까 뒷문으로 가자
뒷문은 쓰레기장 옆 작은 철문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그게 열려 있었던가? 알 수 없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홍지를 따라 뒷문으로 향했다. 아이들이 빠져나간 학교는 안팎이 독서실 같았다. 독서실이라면 책장 넘기는 소리, 볼펜 딸깍이는 소리라도 날 텐데 그런 미세 소음 조차 없이 조용했다. 누군가 우리 발께에 확성기를 가져다 놓은 듯 발자국 소리만 터벅터벅 먼 공간까지 울렸다.
초록색 철문은 잠겨있었다. 홍지는 놀란 기색 없이 가방을 문 너머로 던졌다. 그리고 매점 옆에 나뒹구는 플라스틱 박스 두 개를 가져와 올라섰다. 홍지는 그제야 내가 생각났는지 뒤를 돌아보며 눈짓했다. 나는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도 못한 채 고개를 저었다. 홍지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내가 손을 조금 내밀다 거두려는 찰나 홍지가 한 발자국 더 다가와 손을 잡았다. 홍지는 플라스틱 상자 앞으로 나를 데려가 올라가 보라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상자에 올라서자 문 너머가 보였다. 문 아래로 한 명이 겨우 지날 듯한 계단이 나있고 오른편은 담장, 왼편은 담장에 붙은 알림 간판과 그 앞의 트럭이 보였다.
계단 쪽으로 내려가면 굴러 떨어질 수도 있으니까 왼편으로 나갈 거야. 먼저 알림판 밟고 트럭 머리로 가면 돼.
나는 홍지더러 먼저 나서라 말했지만 홍지는 뒤에 누가 있는 편이 나을 거라며 내 어깨를 살짝 짚으며 말했다. 홍지의 마음은 단호한 듯 보였고 나는 그 마음에 압도되어 플라스틱 상자 위로 다시 올라섰다. 왼발을 들어 담장에 조금 튀어나온 곳을 밟고 오른 다리를 담장에 걸쳤다. 시멘트 가루에 다리가 쓸려 따끔거렸다. 양손으로 담장 윗부분을 짚고 왼다리를 마저 올렸다. 담장에 앉아 알림판 디딜 곳을 쾅쾅 발로 굴려보았다. 어느새 상자 위에 선 홍지가 까치발을 들고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65kg쯤 나가는데 끄떡없어.
홍지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왼발을 간판에 디뎠다. 담장을 왼손으로 꽉 잡고 빙그르 돌며 오른발을 간판 위에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트럭의 머리로 발을 옮겼다. 몸이 지면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놓였다. 트럭 머리에서 미끄러지듯 화물칸으로 내려왔다. 위험하지만, 이모할머니는 가끔 이 칸에 나를 태우곤 아무도 없는 비포장 도로를 달리곤 하셨다. 처음에는 무서워 잡을 수 있는 건 모두 잡고 부들부들 떨었지만 조금 익숙해지고 나서는 누워 하늘을 보곤 했다. 할머니의 짐칸에는 주로 비료 포대가 실렸어서, 그렇게 누워 있는 동안엔 주로 밭으로 가는 비료의 마음을 생각했다. 하늘을 바라보다 땅 깊은 곳으로 가는 이야기는 왠지 조금 슬펐다. 끝과 끝은 닮았겠지만 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다 노을이라도 지면 항상 울었다. 할머니는 얼굴에 눈물 자국이 있는 날이면 항상 따듯한 국수를 말아 주셨다. 늙은이처럼 울지 말라고 하셨다.
담장을 넘고 홍지와 빙수 한 그릇을 비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학교로 돌아가야 하나 세 번쯤 고민했던 것 같다. 큰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와 휴대폰을 끄고 엄마가 올 때까지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았다. 여섯 시가 조금 넘어 엄마가 돌아왔고, 나는 참았던 숨을 내쉬듯 엄마에게 그날의 오후를 고백했다. 다음 날 아침, 엄마는 담임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예정대로 이모할머니 댁에 갔고 노을을 보면서 가끔 홍지를 생각했다. 시간이 남는 때에는 예의상 한 권 챙겨간 고등 수학 개념서를 펼쳤다. 집합 부분은 동글동글 귀여워서 가끔 보기도 했지만 다른 장은 그냥 펴두기만 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데도. 그리고 늘 그렇듯 자주 울었다. 그곳에서는 울어도 시간이 아깝거나 부끄럽지 않았으니까.
할머니는 7년 뒤 봄, 우리 집에서 돌아가셨다. 당시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 취업을 한 상태였고, 할머니는 건강이 악화되어 산골집에 혼자 있을 수 없어 우리 집으로 왔다. 나는 할머니가 오기 전날 내 방을 깨끗하게 비우고 옷방의 헹거들을 엄마 방으로 옮긴 후 내 책상과 짐을 그리로 넣었다. 내 방 창이 제일 컸기 때문이다. 시야가 닿는 끝까지 하늘이 보이던 집에서 살던 할머니에게는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졸업 논문 작성과 회사 적응이라는 두 가지 과업 중 어느 것도 제대로 해내고 있지 못하고 있었지만 새벽마다 할머니와 산책을 했다. 그 새벽 산책이 끝난 후 샤워를 하면서는 조금 울었다. 아무도 듣지 못하게 아주 조그맣게 꺽꺽거리며. 그리고 주말 중 하루는 할머니의 산골집에 들렀다. 할머니도 없는 그 집에 모로 누워 두 시간을 내리 울고, 할머니 밭을 한번 둘러보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평일에는 그런 주말이 없는 듯 깜깜한 표정으로 지냈다. 졸업 논문의 제목은 '영아기 애착 경험과 청소년기 인지 발달의 상관관계'였고 내가 회사에서 맡은 직무는 인플루언서 섭외였다.
봄이 지나간 후로도 여름이 오고, 가을이 왔다. 겨울이 끝나자 아무렇지 않게 또 봄이 왔다. 그렇게 두해, 아무것도 궁금하지 않고 아무것에도 울지 않았다.
홍지를 다시 만난 건 초봄의 강가에서였다. 어떻게 이런 곳에서 만나지? 싶을 만큼 외진 곳이었다. 홍지는 놀랍게도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날 그 모습과 똑같았다. 여름의 숲과 같이 우거진 앞머리와 반만 댕강 묶은 곱슬거리는 뒷머리, 운동화에 초록색 에코백을 한 차림이었다. 홍지와 버려진 비닐 포대에 앉아 30분쯤 이야기를 나누었다. 홍지가 전화를 받고 오더니 급히 가볼 곳이 있다고 미안하다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연락할게 하며 달려가는 홍지의 뒷모습을 보며 연락할 방법이 없지 않나? 생각하던 찰나 홍지가 되돌아와 명함 한 장을 건네주고 다시 달려갔다.
우리 사이에 명함 주는 게 좀 이상하긴 한데, 지금 번호 찍으면 틀릴 것 같아서, 연락 줘 사현아!
우리는 어떤 사이지? 궁금했다. 홍지의 명함에는 아무 설명도 없고 인스타그램 아이디와 이메일 주소만 적혀 있었다. 그날 밤 인스타그램에 접속했다. 회사에서 관리하는 아이디만 가지고 있던 터라 개인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만들어야 했다. 내 아이디로 로그인한 후 검색창에 홍지의 인스타그램 주소를 입력했다. hong_di 왜 지가 아니고 디일까? 홍지의 피드는 초록색이 한가득이었다. 프로필 한 줄 설명에는 초록 수사대라고 적혀 있었다. 홍지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홍지를 팔로우했다. 하트 표시를 누르고 싶은 사진들도 더러 있었지만 누르지 않고 앱을 껐다. 작은 사탕처럼 반듯하게 담겨 있는 앱들이 순간 징그러워 아무 앱이나 눌러보았다. 사진 앱이 열렸다. 며칠 전 본 길 강아지의 사진을 클릭해보았다. 뒤로는 노을이 지고 있는 사진이었는데 그 풍경을 보자 조금 울고 싶어 졌다.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이었다.
블로그 앱을 클릭해 '지난'이라는 게시판에 들어갔다. 할머니의 산골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모아둔 게시판. 할머니가 밭에 갈 때마다 끼던 분홍색 토시 사진이 있었다. 흙투성이 었지만 그 위로 나리는 노을빛이 고왔다. 그 사진을 길게 눌러 저장했다. 다시 인스타그램에 접속해 첫 게시물을 올렸다. 지잉-하고 진동이 울리더니 홍지가 좋아요를 눌렀다는 알림이 떴다.
‘노을 대박, 어디야?’
홍지와 dm을 나누다 번호를 주고받았다. 홍지가 전화를 걸어 잠시 통화를 했다. 홍지와 통화하는 건 처음이었다. 열여섯의 여름, 우린 처음 만나서 그해 가을을 함께 보냈다. 우리의 시간은 거창하지 않았다. 늦더위가 불쑥 찾아오는 날에도, 낙엽이 발아래를 채우는 쌀쌀한 날에도 우리는 얼음 빙수를 와그작 씹어 먹으며 말도 없이 눈빛을 주고 받았다. 그게 다였다. 졸업식 날, 나는 합격한 고등학교의 반배정 시험이 있어 졸업식에 참여하지 못했다. 시험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홍지의 문자를 받았다.
‘사현아 고마워, 졸업 축하해’
나는 그때 또 잠깐 울었던 것 같다. 그게 끝이라고 생각했다. 홍지와는.
홍지는 상담사가 되었다고 했다. 나도 심리학을 전공했다고 반가움을 표시했다. 우리 사이에 짧은 침묵이 돌았다. 홍지가 사는 곳을 물어 율하역 근처에 산다고 대답했다. 홍지는 삼광역 3분 거리에 산다고 말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율하역과 삼광역은 호선은 다르지만 아주 가까웠다. 주소를 얼추 맞춰보니 홍지의 집과 나의 집은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었다.
혹시 컨디션 괜찮으면 진달래 공원에서 만날래?
홍지와 나의 중간 지점에 있는 작은 공원이었다.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 내일 외근이 있지만 아무렴 어때, 생각하며 카디건을 걸쳤다. 아직 찬기가 가시지 않은 봄밤이었다. 집을 나서 편의점에 들려 따듯한 꿀물 한 병과 맥주 두 캔, 간이 짭조름하게 밴 견과류를 샀다.
홍지는 먼저 벤치에 앉아있었다. 반나절만에 보는 홍지는 아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곱슬거리는 머리가 풀려 있었고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옆으로는 생강차 한 병과 맥주 두 캔, 팝콘 과자가 보였다. 홍지와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홍지 너머로 담장이 보였다. 홍지가 금방이라도 저 담을 넘어 사라질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은 지금과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담장에서 눈을 거뒀다. 우리는 여기서 자주 보기로 하고 끝인사를 길게 나누고 헤어졌다. 5분이면 도착할 집을 30분을 둘러서 갔다. 조금 울고 싶었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생각났다. 할머니를 생각하면 울고 싶고 또 울고 싶을 땐 할머니가 보고 싶었다. 어린 시절, 내 많은 눈물을 모두 받아주었던 사람. 그 사람을 잃어서 나는 한동안 울 곳을 잃어버렸다. 한날, 드라이브를 마치고 얼굴이 퉁퉁 불어있는 나를 보고 할머니는 도대체 쪼매난 게 뭐 때문에 그렇게 울 일이 많냐고 물었다. 그날도 나는 비료 생각을 했는데, 같이 실려온 비료들이 포대를 잃고 거칠게 흩어지는 게 무서웠다. 할머니에게 그런 말들을 전하자 할머니는 그게 위로가 될 순간이 올 거라 말했다. 나는 할머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더 엉엉 울었다. 할머니는 그날도 당근, 양파, 파, 다시마, 마늘을 넣고 채수를 끓이고 계란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해 지단을 부치고 소면을 삶았다. 운 속에는 따듯한 걸 밀어 넣어야 한다고.
할머니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후로도 계속 계절이 지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영원하지 않은 모든 게 무서웠다. 그 마음의 발현일까? 환절기마다 몸을 앓았다. 할머니가 사라지고 난 뒤론 그 앓음이 깊고 길었다. 할머니가 있는 봄은 영원하지 않았다. 그게 내게는 재앙이었다. 하지만 영원한 게 없다면 할머니 없는 이 봄도 언젠간 멎을 것이다. 할머니가 말한 위로란 이런 것일까?
씻고 나와 바디로션을 바르고 있는데 띠링, 하고 알림이 울렸다. 홍지 인스타에 게시물이 올라와 있었다. 맥주캔과 꿀물 음료병이 함께 찍힌 어두운 사진이었다. 사진 밑에는 코멘트가 한 줄 남겨져 있었다.
‘담장 같이 넘던 사이’
피식 웃음이 났다. 시간은 새벽 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홍지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고 로션을 마저 발랐다. 침대에 누우니 천장이 높았다. 눈을 감고 천천히 호흡했다. 애쓰지 않아도 얼굴에 힘이 풀리고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여러 계절을 지나 다시 만난 봄밤, 이 계절이 두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