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면 사주앱을 깔곤 한다.
옛날에는 누군가 사주에 열광하면 슬쩍 물러서곤 했다.
정해진 무언가에 휩쓸려 살아간다는 건 너무 허무했으니까.
나 딴에는 내 의지로 열심히 헤엄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진로가 정해진 배관 속이라면, 차라리 모르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렇게 사주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내가 사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사주가 가지고 있는 스토리텔링적인 매력 때문이었다. 사주를 좋아하던 친구가 어느 날 내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했다.
"어떤 부부가 너무 안 맞아서 사주를 보러 갔대. 근데 진짜 소름인 게 둘이 진짜 안 맞는 사주라는 거야. 아내는 덩쿨인데 남편이 큰 바위라서 아내가 뿌리내릴 수가 없다고."
이야기의 진위 여부와는 관계없이 눈이 반짝 떠졌다. 친구의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웠고, 빨리 더 말해보라는 듯 한걸음 다가섰다.
"불, 물, 나무, 쇠, 흙 이렇게 오행이 있는데, 서로 도움을 주기도 하고 해를 끼치기도 해, 상생이라는 말 들어봤지? 만약 내가 불이야, 그럼 뭐가 필요하겠어? 땔감이 필요하겠지. 그러니까 나무 기운을 가진 사람이 나한테 좋은 거야. 반대로 물은 위험하겠지? 그게 상극이야, 불을 끄니까."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친구의 팔을 철썩 치면서 이야기했다.
"야! 포켓몬스터도 사주 기반이네 그럼!"
친구에게 물(꼬부기), 불(파이리), 풀(이상해씨), 돌(꼬마돌) 그리고 전기(피카추) 성질을 가진 포켓몬을 설명하고 파이리가 꼬부기한테 맥을 못 추는 설정도, 피카추의 공격이 꼬마돌에게 통하지 않는 설정도 다 사주의 상생과 상극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며 열을 올렸다. 그날 후로 나는 사주에 푹 빠져버렸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운명을 믿고 싶지 않았기에 철학관을 찾아가거나 책을 사서 공부하는 것 대신 사주앱 속 다소 빈틈이 있는 오늘의 운세나 토정비결을 탐독하는 것에 만족하려 했다. '사주는 일기예보처럼'이라는 널리 알려진 명언에 기대어,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듯이.
하지만, 큰 이동 수가 있던 달 갑작스럽게 살던 도시를 떠나오고
이별 수가 있던 달 이별하고, 귀인을 만난다는 달에 아주 좋은 동료를 맞이하게 되고,
곤란한 일을 겪을 수 있다던 날들에 꼭 예상치 못한 사건이 일어나는 걸 보면서 조금씩 더 사주를 믿게 되었다.
힘들 때마다 사주를 보아서 사주를 믿게 되었는지,
사주를 믿게 되어 힘들 때마다 사주앱을 깔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사용하고 있는 사주앱에 상담 플랫폼 광고가 걸려있는 걸 보면 나 같은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앞서 말했듯 사주는 일기예보처럼 보면 참 유용하다. 비소식을 듣고 우산을 챙기는 것처럼. 사주에서 조심하라고 하는 것들은 대체로 조심해도 나쁠 것 없는 일들이다. 주변의 소중함을 잊지 마세요, 경거망동하지 마세요, 연인의 마음을 헤아려주세요, 돈을 함부로 쓰지 마세요, 당신의 게으름이 경쟁자들을 웃음 짓게 합니다, 노력하세요 등.
그런데 내가 어제 잠들기 전 확인한 내일의 운세는 조금 결이 달랐다. 사주앱을 깔고, 지우고 한지 어언 3년이 되었는데, 그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멘트였다.
'가까운 친구가 당신을 떠날지도 모르는 날입니다'
떠나는 게 아니라, 내가 친구를 잃는다고 적혀있었던가? 너무 섬뜩한 말이라 바로 앱을 지워버려서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날 밤 내가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이 내 친구들을 괴롭히는 꿈을 꿨다. 꿈에서 나는 두려워서 친구들을 구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내 차례가 오는 건 아닐까 벌벌 떨었다.
그렇게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깼고, 그 순간부터 오늘이 제발 끝나기만을 바랐다. 친구에게 연락할까? 말까? 하는 순간이 오면 주로 하지 않는 편인데 오늘은 그런 생각이 들면 바로 연락을 했다. 친구는 나를 어떻게 떠나는 걸까, 왜 떠나는 걸까. 누군가와 절교하는 것은 아프지만 그래도 견딜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을 떠올릴 때면 나는 아무렇게나 무장해제된 상태가 된다.
지금은 12시가 지났고, 그러니까 그 운세도 끝났다. 나쁜 소식을 듣지 않았다. 누군가 조용히 마음속에서 나를 치워두었을지도 모르겠지만.
한동안 사주앱을 깔지는 않을 것 같다. 일기예보 같은 격언 없이도 내가 나에게 떳떳하고 주변을 부지런히 아끼는 하루들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