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가든, 상속자들, 너의 목소리가 들려, 별에서 온 그대 등 나의 청소년기(2010년대 초반)에 방영했던 K-드라마는 그야말로 이성애 범벅이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밈으로 떠도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한국 드라마들은 다 사랑 이야기라고. 의학 드라마는 수술하다 눈 맞고, 범죄 스릴러는 범인 잡다가, 법정물은 밤새워 재판 준비하다가.. 로맨틱 코미디를 달고 나온 드라마는 말할 필요도 없겠지. 어느 장르든 '러브 라인'이 없으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K-콘텐츠는 사랑 이야기가 가득하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연애 프로그램도 인기다. 선두 주자로 큰 인기를 끌었던 <하트 시그널> 시리즈를 주축으로, 상금을 위해 참가한 사람(머니캐처)과 사랑을 찾아 참가한 사람들(러브캐처)로 멤버를 구성하여 긴장감을 더한 <러브캐처>, 이별 위기에 놓인 네 쌍의 연인이 서로의 연인을 바꿔 데이트를 하는 <체인지데이즈>, 이별한 연인들로 멤버가 구성된 <환승연애>까지. 연애 프로그램은 자극적인 방식으로 확대되고 재생산되고 있다. 연기인 걸 알고 보는 드라마에도 몰입이 되는데, 일반인들을 내세워 '리얼'을 마케팅 포인트로 잡은 프로그램에 과몰입되지 않기란.. 엄청난 정신력을 필요로 하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그게 뭐가 문제란 말이지? 사랑은 좋은 거잖아.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콘텐츠들은 우리 현실의 '사랑'을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사랑(주로 이성애) 관련 콘텐츠가 끊임없이 생산되고 또 소비되는 이유는 '사랑에 대한 우리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인간은 외롭다. 외롭기 때문에 외롭지 않은 상태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 된다. 사랑, 특히 성애 기반의 사랑은 이러한 외로움의 특효약처럼 오랜 기간 동안 여겨져 왔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 콘텐츠를 보는 것만으로도 일정 수준의 외로움을 해소시키고 만족감을 느낀다. 동시에 마음속에는 버킷리스트가 하나 둘 늘어간다. '나도 저런 사랑을 해야지'. 나는 이런 버킷리스트가 우리의 사랑을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안내 사항)
사랑의 정의는 저마다 다르기에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게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는 진실이 다르고 때문에 다른 현실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기에 그냥 이렇게 생각하며 사는 사람도 있네~하고 여겨주시길 바란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과 가장 가까운 사랑에 대한 정의는 하루키의 입에서 나왔다.
"사랑은 자아에 대한 도전이다"
나는 사랑을 자아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이기적인 상태가 디폴트(기본값)이다. 이기적인 것은 인간의 나쁜 특성 중 한 가지가 아니라 그냥 기본 상태이다. 우리는 자신 안에 갇힌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사고적으로도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상상력과 공감능력을 통해 심리적, 사고적인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꼭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물론 집단에 소속되기 위해 즉 생존을 위해 필요한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이것은 결국 자신의 생존을 위한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이기적인 행동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아무런 이익도 없는데 다른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상상하고 공감하는 것 나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곧 자아에 대한 도전이 될 수도 있다. 상대의 마음과 생각이 나와는 다를 때, 그걸 상상하고 공감한다는 건 정도에 따라 내 세계를 부숴야 하는 수준까지 다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사랑은 파악할 수도, 움켜쥘 수도 없는 미지의 것이 된다.
그렇다면 버킷리스트 같은 사랑은 어떨까? 미디어에서 쌓은 버킷리스트를 기반으로 한 사랑은 '자아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자아를 그저 만족시키는 일'이 된다. 나쁠 것은 없지만, 우리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라는 걸 잊지 말자. 꿈꿔온 사랑을 할 때 사랑의 대상(상대)은 곧잘 도구화된다. 그 사람은 나의 환상을 이뤄줄 존재일 때만 가치를 가지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된다. 나는 그 사람을 나의 자아를 살찌우는 데 도구로 사용한다.(우리는 이것을 나르시시즘이라고 부른다.)
나 또한 어릴 적부터 많은 미디어에 노출되며 버킷리스트를 탑처럼 쌓아두었다. 그것을 누군가 이뤄줄 때 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 그 순간 내가 사랑한 것이 그 사람이 아니라 나였다는 걸 안다.
꿈꿔온 사랑을 이뤄줄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진짜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리고 자아에 대한 도전만 주구 장창하며 사랑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가 무지성적으로 받아들였던 또는 얼마간 강요당했던 연애 콘텐츠들이 우리의 사랑을 망치고 있는 건 아닌지 한편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 또한 인지하지 못한 채 버킷리스트 같은 사랑과 미지의 사랑을 무수히 반복해왔다. 그날들을 지나서 이제부터는 버킷리스트 같은 사랑보다는 궁금한, 미지의 사랑을 더 많이 하고 싶다. 설렘만이 사랑의 전부가 아님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