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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Sea Jun 01. 2024

퇴근길 깜짝 아티스트 데이트

투움바 파스타와 레모네이드로 쏘울까지 달래며...

   퇴근길 집으로 들어가는 길목 어귀에 다다르자 잠시 갈등이 일었다. 정도는 다르지만 늘 선택의 순간에는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갈등이 없는 선택이란 이미 반복된 습관이거나 누가 보더라도 충분한 당위성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리라.


   오늘 저녁엔 가족들이 저마다 회식이 있다고 한다. 혼자 편하게 뭐든 할 수 있는 시간. 이미 어스름하게 땅거미가 내리는 무렵에 퇴근하는 터라 딱히 갑작스레 할 이벤트가 생각나지 않았다. 집 근처 골목길로 우회전하여 들어선다. 2~3분 후면 집에 도착이다. 얼른 결정하지 않으면 이 특별해질 수 있는 시간이 그저 그런 평범함으로 채워질 것이란 안타까움이 몰려왔다.


  순간, ‘오늘은 PASTA 어때요?’라고 호객하는 입간판 뒤에 있는 한 레스토랑이 눈에 확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자석처럼 간판 앞에 차를 세웠다. 큰 숨을 들이켰다가 천천히 내뱉으며 10초간 생각했다. ‘아티스트 데이트하기에 딱 좋은 시간이네.’ 하는 생각이 빠르게 스쳐 갔다.


  교사의 3월, 숨 가쁜 날들, 어느새 주도권을 빼앗긴 채 일이라는 목줄에 잡혀 끌려다니고 있는 상황. 게다가 작년 추석 무렵부터 줄곧 신경 쓰이던 일이 어제 피크를 이루어 스트레스 지수가 최고였다. 또한 방학 끝무렵이면 마무리 될 것이라 예상하고 벌인 몇 가지 일들이 여전히 지속되는 바람에 시간과 체력 안배에 실패하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기분 전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이렇게 학년 초를 시작하면 연말에 후회할 수 있다.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니 하이 톤의 목소리가 나를 반긴다. 투움바 파스타와 레모네이드를 주문하자 영수증과 함께 호출 진동벨을 손에 쥐여준다. 요즘 많은 식당이 셀프 서빙으로 바뀌었다. 망설임 없이 창가 테이블에 자리 잡고 앉았다. 괜스레 자신에게 미안해지는 저녁이다.


   평일 저녁이라서인지 넓은 식당에 손님이 거의 없어 조용했다. 피아노 연주 음악만이 홀 전체 울려 퍼진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오그라졌던 심장을 조심스럽게 다림질 한다.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문 닫을 때까지 테이블에 앉아서 글을 쓸 생각이다.


   진동벨이 울려 음식을 받아놓고 보니 투움바의 굵은 면발이 만족스럽다. 치즈와 새우가 풍성하게 들어간 따끈따끈한 파스타에 시원한 레모네이드를 한 모금 들이켜 본다. 상큼한 레몬 과육이 입안을 환하게 밝히면서 파스타의 흔적들을 모아서 목구멍 속으로 시원하게 흘려보낸다. 피클마저도 맛난 걸 보니 위로받고 있음이 분명하다.



 오랜만에 여유 부리며 파스타와 음료를 번갈아 입에 넣으며 앉아 있자니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다. 매일 출퇴근하는 길이 창문 너머로 보인다. 어두운 길을 밝히는 가로등과 상가 불빛들이 어우러져 유난히 더 예뻐 보인다. 바삐 출근길에 오르는 아침 자동차 속 내가 창문 너머 저 쪽에서 달려오고 있다. 말을 걸어본다. 뭐가 그리 바쁘냐고... 쉬엄쉬엄 하라고...


 20시 30분이 문 닫는 시간인가 보다. 오후 8시가 넘자 새 손님을 더 이상 받지 않는다고 양해를 구하며 돌려보내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다면 나도 이젠 일어나야 할 시간인 듯하다. 도보로 10분도 걸리지 않을 거리, 자동차를 두고 그냥 걸어서 집으로 간다면 아티스트 데이트 마무리가 더 멋지고 운치 있을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아무튼 퇴근길 깜짝 아티스트 데이트로 인해 오랜만에 뿌듯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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