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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Sea Aug 20. 2024

투명한 쭈꾸미 만두와 아티스트 데이트

육개장 레스토랑에서

   오늘 개학이다. 오랜만에 출근해서 인지 피곤하다. 그보다도 어젯밤을 새우다시피 해서 더 그런 것 같다. 오늘 저녁은 사정이 있어서 가족들이 각자 식사 해결하기로 했다.


   나는 얼큰한 국물이 있는 음식이 당겨서 퇴근길에 집 근처 이화수 육개장에서 순두부 육개장을 주문해서 먹었다. 배가 고파 게걸스레 뚝딱 해치웠다. 마무리로 물 한 잔을 들이켜며 일어서려 고개를 들다가 앞쪽 벽에 붙어있는 '투명한 쭈꾸미 만두' 홍보가 눈에 띄었다. 만두 마니아인 내 눈에 만두라는 두 글자가 눈동자에 확 달려들어 붙어버린 것이다. 지금 먹고 싶은데 이미 배부른 터라 포장해 갈까 고민되었다.


   내일 아침 출근 전에 데워서 아침 식사로 만두를 먹을까 아니면 우유에 시리얼을 먹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만두가 식으면 맛이 덜할 텐데... '


한참 고민하다가 그냥 일어서기로 했다. 에잇 참자.ㅎ

그러다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챙겨 먹는 것도 아티스트 데이트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바꿨다. 더구나 나는 지금 아프지 않은가? 그래서 쭈꾸미 만두 하나 포장해 달라고 하였다.


   "냉장고에 넣었다가 내일 아침에 데워 먹어도 괜찮겠죠?"


 라는 나의 물음에 주인은 웃으면서 바로 먹지 않으면 맛이 없어서 포장은 비추한다고 했다.


   "흠... 그럼 안 할게요."


   라고 말하고 일어서려는데 내 안의 아티스트가 내게 이렇게 말햤다.


   "천천히 앉아서 아티스트 데이트 시간 가지면서 즐기며 먹으면 안 될까? 여유롭게 식당에 앉아 좋아하는 음식 주문해서 먹는 것도 오랜만이라 좋을듯싶은데..."


   나는 내 안의 아티스트가 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기로 했다. 더구나 오늘 나는 아프니까 더 들어줘야 할 것 같았다. 다시 주문하면서 먹고 가겠다고 했다. 식당이 8시 50분 마감이라며 먹고 가기에 시간이 괜찮으냐고 물었다. 만두를 조리해서 나오는 데 10분 걸린다고 했으니 만두가 나오면 8시 30분. 먹는 시간 20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그냥 달라고 했다.


   주문 당시 식당엔 손님이 나뿐이었다. 월요일 저녁이라 그것도 한창 저녁시간은 지난 때라 그런가 싶었다. 조용히 창가에 앉아서 어둠이 내린 거리에 오가는 자동차들을 흘깃 바라보았다.


   만두 주문이 들어간 직후 한 가족 팀이 들어왔다. 주인이 9시에 문 닫는데 그 안에 식사가 가능할지를 물으니 그냥 달라고 했다. 30분 정도밖에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 이후 한 남자분이 또 들어왔다. 역시 같은 질문에 같은 대답이다. 문 닫을 시간에 몰려온 손님들 때문에 주인의 마음과 손이 바빠졌다.



주문한 지 10분이 채 되기도 전에 드디어 쭈꾸미 만두가 나왔다. 자그마한 만두 8개가 사각 접시에 양념장 종지를 곁들어 나왔다. 이까짓 작은 만두 8개야 순식간에 먹어 없앨 수 있지... 맛있었다.  명절에 집에서 직접 만들어서 가족들과 함께 만들어 먹는 김치 고기만두에 비하면 훨씬 덜한 맛이지만 오늘 아픈 나를 달래주며 토닥거려 주며 먹기에는 충분했다.


   이렇게 천천한 호흡으로 저녁밥을 먹기란 참으로 오랜만인 것 같다. 밤 8시 45분이다. 문에서 손님이 또 들어오려다가 9시 퇴근이란 소리 듣고 체념하고 나갔다. 다시 한 무리가 오더니 9시 퇴근이라 하는 말에 10시까지 영업한다는 안내 보고 왔는데 왜 9시에 닫느냐며 일부러 검색해서 찾아왔는데 그럼 정보를 수정해 놓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죄송하다는 말에 손님은 체념하고 다시 나가 다른 식당을 찾느라 바빠 보였다. 나도 전에 이런 경험이 있어서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전화로 미리 확인하고 와야 할 필요가 있는 듯하다.


   아무튼 새롭게 시작된 2학기 첫날. 오늘은 내 마음과 몸에 집중하고 돌봐야겠다. 올해는 특별히 그런 해로 삼고 싶다. 뮬 한 잔 가득 따라 입가심하며 오늘의 깜짝 아티스트 데이트를 마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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