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사람보다 차가 우선인 도시

by 써니사이드업
신세계 백화점 앞 육교 개통식 1966년 (출처: 국가기록원 - Public Domain)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1960~70년대 한국은 사회 전반이 효율을 요구하던 시대였고, 도시는 그 흐름에서 더욱 극명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에 발맞추어 도시 공간이 재편되었는데, 그 중심에는 ‘사람’이 아니라 ‘자동차’가 있었습니다.

광화문우체국 앞 전차궤도 철거공사 1969년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 공공누리 제1유형)

당시 박정희 정부는 자동차가 막힘없이 달릴 수 있는 도시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수출과 공업화를 국가 목표로 내세운 정부에게 도로는 곧 ‘산업의 혈관’이었죠. 교통 흐름이 멈추는 순간 경제도 정체된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도시 설계에서 가장 먼저 제거 대상이 된 것은 뜻밖에도 ‘보행자’였던 거예요. 신호에 걸려 잠시 멈추는 행위조차 경제 손실로 간주되던 시대였으니까요. 그 결과, 거리 위에서 사람은 점점 밀려나고 도시는 차를 위한 무대가 되어 갔습니다.

사직터널 공사 1966년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 공공누리 제1유형)

보행자를 위한 인도는 점점 더 좁아졌습니다. 횡단보도는 줄어들었고,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은 육교와 지하도였지요. “사람이 길을 건넌다”는 일상적인 행위가 도로 위에선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비효율’이 되었고, 보행자는 차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습니다. 정부는 이런 설계를 ‘현대적’이라 홍보했지만, 실제로는 보행자를 도로 밖으로 밀어내는 조치였던 겁니다. 당시 서울 시민들 사이에 “길 건너는 것도 일이 된다”는 말이 생겨났다는 건, 이런 도시 풍경을 잘 보여줍니다.

광화문 사거리 지하도 공사 1966년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공공누리 제1유형)

서울 도심 재개발에서도 이런 정책은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청계천 복개 공사로 좁은 물길 위에는 거대한 대로가 놓였고, 을지로·세운상가 일대에는 자동차 중심의 간선도로가 들어섰습니다. 자동차의 흐름은 원활해졌지만, 그 도로 옆을 걷는 사람은 그늘 하나 없는 길 위에서 소외감을 느껴야 했죠. 도시 공간은 사람의 삶을 품는 곳이라기보다는 경제와 교통을 위한 기계 장치처럼 변해 갔습니다.

반포주공아파트 1단지 전경_자른 사진 1973_사람보다차가우선_서울역사아카이브_PD_20251009.JPG 반포주공아파트 1단지 전경 1973년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 공공누리 제1유형)

특히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추진된 강남 개발은 이런 사고방식이 집약된 사례였습니다. 처음부터 ‘계획된 도시’였던 만큼, 효율과 질서라는 시대의 가치관이 고스란히 반영되었어요. 반듯하게 뻗은 바둑판 모양의 도로, 동일한 형태의 아파트 단지, 도로 위를 가로지르는 육교와 지하도―이 풍경은 도시를 거대한 기계나 군사 시설처럼 보이게 만들었죠. 그곳에서 설계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의 편리보다는 자동차의 흐름이었습니다.


실제로 이런 거리 위를 걸어보면 생기와 다양성보다는 통제와 질서, 기능과 효율이 먼저 느껴졌습니다. 카페나 가게가 늘어선 골목길 대신, 자동차의 속도를 위해 설계된 도로와 회색빛 건물들이 이어졌던 것이죠. 프랑스의 도시사회학자 발레리 줄레조(Valérie Gelézeau)는 이런 풍경을 두고 “사람이 사는 도시라기보다는 마치 군사기지 같다”라고 평하기도 했죠. 균일하고 규율적인 풍경, 그것이 한국 산업화 도시의 특징이었습니다.


이처럼 산업화의 이면에는 ‘사람보다 자동차가 중요한’ 시대적 사고가 깊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도시는 삶의 공간이라기보다 경제 성장의 무대였고, 그 안에서 사람은 효율이라는 목표를 방해하지 않는 한도에서만 허용되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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